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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May 31. 2020

#2. 나의 지정석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늘 지정석에 앉았다. 교실에서 나의 지정석은 선생님과 딱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칠판 방향의 가운데인 맨 앞자리였다. 선생님의 ‘입 모양’을 봐야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한 맥락을 짚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리 집중해서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고 있어도 성적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들의 기억에는 내가 ‘집중력 하나는 최고다.’라는 학생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어느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일 내용 중에서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샛별이는 내가 본 학생 중에서 제일 눈이 반짝거렸어.

"절대로 딴짓을 하지 않고 나를 열심히 바라봐 줘서 참 대견했었어.”      



그런데도 나는 이 ‘이야기’가 불편했다. 진도대로 잘 따라가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늘 뒤떨어진 기분에 매일 휩싸였다. 나의 지정석에 앉기 전에 만나는 새 학기마다 선생님들에게 메일을 먼저 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메일 내용은 대략 이런 식으로 작성해서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몇 학년 몇 반 이샛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 내용을 간단히 판서로 작성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입 모양과 판서 내용을 번갈아 가며 봐야지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일을 확인하신 선생님 중에 대부분은 나를 교무실로 불러냈다. 익숙해진 듯이 담담하게 교무실 문을 열고 나를 부르신 선생님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가 온 걸 확인한 선생님의 모습은 참 분주하셨다. 아까만 해도 있던 이면지가 없어져서 황급히 필기도구를 잡은 채 찾으시던 그 선생님의 모습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우리가 평소에 해 오던 습관은 무섭기 마련이었다. 목소리를 내어 상담을 해오던 선생님껜 ‘필담’으로 하는 상담이 ‘처음’이었기에.

예상했던 이야기가 종이에 적혀 허전했던 이면지가 어느새 빽빽해졌다. 나는 그 ‘이야기’가 와닿지도 않아 기억하려 애써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지정석’이 생각나면서 담임선생님이 반에서 제일 공부를 잘한다던 친구를 내 옆으로 붙여 주셨다.


칠판 판서 내용과 선생님의 입 모양, 그리고 내 옆의 친구가 쓰고 있는 필기 노트까지 내 눈은 그렇게 혹사당했다.


지정석의 단점은, 뒤에 있는 친구들이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가끔 던지는 선생님의 농담에 웃는 친구들을 따라 웃기에는 늘 한 박자 늦어 혼자서 멀뚱거렸고, 옆에 앉은 친구가 대신 왜 웃는 이유를 노트에다 작성해 주지만 종종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정석은 꼭 특정한 사람만이 앉는 자리임을 그때의 친구들에게 각인시키면서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 확실히 가르쳐 주었기에. 나는 그들과 친해지기엔 너무 많은 차별을 배워 버렸다.


지금의 엄마가 된 이상 예준이에겐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때 차별과 차이를 가르치려고 한다.


차별은 나와 다른 걸 알면서도 다름을 강요하는 것이고,

차이는 나와 다른 걸 존중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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