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쉽지 않은 마케팅 디자인
(표지 이미지는 내가 래퍼런스를 모아놓은 핀터레스트 캡쳐본. 모두 타 회사에서 만든 멋진 작업물들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마케팅 디자인을 진행했다.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진행한 업무는 이벤트 페이지 제작이었다. 플랫폼과 제휴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할인 페이지였다. 지금 돌아보면 단순 페이지 디자인이었지만, 그때는 사진 보정하고 색 정하고 하는 게 왜 그리 재밌었는지.... 원래 웹 업무를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때 [아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했던 일이 내 커리어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디자인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어떤 일을 한다고 해야 할지 나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될 때가 많았는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김에 정리도 할 겸 써보려고 한다.
사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분야를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벤트 디자인, 배너 디자인이라고 많이 불렀다. 그때는 지금처럼 플랫폼을 통해 광고를 하는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주로 진입을 위한 배너 + 진입하면 보이는 페이지 세트로 작업했으며, 경우에 따라 배너와 페이지 갯수가 많아지고 때때로 개발작업(+QA)이 필요한 큰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업무들은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브랜드 캠페인 연관 업무로, 서비스 브랜딩과 밀접한 구좌다 보니 아무리 작은 업무라도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었다. 회사 초기에 대표님은 이미지 하나를 페이지에 넣더라도 디테일하게 보정하고 닦는 것을 원했고, 배너에 텍스트를 작성하더라도 가독성이 좋냐 안좋냐를 담당 마케터와 함께 고민하곤 했다.(덕분에 디테일 보는 법을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
특정 작업만 한다고 하기에는 업무의 범위는 꽤 컸다. 앱 내 배너와 페이지만 작업하는 게 아니라 외부 광고, 팝업, 더 나아가서는 브랜드 캠페인 영상 컨펌과 오프라인 광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단순히 이벤트 디자인이나 배너 디자인으로만 이 업무를 정의할 수 없다.
나는 우리 팀 이름처럼 마케팅 디자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배너나 페이지부터 오프라인 작업물까지 내 일은 마케팅과 아주 밀접한 일이고 마케팅의 목적에 맞게 디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는 마케팅 디자인이다.
짧은 기간 안에 수많은 배너와 페이지를 작업하는 업무 특성상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마케팅 디자인은 단순 반복작업으로 인식되었고, 몇몇 디자이너들은 배너와 페이지 작업보다는 프로덕트 디자인으로 전향하고 싶어 했다. 예전에 블라인드(blind) 앱 게시판에 본 글들 중에서는 이 업무가 소위 "짜치는" 업무라 중고신입으로라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전향하고 싶다는 내용이 꽤 있었다.
물론 배너나 팝업 등 단순반복 작업은 디자인 진입 장벽이 낮은 분야이긴 하다. 하지만 그 반복작업으로 운영되기 전에는 이 구좌에 대한 디자인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내용이 잘 보일까? 어떤 이미지를 넣어야 후킹(hooking)할까? 어떤 문구를 넣어야 클릭을 할까? 이 문구를 이 위치에 넣으면 잘 보일까 등등등.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디자인은 그 어디에도 없겠지만, 마케팅 디자인을 하려면 알면 좋은 것들을 정리해 보니 내 기준에서는 아래와 같았다.
1. 그래픽과 타이포에 대한 센스와 스킬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
2. 마케팅에 대한 이해 (카피 작성,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매력포인트 이해 등)
3. 웹프론트 개발에 대한 이해 (결국 작업물을 보여주는 장은 앱 또는 웹이기 때문에 필수)
4. 사용자 경험(UX)에 대한 이해 (내 디자인을 사용자가 잘 이해하는지)
위의 요소들이 마케팅 디자인을 진행할 때 제일 중요한데, 디자이너들은 생각보다 1번에서 어려워했다. 이벤트 목적에 맞는 디자인에, 누가 봐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비주얼을 뽑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클립아트 등의 스톡이미지 사이트에 이벤트 페이지에 쓸만한 리소스도 많이 판매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리소스를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면] 다른 앱 서비스나 페이지와 비슷비슷한 디자인이 되기 때문에 이런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그래서 1번같은 크리에이티브 관련 센스가 어렵다.
나도 처음 페이지 하나를 만들 때에는 그래픽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 4번은 마케팅 디자인을 깊게 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공부하라고 하고 싶다. 아직 마케팅 디자인에서 사용자 경험이나 이를 토대로 프로덕트 디자인과 겹쳐서 고민하는 케이스를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것은 나중에 또 글로 써볼 예정!)
그야말로 사용자 눈에 잘 띌 정도로 예뻐야(매력적이어야) 하고 + 그렇다고 해당 서비스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되고(스톡이미지 템플릿을 너무 남발하면 안 됨) + 이 이벤트의 목적이나 배경을 잊어서는 안 되며 + 페이지의 사용자 경험 또한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하이브리드 종합선물세트(?) 같은 디자인이 마케팅 디자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잘 들어맞는 시안을 내려면 수십 개의 B안들을 지워내야 하지만…
지금 IT업계에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대세고, 채용사이트에서 디자이너 구인 리스트를 살펴보면 실제로 해당 직무의 니즈도 많다. 대체로 배너와 페이지 디자인을 해오던 디자이너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직무를 변경하려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UI 작업보다는 배너나 페이지 작업이 디자인하기 쉬워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전문성을 갖추기 힘들다]고 인지된 게 아닐까라고 혼자서 추측하고 있다.
근데 막상 이걸 오래 해보니까, 어떻게 보면 앱 서비스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분야가 아닌가 싶다. 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앱 서비스로 수익을 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를 끌어들이거나 + 앱에 광고 구좌를 파서 그 자리를 구매할 고객을 끌어 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도구가 마케팅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광고는 광고인데, 그래도 디자인 일관성은 지키고 싶고 현란한 광고처럼 보이고 싶진 않고. 근데 사용자는 끌어들이고 싶고…. 마케팅 디자이너는 항상 이 고민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케팅 디자인 12년차가 된 지금, 배너나 페이지를 작업하는 프로젝트를 넘어서 업무 효율성에 대한 거라든지, 너무 많이 생겨버린 케이스들을 일관성 있게 정리한다든지 등등 마케팅 디자인의 백엔드(?) 급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 또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거라 아마존 밀림을 헤쳐나가는 기분이지만,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민거리들과 이에 대한 해결 경험들을 브런치로 써보려고 한다.
10년 넘게 배너와 페이지를 만들고 마케터와 전우애로 일한 디자이너도 여전히 마케팅 디자인은 어렵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들춰보면 항상 문제에 직면하고, 매일 나노단위의 일정에 쫓긴다. 다른 여타 디자이너들처럼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회사에서 마케팅/콘텐츠 디자인 관련 디자이너들이 함께 공유받은 글 링크 올리면서 다음 글감 고민하러 이만… (콘텐츠 디자인에 관련된 글이지만, 마케팅 디자인도 콘텐츠 디자인도 비슷한 맥락이라서 이 글을 읽은 팀 사람들이 모두 격렬하게 공감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