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성일까? 우리다움일까?
서윤은 요 2-3주간 틈이 날 때마다 생각에 빠져들었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회의실 공기가 조금 무거웠다.
'우리 병원만의 강점을 정의하라.'
스크린에 뜬 그 문장 때문인지, 서윤의 오랜 침묵 때문인지 이상하게 회의실도 조용했다.
"달리 강점이 있을까요? 요즘 병원들 광고 보면 다 비슷비슷하던데... 최신 장비, 통증의 끝, 환자 중심 같은 거요. 어디서나 본 말들이긴 하지만, 달리 또 뭐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한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 말들로는 우리 병원만의 차별성을 드러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서윤도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환자들이 보고, 병원을 올까 말까 판단하는 건 결국 그거잖아요. 우리도 그런 키워드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실장의 의견은 일견 일리가 있었다.
서윤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럼 결국, 우리도 남들이랑 같은 문장을 쓰게 되는 거잖아요?"
그 순간, 도현이 끼어들었다.
"원장님, 병원 브랜딩의 핵심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에요."
그는 화이트보드에 세모를 그렸다.
맨 아래엔 'What', 그 위엔 'How', 꼭대기엔 'Why'.
"대부분의 병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재활치료를 합니다.', '우리는 협진으로 치료 효율을 높입니다.' 이건 '무엇(What)'이에요. 그다음엔 '어떻게(How)'를 설명하죠. '빠르게, 친절하게, 전문적으로.' 이건 시스템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맨 꼭대기, 왜(Why)예요.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게 없으면, 결국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실장이 반박했다.
"그래도 환자들은 눈에 보이는 걸 보고 오잖아요. 시설, 장비, 진료 분야, 입원실, 식단 같은 거요."
유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입장권이에요. 게다가 새로운 병원들이 계속 생겨나면 그 입장권의 가치는 수시로 변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병원을 고객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겁니다. 병원을 기억하게 만드는 건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이 아니라 '왜'를 기억하죠."
그는 펜을 들어 한 단어를 썼다.
"이유(Reason)- Why-"
"예를 들어 볼게요.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지만, 사실은 '하루의 쉼'을 팝니다. 카페라는 형식을 빌어 공간과 관계를 얘기해요. 애플은 컴퓨터를 팔지만, '자기다움'을 응원하죠. 나이키는 운동화를 팔지만, '도전할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그 브랜드들이 강한 이유는 자신들의 '왜(Why)'가 명확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화이트보드 한가운데에 'OOO', 서윤의 병원 이름을 적었다.
"우리 병원은 왜 존재할까요?, 환자들은 많은 병원들 중에서 왜 우리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대부분의 병원은 '환자를 낫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결과예요. 그럼 진짜 Why는 뭘까요?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사람들의 일상이 다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조금 더 풀어서 말해보자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나 수술 후에 회복을 위해 우리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 존재의 이유요."
서윤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미소 지었다.
"결국, 남들과 다른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답게 보이는 게 중요한 거군요. '사람들의 일상이 다시 이어지게 만드는 일' 또한 우리 병원이 하고 있는 일이지만, 또 저 건너편에 보이는 병원도 하게 될 일일 텐데 그걸 어떻게 고객에게 인식시키고 기억하게 만들 것인가.. 가 중요할 테니까요. "
"맞아요."
도현이 말했다.
"병원의 차별화는 마케팅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자기 이유를 가진 병원은 굳이 소리 내 경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억되죠.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실장님, 병원에서 본인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실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진료부 전체를 조율하고, 매출을 관리하는 일… 이겠죠."
"맞습니다. 아주 정확해요."
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건 결과예요. 매출은 우리가 '잘해서 따라오는 숫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죠. 만약 병원의 목표를 오직 매출로만 본다면 보험을 얼마나 확인했는지, 비급여를 얼마나 권했는지가 일의 중심이 될 겁니다. 그 순간부터 병원은 '회복의 공간'이 아니라 '거래의 공간'이 되죠."
서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회복이에요. 우리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에요. 그걸 잊지 않는 한, 이 병원은 언제나 OOO만의 Why로 빛날 겁니다."
며칠 뒤, 서윤은 슬로건의 첫 문장을 바꿨다.
"우리는 여러분의 활기찬 일상 회복을 위한 여정을 함께 합니다."
그 문장을 본 직원들도 말했다.
"어? 여기 있던 건 그냥 문장이 아니라, 우리 얘기였네요! 이렇게 하니 훨씬 와닿는 것 같아요!"
그날 이후, 병원은 조금 달라졌다.
시설도 사람도, 진료의 프로세스도 그대로였지만, 병원의 분위기와 표정이 바뀌었다. 말투가 달라지고, 설명이 짧아졌지만 더 명료하고 따뜻했다. 그건 아마도, 모두가 ‘왜’라는 이유를 함께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 포지셔닝 이론 (Jack Trout & Al Ries)
포지셔닝은 시장이 아니라 사람의 인식 속 전쟁이다. ‘우리는 더 좋은 병원입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기능을 잊지만, 이유는 기억한다. 병원이 선택받는 순간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철학의 온도에서 만들어진다.
@ 브랜드 아이덴티티 (David Aaker)
브랜드는 로고나 컬러가 아니라, 조직이 일관되게 전달하는 신념의 언어다.
데이비드 아커는 말했다.
“브랜드는 약속이며, 관계이며, 행동의 기준이다.”
강한 병원 브랜드는 외부에서 포장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진심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순간 완성된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잃지 않을 때, 그 병원은 이미 하나의 철학이 된다.
핵심 요약
병원의 경쟁력은 다름이 아니라, 이유의 명료함이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병원이 아니라, 우리답게 보이는 병원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완벽한 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이유를 가진 병원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