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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Dec 13. 2022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브랜딩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 - 세러데이가락

6월에 열렸던 세러데이가락마켓 - 사진 출처 : 세러데이가락마켓 인스타그램 @saturday.garak



다시 세러데이가락마켓의 이야기
브랜딩을 할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스토리를 더듬는 일이다. 아니, 굳이 더듬지 않아도 결국 브랜드는 대표자 혹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수가 저절로 표출된다. 스토리를 매장과 상품에서 드러내고 그걸 녹여서 마케팅에 잘 활용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아직 서투른 것도 있고, 소위 대박이 날 것 같은 아이템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아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다시 세러데이가락마켓의 이야기를 더듬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는 늘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우리 얘기를..


나는 오랫동안 마을에서 활동해 왔다. 때로는 고만고만한 아기들을 데리고 모인 엄마들과, 때로는 열정이 이글거리는 예술가들과, 때로는 의욕이 넘치는 공무원들과.. 우리는 지난한 시간과 모진 경험 속에 만남과 작별, 싸움과 미움, 도전과 희열로 다져온 사람들이었다. 순수와 열정을 지닌 이들은 진지하고 창의적이었다.  이들은 얼기설기 모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그룹 - 골목 브랜딩, 마케팅 전문가의 영역으로 퍼져있었다. 그러니 이 스토리를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뚝 하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지난 과정의 기록. 이것은 나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








우리 동네의 주체는 누구인가

문득, 전부터 보면서 신경을 쓰고 있었던 제주 창조경제 혁신센터의 유튜브 영상이 떠올랐다. 그때 인상 깊게 들었던 강의의 두 주인공 중 김수진웍스의 김수진 대표님과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진짜다!!) 그녀의 페친이긴 했지만 그냥 덧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였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간절함이 목까지 차 올라 결국 전화를 드렸다. 

골목 상권을 살리고 싶은데 난관이 좀 있다. 뵙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대표님께서는 대뜸 주체가 누구냐고 물으셨다. 지역을 사랑하는 주민들이 함께 추진을 하고는 있지만, 딱히 주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이 몇 년에 걸쳐 끈질기게 마을을 파고 있었을 뿐, 대부분은 이 일이 당장에 스톱이 되어도 하나도 아쉽지 않을 분들이었다. 나는 주저 거리며 답했다.

"동네에 진짜 뭐가 없어서 요청을 드리는 거예요"..라고..


"죄송하지만, 주체가 모호한 곳은 브랜딩을 할 수 없습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거절이 돌아왔다. 


평소에도 여기저기 많이도 들이대는 통에 거절은 익숙하지만, 뭔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거절에 당황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체가 모호하다고 표현하신 것에 크게 놀랐다. 

그렇다. 우리는 분명 모여 있었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러고 보니 이 일을 왜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분도 정확하지 않은 채였다. 마을이 좋아진다니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딱히 지향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고, 당장 이 일을 하지 않아도 삶에는 크게 지장이 없으니 불분명한 주체가 맞았다. 이는 느슨한 연대의 장점이자 약점이기도 했다. 특히나, 나는 이게 나의 본업이 아닌 데다가 이 사업의 로드맵 또한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았기에 나보다 더 사업에 적합한 후임 위원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 "모호함"이라는 말을 아프게 느끼며, 한동안 흥분해 동료들에게 떠들 떠들.. 설명을 하고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우리, 뭔가를 만들어야 해.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해. 그래야 실체가 생길 테고, 그래야 외부에서건 내부에서건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 거야..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


나는 우리의 실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의 얘기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는 것이었고, 무대 세팅을 하고 무대에 이름을 걸고 나면, 우리가 말하고픈 걸 표현하고 우리의 에너지를 모아, 진짜 뭔가를 하고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느슨한 연대 - 모임에 그다지 강제성을 띠지는 않지만 한번 회의가 시작되면 끝나지 않음ㅋ


애자 일한 조직 - 회의도 잘 안 끝남





결핍을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는 것이 기획의 시작 

필요하다면 만들면 되지. 우리가 직접 브랜딩을 해보자. 이제 와서 생각하면 상당히 야심 찬 계획이었다.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과 직접 만드는 동네의 브랜딩이라니.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획자 집단이었다.
우선은 로컬 브랜딩이라는 프로젝트를 세우고 먼저 상인과 주민팀이 나누어 교육을 받았다. 자신의 매장의 성공을 위해 고심하는 주체와 지역에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지역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 - 마을에서 공존하는 두 주체를 설정한 것이다. 물론 나는 두 개 모두 참관을 했다(고 쓰고 적극적으로 수업을 받았다고 읽어주면 좋겠다). 


상인분들이 참여한 과정에서는 각자가 운영하는 매장의 브랜딩을 생각하며 자신의 업을 고민하며 소소한 로고 등을 직접 만들어봤고, 주민이 함께하는 과정은 마침 주민 중 한 명이 구상하는 사업 아이템이 있어서 로컬 상품을 브랜딩 해나가는 과정을 함께했다. 



상인분들의 과정은 참관을 기본으로 옆에서 핀터레스트에서 레퍼런스를 검색하고 미리 캔버스를 활용해 홍보용 페이지를 만드는 것을 돕는 정도로 참여했지만, 주민 참여 과정에서는 더욱 열심이었다. 

