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 Dec 10. 2023

디자이너가 글을 쓴다는 것

시각물로 소통하는 디자이너에게 글이 필요한 이유

어느새 연말이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속으로 기뻐 날뛰던(?) 8월이 엊그제 같은데 매주 글을 쓰다 보니 벌써 12월이다. 나에게 브런치 글쓰기는 올해 목표 중 하나였다. 브런치 서비스가 생기고 초창기에 비교적 작가 등록 허들이 낮을 무렵 호기롭게 작가등록을 했다가 방치하다시피 했더니 어느새 작가 타이틀이 삭제되어 있었다. 글을 다시 쓰려고 브런치(지금은 브런치 스토리로 개편되어 있는)의 문을 두들겼더니 작가 심사가 꽤 까다로워졌더라. 설마 떨어지나 싶어서 일단 글을 쓰고 기다렸는데, 마침 휴가기간에 작가로 등록되었다는 알림을 받고 마음 편하게(?)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휴가 갔을 때에도 글을 썼다는 후문…)


학생 때에는 글쓰기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독후감 쓰는 것을 제일 싫어한 내가 소비 후기도 쓰고 여행 후기도 쓰고, 그러다가 어느새 작가스러운(?) 글을 쓰고 있다. 그래픽과 작업물로 일하는 디자이너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글이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실 글쓰기 자체를 안 한지가 어언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뭘까.



좀 더 나은 디자인 커리어를 위한 글쓰기


사실 디자이너는 온/오프라인으로 작업물을 보여주고 시각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직업인데,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주니어 시절에는 그저 그래픽과 작업물 제작에 집중했고 글을 쓴다고 하면 써봤자 카피 수정이나 역제안 정도였다. 사실 그때 글은 카피 1줄 그 이상을 쓰지 않았다. 그때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글은 아주 신조어와 이모티콘으로 가득 찬 매우 매우 산만한 글이었다.


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것은 다름 아닌 회사 생활에서였다. 한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디자이너도 어찌 되었든 회사의 직원이다. 직원이 일하는 동안에는 회의록이나 발표 장표 작성, 더 나아가서 인사평가에서도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하는 중에도 글을 써야 하고 내가 1년 동안 어떤 디자인을 했는지 평가하는데 보라고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아닌 비디자이너 유관부서에게 내 작업물을 공유할 때에는 글과 말로써 잘 설명(=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글과 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1년 전에 중간평가 글을 작성하고 나중에 보니까 나자신이 봐도 정말 문장 하나하나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엉망이었다. 내가 봐도 이 정도인데 상위조직장들이 보면 이 글로 나와 내가 한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인사평가를 블로그 쓰듯이 가볍게 쓸 수 있는 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앞으로의 긴 회사생활을 위해서는 확실히 회의록이든 일반 위키문서든 글을 잘 써야겠다,라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내가 만든 디자인을 더 돋보이게 하는 제일 중요한 수단이 바로 글과 말이다.

말하기나 글은 디자이너의 주된 업무가 아니지만 내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수단이다. 내가 아무리 디자인을 잘했어도 이를 설명하는 글을 쓰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내 디자인이 정말 멋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가볍지 않게 글을 쓰기 위한 노력


종종 글을 쓰다 보면 내 문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 성격상 정말 각 잡고 글을 써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예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소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나 메신저에 쓰는 글과 회사 또는 플랫폼에 쓰는 글의 어투는 확실히 다르다. 나의 회사생활과 커리어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글과 말에서 보여줘야 해서 좀 더 무게감 있게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내가 브런치에 다시 접속한 이유는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미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지만, 블로그는 이웃공개 일기를 쓰거나 여행기를 쓰는 등 좀 더 마음을 내려놓고 쓰는 가벼운 글쓰기를 위한 공간이었다. 블로그는 브런치와는 다르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광고글도 많고 진지한 고민의 글을 쓰기에는 조회수나 방문자수에 상당히 민감하다 보니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된 것도 있다. 실제로 작가가 쓰는 공간 같은 브런치의 서비스 특징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글을 쓸 때 진지하게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최대한 무게감을 유지(?)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쓴 글도 열심히 보고 있다. 특히 비슷한 톤의 글을 많이 보고 있다. 그래서 요즘 글을 쓰는 기간 동안에는 책을 많이 보려고 한다.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꾸준히 좋은 글을 봐둬야 좋은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너무 횡설수설하게 쓰는 게 아닌가 걱정하면서 쓰고 있다. 한 번에 몰아 쓰지 않고 며칠씩 쓰면서 수십 번 읽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글이겠지만, 내 디자인 작업물을 더 잘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내 커리어를 위해서 글을 쓴다.


(덧. 모자란 글 읽어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다른 브런치 글 보면서도 많은 힘을 얻고 있어요. 글의 힘은 참 대단하군요 ㅎ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