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 Sep 11. 2023

나는 이번에도 실수를 했다.

각박한 업무일정 속에서 실수를 어떻게 대처하는가(a.k.a 자책금지)


2023년 4월 어느 날의 이야기이다.

길고 긴 신규 배너 가이드 프로젝트가 끝나고 실무 담당 디자이너가 슬랙방에 가이드 파일들을 공유했다. 이제 진짜 끝났구나! 싶었는데 아래 달린 담당자의 스레드.


"신규 지면 배너 가이드 잘 봤습니다. 혹시 기존 배너 가이드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뻥 안 치고 이 얘기를 듣자마자 생각난 태조 왕건 - 분노의 견훤 밈.

이게 무슨 소리야! 싶어서 스레드로 기존 배너도 추가하냐고 물어보니, 담당자는 애초에 광고제안서와 요청 메일에 기존 배너 가이드도 요청했다고 했다. 메일을 타고 올라가서 찬찬이 살펴보니, 신규 지면은 별도의 칸 표시가 되어있긴 했지만 리스트에는 기존 배너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외부제작을 위한 가이드 프로젝트에 신규 지면 뿐만 아니라 기존 지면배너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한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팀장님에게 슬랙으로 공유드렸고, 팀장님은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난 것 같다고 히스토리를 알려달라고 했다.


약간의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애초부터 신규 지면 배너가 추가되면서 해당 구좌에 대한 배너 가이드를 내부 제작용으로도 디자인 조정할 겸 외부제작 건도 같이 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이 요청에 담당자는 [기존 지면 배너]도 같이 추가된다고 생각했고, 나는 신규 지면 배너만 생각했다는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 잘못이야?! 누구 책임이야?! 를 명명백백하게 따질 수 있지만, 지금 그게 급한 것이 아니었다. 기존 배너 가이드도 추가해야 하는데 광고 긴급하게 들어오는 건 어떻게 해결할래? 가 제일 시급한 문제였다. 다행히도 실무 디자이너의 이번주 업무가 취소되어 이번주가 비어 있었다.(당장 업무를 할당할 상황이 아니라서 일단 기존 업무들 재정비로 남겨두었다) 이번주 내로 빠르게 정리해서 넘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해결책을 어떻게든 내야 한다는 생각에 뇌 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국 먼저 제작한 신규구좌 가이드는 선배포 진행하고, 기존 배너 가이드는 후배포를 진행하기로 했다. 기존배너의 내부용 가이드가 있었기 때문에 신규지면보다 시간을 덜 걸릴 테고, 대신 추가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배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항들을 당시 팀장대행 M님이 정리 후 커뮤니케이션 해주셨다. 큰 마찰로는 이어지지 않았고(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서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슬랙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담당자 분도 커뮤니케이션 미스를 빠르게 인정했고(우리 서로 고해성사하듯 굽신굽신했다 이 착한 사람들)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 합의했다. 오전시간의 짧은 멘붕은 이렇게 해결되었다.




책임과 해결 사이


이 상황이 생긴 하루 동안 점심시간에도 밥이 제대로 들어가나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어떻게 해결하지?” 걱정만 들었다. 당장 급한 상황이라면 해결이 급선무인 상황이었다. 나중에 M님께 이때 너무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었는데, M님은 남의 탓으로 책임을 돌리려는 자세보다 “내가 뭘 잘못했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좀 더 낫다고 얘기해 주셨다.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갈래?, 아니면 서로 도와서 진흙탕을 나올래? 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 라는 자책은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이라면(나 같은…) 자책의 수렁에 빠져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다가 다른 업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M님께 듣고 책임소재와 해결 그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임소재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둘째치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되짚어보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문제 상황을 발견하고 뇌정지가 오는 것보다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해결하면 되는구나”를 뼈저리게 느낀 날이었다. 물론 혼자 끙끙대지 말고 어려울 때는 상위조직장에게 알려서 해결책을 물어보는 것도 최고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그렇게 나는 간만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번에도 커뮤니케이션 미스를 범하는 실수를 했다. 이 내용은 4월 한 달을 돌아보는 회고 사항에 당당히(?) 추가되었다. 다음에는 메일을 좀 더 꼼꼼히 보고 담당자에게 한번 더 물어봐야지. 제발 꼭....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 피드백, 참 어렵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