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어랑 산책갈까
“달은 공전 주기가 자전 주기랑 같으니까요.”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1970년대 일본 항공기 납치 사건을 배경으로,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믿게 만드는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는 재난과 정치의 이면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며, 진실이 어떻게 ‘연출’되는가를 묻습니다.
극 중 설경구 배우는 말합니다. “야, 우리는 평생 달 뒷면은 못 본다는 건 알지?”
이에 홍경 배우는 T처럼 답하죠. “달은 공전 주기가 자전 주기랑 같으니까요.”
설경구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 ‘트루먼 셰이디’의 명언을 인용합니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때로는 진실도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도 진실을 말한다.”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을 압축합니다.
‘진실’이란 완벽한 실체가 아니라,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진실은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홍경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묻습니다.
“이게 어떻게 굿 뉴스인데?”
그 질문은 단지 상대를 향한 비판이 아니라, ‘보여주는 자’가 가진 책임을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로 외치던 구호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로 바뀝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문장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로 변합니다.
글자 하나, 문장 하나가 바뀌는 순간,
진실은 조용히 방향을 틀고, 대중은 그것을 '진실처럼 디자인된 거짓'으로 받아들입니다. 조지 오웰은 이 변화를 통해 선동과 프로파간다의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AI와 정치, 이미지와 알고리즘이 얽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이 살던 소란스럽고 혁명적인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작가의 초기 발전 과정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를 지배하는 동기들을 알 수 없다. 그의 문학적 제재들은 그가 어떤 시대에 살았느냐로 결정됩니다.
시각디자이너에게도 이 말은 유효합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모른 채 디자인한다면, 그 결과물은 누군가의 ‘굿 뉴스’를 위해 쓰일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말했습니다.
"권력은 어디에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에서나 오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권력은 주로 정부,군대 같은 특정기관이나 인물에게 집중되었지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은 사회의 미시적인 차원에서도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학교, 직장등 일상적인 인간관계와 사회 구조 속에서도 권력이 작용하고 이러한 권력은 개인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통제합니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보이게 만드는 권력’을 가집니다. 디자인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진실을 편집할 수도, 비출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직업. 그 힘을 어디에 쓸지는, 오직 디자이너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진실을 디자인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