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다가오며 쥐고 있던 프로젝트들이 어느 정도 다 마무리되고 있다. 요즘은 계속해서 일과 별개로 개인 작업을 이어간다. 회사 이름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굿즈 디자인. 오랫동안 함께해 주신 클라이언트분들께 선물할 달력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는 내 포트폴리오도 되고, 겸사겸사 회사 이름을 한번 더 알릴 수 있는 판촉물 같은, 홍보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달력 만들기'는 마치 나의 숙원사업처럼, 프리랜서일 때에도 매번 위시리스트에만 넣어둔 일이었다. 매번 생각과 고민만 안고 한 해, 두 해...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정말 진짜로 조금씩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달력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싶지만, 막상 손을 대니 만만치가 않다.
올해 1월부터는 블로그에 출력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달력을 무료로 만들어 업로드했다. 누가 사용하고 있긴 한 건지... 뚜렷한 수치는 없어 알 수 없지만, 마치 자기와의 약속인 것 마냥 매월 말일마다 달력을 업로드한 것도 벌써 10번째다.
진행하고 있는 달력 디자인의 콘셉트는, '도시'와 '아이콘'이다. 국가가 아닌 도시를 선정한 건, 몇 년 전 개인 프로젝트로 처음 디자인했던 아이콘이 마침 도시이기도 했고, 장기 프로젝트처럼 오래 작업하고 싶어서였기도 하다. 국가도 많긴 하지만, 도시로 하면 훨씬 더 많으니까...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의 처음은 '내 책 디자인하기'였다. '책'이라는 결과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 기획에서 출판 완성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10년 전 프리랜서를 처음 시작하며 '일감'을 가져오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홍보와 영업이 아닌 '개인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택했다. 북디자인 영역을 넓히고 싶은데 포트폴리오가 없으니, 개인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때때로 클라이언트가 없는 프로젝트는 상상과 기획대로 마음껏 디자인할 수 있어 즐겁지만, 때때로 무력해질 때가 많다.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긴 했지만 2년 정도 틈틈이 작업하며 2019년도에 진짜 책을 출간했다는 점. 앞서 먼저 만들어두었다고 했던 런던 도시 아이콘은 사실 이 책을 위해 디자인했던 작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책과 지금의 달력 디자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구나.
어제는 시간을 내어 AI 관련 특강을 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기술들에 눈이 휘둥그레지다가, 정작 키비주얼이나 브랜드 제품 디자인이 아닌 출판/편집 그래픽 디자인 위주의 작업을 하는 나는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내가 가는 속도 몇 배 이상으로 빨라지는 툴의 성능에 순간 무력감이 밀려왔다.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달력 제작을 위한 디자인 작업과도 비슷한 감정이랄까.
뭐라도 해보자고 시작한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하고 싶어서 해보는 일 앞에 놓인 크고 작은 다양한 현실 앞에 주춤하게 되는 날들이 올 때마다 지난 책을 떠올려본다. 맞아 그때도 그랬지. 누가 알아준다고. 심지어 그땐 일도 별로 없었을 때인데. 결국 만들었잖아. 잊지 못할 경험을 쌓았잖아. AI와 앞으로의 미래 계획을 생각하니 까마득한 것 같지만, 결국 해낼 거라는 믿음을 다시금 스스로에게 새겨본다.
영역이 지금보다 더 넓어질 수 있을까,
혹시 나의 영역은 여기까지인 건 아닐까.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멀리 내다보는 연습이 필요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