주민 분의 상품은 마을의 화장품 매장과 함께 로컬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다.(상권 내 화장품 매장과 함께 콜라보 작업 중이었다) 지역의 이미지를 덧입힌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던 다른 주민의 제품을 놓고 우리는 머리를 맞댔다. 아마도 그것은 마치 상인분들이 그들의 매장에서 상품 하나를 만들어 낼 때의 과정과 비슷했으리라. 과정은 상품 생산을 제외한 브랜딩과 패키징, 판매, 홍보 기획만을 하는 일인데도 전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행을 하며 자연히 상품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머리를 짜내 물건을 만들기부터 시작한다면 어떨까?를 상상할 수 있었다.



자급자족을 넘어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상상

물건이나 서비스, 뭔가를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나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서 십 년을 넘게 일하는 과정 중에 끊임없이 평가를 받고, 고객의 반응에 따라(판매량) 나의 평가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아이들의 발도르프 교육에 맞춰 수공예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수공예의 세계는 나에게 너무 쉬운 곳이었다. 게다가 제품 하나하나에 아이들을 위한 정성이 어찌나 많이 들어가던지. 완성해 놓고 보면 모두가 예뻤다. 자기 객관화라면 자신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걸 업으로 삼으면 내 밥벌이는 될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 정말 어찌나 애착이 가는지.. 이걸 시장에 내놓으면 단번에 수공 예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알아줄 것 같고, 날개 돋친 듯 팔릴 것만 같은 환상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결국 며칠 동안 하나를 만들어 겨우겨우 하나를 팔았던 힘겨운 시스템은 중단되었다. 


이,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과정을 거치며 상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 더 나아가 집착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이해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객관성을 잃기도 한다. 그러니 상품력의 차이가 나는 거고, 객관성을 잃은 상점의 상품은 고객과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게 된다. 이 과정을 진행하며 우리는 오히려 상점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고객의 결핍을 풀어주기 위한 상품(서비스)을 구상하며,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선택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점점 제품에 애착을 가지게 되고, 내가 '팔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어떤 고민을 가진, 어떤 욕구를 가진 당신에게 필요한 제품입니다.. 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 제품 정말 좋은데~, 나는 최고야! 만 연신 얘기하느라 소통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그래서 세러데이가락은?

흔한 말이지만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상품의 탄생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본 우리의 생각들은 우리가 만드는 무대 - 마켓의 브랜딩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우리가 세울 무대의 컨셉과 디테일을 정하는 과정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우리의 결핍과 욕구가 모두 반영되어야 했다. 끄집어내고 끄집어 내 바닥이 드러날 만큼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생각하며 말하기 좋아하는 나도 워크숍을 하고 난 날 오후가 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할 만큼 녹초가 되었다. 1차 롤모델은 포틀랜드의 마켓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마켓을 생각했다. 사진은 물론 책이나 기사 등, 엄청난 자료들을 조사했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파리에서도 마르쉐라는 마켓은 주말 도심 곳곳의 흔한 풍경이었다. 주말, 산책할 수 있는 거리 안에는 항상 마켓이 열렸다. 주중에는 누구나가 바쁘게 일상을 살고, 주말이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나와 노상 카페에서 커피 한잔이나 이른 브런치를 하고 마르쉐에 들러 싱싱하기 그지없는 농부들, 상인들의 상품을 구매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소비력을 이끌 것인가 동네 주민의 시선을 환기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우리 동네의 소비패턴을 보자면 직장인들의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목요일쯤 마켓을 열어 직장인의 소비를 더 유도할까도 생각했지만, 우리가 제안하고픈 골목의 라이프 스타일은 포틀랜드나 유럽의 그것에 더 가까웠다. 어차피 소비가 가장 적게 일어나는 게 주말이라면, 주말의 소비를 진작한다는 측면, 그리고 평일에는 출근을 하느라 동네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주말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을 하는 '주민'을 끌어 마을에 대한 이미지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라면, 토요일에 열리는 마켓은 어떨까? 


이런 질문들 끝에 세러데이가락 마켓은 가락동 소상공인이 호스트가 되어 주변의 다른 소상공인 분들과 함께 이웃을 토대하고 고객분들께 가락동이라는 도심에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들려드리기로 했다.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소상공인들이 마켓에 가지고 나올 상품을 준비한다면, 우리는 고객을 골목과 마켓에 머무르게 할 요소 -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열정은 담대하게 목표는 소박하게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다해 만들되, 자만하거나 집착은 하지 말자는 다짐을 여러 번 했다. 워크숍을 진행하던 대표님께서 마켓에 오는 고객이 얼마나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물으셨을 때 우리는 별 주저함 없이 한 300명쯤만 되어도 좋겠다고 답했었다. 목표는 소박한 듯 보여도 당시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바람이었다. 우리가 하면 근사하겠지?라는 확신은 있었으나 주민과 고객이 우리를 선택해 줄지에 대한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우리의 의도를 행사 전반에 녹이는 것까지는 할 수 있으나 선택은 오로지 주민 즉 고객의 몫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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