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를 높여 나를 높일 것인가, 다른이 위에 올라서서 나를 높일 것인
새로운 법인을 설립한 것이 작년 6월, 얼결에 공간 하나를 덜컥 계약하고, 슬금슬금 공간을 만들고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9개월 차다. 이 과정 중에 나는 생각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 처음엔 의기투합했던 모두가 함께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상권을 활성화하거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지원 사업등을 통해 "정성적 관계"에 대해 익혔다면 이제는 조금 더 냉정하게 자본주의에서의 생존을 위한 "진짜 시장경제"에 대해 익히고 있다고나 할까? 조금 더 냉정하게 나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일을 되게 하기 위해 꼭 함께 해야 하는 관계들을 재정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상과는 달리 현실은 철저하게 입금과 출금으로 이루어진 듯했다.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해 그런가 시장경제에서는 입금과 출금이 너무나 비정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원을 받을 때는 함께 일해보고픈 사람들과는 고용 관계 혹은 계약 관계로 맘껏 일해봤는데, 정작 나의 일이 되고 보니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함께 일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어쩌다 사장입니다
일하고 싶은 인재가 있다면, 내가 그를 나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한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그가 나와 일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수락한다 해도, '일단 일을 시작하고 본다'는 것은 내가 마을 공동체나 지역에 관련된 일을 할 때의 사고방식이었다. 모두가 무임금으로 혹은 조금의 회사 수입이 생기면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사이라며 정신승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무임금 대표로 생활했고, 백만 원 정도 되는 급여를 받으며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을 진행해 봐서 안다. 막연한 희망으로 정신승리를 거듭하며 그저 버티기만 하는, 지루함과 절망의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시간.
그래서였나. 회사를 시작하고 1사 분기는 몽땅 재교육에 투자했고, 2사 분기부터 계속 계산기를 두들기며 돈을 이래저래 맞춰 왔다. 함께 일하는 크루들의 조합을 이래저래 바꿔가며 사람과 돈을 맞추는 일은 신이 났다. 일은 빡세도 누군가와 "진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매달 돌아야 하는 결제 대금, 급여, 그리고 각종 세금과 운영비용, 복지 비용, 그리고 퇴직금 등을 대비한 예비비용까지를 생각하면 가끔 아찔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의 성장을 이룰 수도 있으리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다만, 아직은 내 능력의 한계로 아직은 합류하지 못한 크루도 있어 내 능력의 한계 앞에 매일 무릎을 꿇고 있기도 하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협업의 묘미
그러다가 꾀를 낸 것이 다양한 파트너사들과의 협업이다.
우리는 "기획력", "전략과 전술" 즉, 생각을 파는 회사다. 고객을 위해, 고객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고객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고 존재 이유다. 고객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고 싶지만 역부족일 때 역량이 뛰어난 파트너사들과 협업을 하고 있다. 가령, 우리가 모든 기획을 하고 매달 전략을 짜지만, 마케팅 파트의 실행은 그 역량을 가지고 있는 파트너사가 진행한다. SNS 채널 운영 대행, 플레이스 세팅, 상세페이지 제작, 외 디자인 영역에 한한다.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는 곳은 우리의 생각을 보다 더 멋지게 실현해 우리 고객을 함께 돕고 있다. 경영자의 관점으로 보면, 약속한 날짜에 수준이상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 또한 중요한데 이 또한 파트너사들이 더 칼 같이 지켜 주시는 것도 있다. 물론, 최종 검수 및 책임은 우리가 진다. 성과측정에 대한 객관적 피드백이 쉽고, 그를 거울삼아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잣대도 강화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고. 냉정한 세상의 잣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처음부터 그렇게 세팅을 한 것이 다행이었다. 모두 최고의 결과를 내고 있고, 아직까지 재계약이 안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는 걸 보면.
단순히 갑을, 갑을, 갑을의 관계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덕분에 내가 그 역량을 더욱 맘껏 펼칠 수 있고, 그런 우리 덕분에 우리의 고객이 그들의 고객에게 더욱 잘 포지셔닝되고 있다.
갑이지만 을이고, 을이지만 갑일 때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의 파트너사가 될 때도 있는데, 최근에 아주 인상적인 일들을 경험하는 중이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팀과 함께 만나왔던 A 대표님의 얘기다. 5년도 넘게 나와 크고 작은 협업을 하며 결을 맞춰 온 이력이 있어, 지금은 내가 본격 창업을 하면서 가끔 대표님과 일을 같이 하고 있다. 디자인과 브랜딩 쪽에서 자신의 사업체가 탄탄함에도 대표님은 여전히 혼자 일하고 계신데, 그러다 보니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일에서는 우리 크루가 함께 합을 맞춰 대표님을 서포트해드리곤 했다. (브랜드를 위한 전략 기획실이니 가끔은 인력이 서포트가 될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자꾸만 문제 아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크루들이 대표님과의 협업이 힘들다고 하는 것이었다. 혼자 일하시다 보니, 일의 프로세스가 체계적이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 어렵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신 분이고 늘 너그러운 여유와 똑 부러지는 일솜씨만 보다가 크루들의 얘기를 들으니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지만, 최근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일하시는 A대표님께서 자신의 팀원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때때로 우리 크루를 데리고 다니시며, 편해지시면서 본인의 스타일이 나오시는 것 같았다.
혼자 일하는 것과 팀으로 일한다는 건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하다. 특히나 나는, 사람 됨됨이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표가 자신의 직원이나 크루 vs 고객을 어떻게 대하는가.. 에 있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인데, 기본이지만 어려운 부분이다. 팀을 존중하고 높이는 대표님들은 대체로 인성이 좋으신 분들이 많다. 주변을 높이는 것은 당장에 내가 돋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날 수도 있지만. 그 조바심을 견뎌내면 자연스레 나를 높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대표님의 존중을 받는 주변 사람들도 달리 보이고, 그렇게 좋은 분들이 몰려드는 대표님도 달리 보인다. 대표님의 인품이 만들어낸 주변의 긍정의 에너지와 충성도, 참여도 같은 것도 보이고. 이게 바로 리더로부터 시작되는 내부 브랜딩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에 가깝다.
반대의 경우는 비극이다. 다른 이의 위에 올라 자신을 높이려는 대표님의 경우 처음에는 빠르게 그의 위신이 인식될 수는 있을지언정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와 일을 하며 그렇게 다른 이를 눌러 자신을 높여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다 보면, 왜 그의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쉽게 납득이 되기도 하고, 뒤늦게 깨달은 나의 보는 눈 없음을 탓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이의 위해 올라야 하는 사람의 특성을 많은 심리학자분들께서 '나르시시스트의 특징' 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아, 오해는 말자. 혼자 일하시는 1인 사업자, 프리랜서 분들을 모두 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이 없는 경우엔 내부브랜딩이 필요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심지어 이런 분들도 - 혼자여도- 내부 브랜딩이 잘 되어 있는 분들은 고유의 품격으로 감동을 주기까지 하니까.
을이지만 갑입니다. 스스로의 자존을 지킬 수 있거든요!
사업은 에너지이고, 긍정의 에너지를 위한 자존을 높이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리더라면 종종 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자기 객관화인가 자아도취인가. 진정한 자존이 있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그를 높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것이 자신의 자존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 오늘도, 내 주변의 좋은 점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하루를 만들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