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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 독서와 직렬 인생

한 번에 모래 한 알, 한 번에 한 가지 일

by 디디


예전엔 한 권의 책을 다 읽어야지만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고지식한 신념인가! 읽다가 중간부터 페이지가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책을 만나게 되면 하염없이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음 책을 넘볼 엄두가 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책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작년 첫 독서모임을 참여하면서부터 병렬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저 책을 읽기도 하고, 책 속의 또 다른 인용글이 나오면 그게 궁금해서 또 찾아보다가- 그 책을 구매해 읽어보기도 하고. 읽고 있는 책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났다. 덕분에(?) 완독 하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하지만 자고로 병렬독서란,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재미가 있는 것 아니겠나!


요즘 세상은 모든 걸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멀티태스킹이 능력이고 병렬적으로 더 많이, 더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유능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제 한 사람이 한 가지의 일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멀티'의 역할이 늘어나는 시대.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나도 멀티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랜서일 때부터 동시에 몇 개의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이 늘 익숙했으니까.


'일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아님 말고)'. 제법 자유롭게 일했던 프리랜서 시절과 달리 1인 사장이 되어보니, 사업자 등록과 동시에 부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차원이 다르게 늘어났다. 세무와 서류적인 일은 물론이고 영업과 홍보와 앞으로의 미래까지 내다보며 모든 일을 착착 해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프리랜서일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한꺼번에 하려니, 소위 말해 잼 걸리듯 자꾸만 걸려 넘어졌다.


한 두 번 넘어지는 일도 여러 번 반복되면, 잘하던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글도 디자인도, 심지어 오래 거래해 온 클라이언트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행위 자체에도 조심스럽다 못해 주저하며 오래 붙들고 있게 된다. 결국 원래 잘하던 것도 '잘하고 있나?' 하고 스스로 의심하게 되더라.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대를 거스르고도 언제나 변함없는 말인 이 오래되고 흔한 말은, 매일매일 마음속에 새겨도 모자람이 없다. 요즘 내가 거의 매일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다. 한 걸음부터 가자. 이제 시작이다. 불안이 엄습할 때 주문처럼 외워본다. 최근 읽는 책 중에서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보았다. 그래 인생은 끊임없이 변하고, 확실한 것은 오늘뿐이라면, 그게 바로 매일이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번에 모래 한 알. 한 번에 한 가지 일.' 마음속에서 계속 이 말을 반복하면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전장에서 나를 거의 파멸시킬 뻔했던 혼란스러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_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
무엇보다 개인의 인생은 멀티버스가 아니기에 한 번에 하나씩 스스로 해결해 내야 하는 각자는 직렬로 살아갑니다. _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


서로 다른 책 속에 비슷한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이것 또한 운명이 아닌가 싶다. '한 번에 하나씩 스스로 해결해 내야 하는' 직렬 인생 속에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온전히 발견한 내가 이끌어가는 회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역시 당장 눈앞에 뚜렷-히 그려지진 않지만, 차근차근 그리다 보면 윤곽이 보이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독서는 병렬로 하지만, 인생은 직렬로 사는 것이니까. ‘디자인’이라는 일을 17년간 한결같이 쭉 해오며 쌓아온 흔적이 앞으로를 단단히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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