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중심 경쟁 vs 경험 중심 가치
매일 아침 빼먹지 않는 루틴처럼 회의는 계속된다. 회의를 마치고 입원 병동 회진을 가기 전 잠깐 여유가 있었다. 창가에 서서 병원을 한번 둘러보고, 이어서 몸을 반대로 돌려 병원 옆 공사 현장을 바라봤다.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새 한방병원이 들어서고 있었다.
오픈 예정이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건물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있지만, 유리 파사드와 간접조명, 카페형 로비가 생긴다고 SNS 홍보가 자자하다. 보이는 걸로는 '새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곳이었다.
"저기, 곧 오픈한대요."
옆에 다가온 실장이 말을 꺼냈다.
"SNS에 사진이 계속 올라오고 있던데, 인테리어가 예술이래요. 곧 날씨도 추워지는데, 성수기에 오픈을 하다니 전략을 잘 짠 거 같아요."
서윤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
"이젠 병원도 카페처럼 예뻐야 하나 봐요."
실장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우리도 리모델링 한 번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환자들은 병원 선택할 때 시설부터 본대요."
그 말은 사실, 요즘 그녀도 자주 듣던 이야기였다. '시설이 낡았다', '환자복이나 시트가 낡은 티가 난다'는 리뷰도 한 번씩 올라오고 있었다.
며칠 뒤, 도현을 만난 서윤은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꺼냈다.
"요즘은 병원도 디자인 경쟁이에요. 다들 인테리어에 돈을 쏟아붓고, 비주얼적인 부분도 끊임없이 SNS로 홍보하죠. 우리 병원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도현은 잠시 로비를 둘러봤다.
중간중간 어두워진 조명이 있었고, 벽면, 문, 특히 바닥 쪽 걸레받이 부분은 세월의 흔적이 있었다. 그는 얼룩이 진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요즘 병원들은 너무 '보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향 좋은 커피, 따뜻한 조명, 감각적인 대기실. 물론 다 좋죠. 그런데 그런 공간은 '처음 방문한 사람'을 위한 곳이에요. 진짜 병원은 두 번째 방문, 재내원 때부터 시작됩니다."
서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두 번째 방문 때부터요?"
"네. 처음엔 시설이 환자를 끌어올 수 있지만, 재 내원을 결정하는 것은 실제 환자가 한 경험이 큰 작용을 합니다. 병원은 공간이 아니라 경험이에요. 사람은 건물보다는 사람과 치료 그 자체의 기억을 더 강렬하게 가져갑니다. 특히, 병원에 있는 동안 자신이 '존중받았다'라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럼 결국, 인테리어가 아니라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경험을 바꾸라는 말씀이네요."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시설을 바꾸면 병원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에요. 환자에게 남는 건 조명의 밝기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입니다. 아, 물론, 이렇게 얼룩이 진 의자나 낡아서 병원 로고가 흐릿해진 환자복과 시트는 즉시 교체해야 하고요. 기본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서윤이 한참을 얘기 나눴던 단골 환자분이 생각났다. 옆에 새로운 한방병원이 생기는 게 나보다 더 걱정되는지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 병원은 친절함은 주변에 비해 나쁘지 않은 수준이고, 딱히 불편한 것도 없다. 치료비 결제를 하며 얼룩자국이 있는 의자와 침구실에서 갈아입었던 낡은 환자복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딱히 바뀌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져서 본인은 그러려니 하고 다니지만, 주변에 적극적인 추천은 잘하지 않게 된다고. 그 말이 지금에서야 다시 머리를 울렸다.
그는 가방에서 펜을 꺼내, 서류 위에 계단을 하나 그렸다.
"이걸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 또는 고객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시설이 아니라, 환자가 우리 병원을 서칭 하고, 검색해서 살펴보고, 네이버나 전화를 통해 예약을 하고, 내원을 해 처음 접수부터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까지 겪는 모든 과정을 설계하는 겁니다. 즉, '공간의 디자인'이 아니라 '경험의 디자인'이죠."
서윤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가 바꿔야 할 건 조명이 아니라 언어고, 고객을 대하는 태도, 우리의 온도네요."
도현은 미소 지었다.
"그렇죠. 좋은 시설은 보이는 이미지는 높이지만, 좋은 언어와 태도는 고객의 인지가치(Perceived Value)를 높입니다. 병원은 결국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어떻게 느껴지느냐'의 싸움이에요. 이 계단의 단계 단계별로 고객 접점을 점검해서 낡은 물품이나 시설은 깔끔하게 교체하고, 우리 병원은, 우리의 구성원들은 어떤 언어와 태도로 고객을 대하고 있는지 점검하세요."
서윤은 다시 한번 창가로 다가가 병원을 둘러봤다. 내가 고객이라면..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니 조금 낡은 부분이 눈에 띄기도 했고, 바쁘게 흐르는 일상 속에서 환자들이 진료실과 치료실을 오가며 직원과 짧게 인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짧은 인사가, 그 잠깐의 미소가, 혹은 잠깐의 소홀함과 무관심이 어쩌면 병원의 첫인상보다 더 오래 남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 병원이 바꿔야 할 건, 시설이 아니라 고객이 경험하는 단계 접점의 서비스구나."
@ 서비스 디자인 (Service Design | User Experience Design)
경험은 설계될 수 있다. 좋은 공간이 아니라 좋은 여정(Journey)이 환자를 움직인다.
치료 전, 치료 중, 치료 후의 모든 순간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 고객 경험 (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
사람들은 시설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기억한다.
건물의 디자인은 첫인상을 만들고, 구성원의 태도는 신뢰를 만든다.
@ 인지가치 (Perceived Value)
환자가 ‘가격보다 가치가 높다’고 느끼는 순간, 병원은 선택된다.
시설이 아니라 감정이 브랜드의 품질을 결정한다.
핵심 요약:
병원의 경쟁력은 더 밝은 조명이나 새 가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환자가 ‘이 병원은 나를 기억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병원은 이미 가장 따뜻한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