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앞에서는 딸을 찾는 우리 부모님
우리나라에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은행이 빌려준 돈으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최근에 아마 대출 갈아타기(대환대출)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금리가 높았을 때에 대출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득인 제도로, 기존에 받았던 대출 금리보다 꽤 낮은 금리의 대출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
갑자기 경제 얘기로 빠졌지만 여하튼… 그 빚 있는 사람 중 하나였던 나와 부모님은 대환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어느 은행 금리가 싸게 나왔는지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나 역시 모바일 앱으로 대환대출을 신청하고 서류심사와 다시 제출을 오가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오더니 온갖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대부분 아빠가 대환대출을 모바일 뱅킹으로 신청하면서 이거 안되고 저거 안돼서 잔뜩 심통이 났다는 얘기였다.
“너네 아빠가 은행 앱으로 서류 제출하려고 하는데 자꾸 뭐가 안 된단다.”
”주민등록등본이 자동제출될 줄 알았는데 이게 안된대. “
“재직증명서가 없어서 대출이 안된다고 하네. 다른 증명서를 내야 하는데 홈페이지에서 발급 서류를 어디서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야. “
“대출 신청하려고 누르면 오늘 신청 건은 이미 마감이라고 신청 못했어.”
(*몇몇 인기 있는 은행 대출(특히 인터넷은행)은 신청자가 몰리면서 하루 신청 수량을 제한했다)
그리고 내 뇌를 때린 한 마디.
“예전에는 은행업무나 주민센터 가야 할 일은 엄마네가 너네들한테 가르쳐 줬었는데, 이제는 다 기계나 폰으로 해야 해서 네가 우리한테 가르쳐줘야 하네. “
모바일 뱅킹, 이 외에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자동화 업무들 앞에서는 부모님이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말만 들어도 어려운 대출이나 부동산, 정부 업무들도 척척하던 분들이었는데, 모바일 앱과 온라인 업무 앞에서는 순식간에 왕초보가 되는 부모님. 은행 앱에서 경고 팝업이 뜰 때마다 쩔쩔맸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안쓰러웠다. 결국 부모님은 지점 방문을 통해 대환대출을 진행하셨고, 모바일로는 가능했던 자동 서류제출도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서 발급해야 했다.
우리 가족들의 스마트폰에는 모두 내가 다니는 회사가 운영하는 배민 앱이 설치되어 있다. 내 형제는 틈틈이 잘 쓰고 있고, 최근에 새 가족이 된 형제의 아내도 B마트나 전국별미에서 이것저것 시켜서 맛있게 먹을 정도로 잘 쓰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은 배민 앱을 잘 쓰지 않는다. 아니, 주문 이력이 아예 없다. 배달 음식을 잘 시켜 먹지 않는 것도 있지만 앱 사용에 필요한 회원가입이나 결제수단 등록 자체가 장벽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본가에 갔을 때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내가 본가 주소로 지정해 놓고 B마트로 추천제품들을 주문해 준다.
부모님 나이대의 어르신들(시니어라고 하겠다)은 정말 필요해서 쓰는 서비스가 아니면 잘 쓰지 않고, 매번 로그인을 해야 하는 상황마저 번거로워하신다. 새로운 앱을 다운로드할 때에 입력하는 계정 비밀번호, 휴대폰 인증을 위해 입력하는 수많은 정보들, 새로운 앱 디자인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신다. 심지어 요즘에는 해외 입국 정보도 미리 온라인으로 등록하고 체크인도 모바일로 진행하는데 이 역시 내가 도와줘야 한다. 생활 속 서비스들은 빠르게 진화하고 자동화되고 있지만, 이 속도를 시니어들은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나 또는 내 또래 거나 더 어린 사람들에게는 굳이 사람을 거치지 않고도 스마트폰과 버튼 하나만 있으면 자동으로 일 처리가 되는 지금이, 시니어들에게는 너무 높은 허들이었나 보다. 가끔은 내가 작업하는 디자인을 우리 부모님은 잘 이해할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모두를 위한 완벽한 서비스나 정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앱 서비스가 오히려 부모님 세대가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었다.
나는 모바일 업계에서 오래 있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제일 빠르게 변하는 폭풍 속에서 일하는 건데, 그 때문인지 광풍처럼 몰아치는 변화 속에서도 어찌어찌 적응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적응력이 떨어질지도…) 그래서 부모님 눈에는 내가 제일가는 스마트폰 전문가처럼 보였나 보다. 내가 잘 쓰지 않는 네이버 밴드(band)의 기능 설정부터 카카오톡의 대화 목록 설정까지 전화로 물어보신다. 나는 아이폰(IOS) 유저라 부모님의 갤럭시 OS(Android) 체제를 전혀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소용없다. 스마트폰 전문가인 딸이 다 알려줄 거라고 믿으시니까. (심지어 나보다 어린 형제가 있는데 그놈한테는 안 물어보신다! 대체 왜!)
설날에 본가에 가서 오랜만에 아빠가 보는 종이 신문을 펼쳐봤는데, 신문을 보던 중 기차표 예매도 어려워하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기사로 나와 있었다. (해당 온라인 기사 링크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340613?sid=102)요즘 기차표 예매는 100%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들었다. 온라인 예매 또는 전화예매이다. 기사에 따르면 시니어들은 온라인 예매가 익숙하지 않아 비대면 예약이 어렵고, 겨우 구한 표 역시 입석이라 기차를 서서 타야 한다. 다른 기사를 둘러보니 역 현장에서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폰 기차표 예매 교육을 진행한다고는 하지만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명절 기차표 예매를 시니어 분들은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이 기사 뿐만 아니라 여러 미디어나 실제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 부모님 역시 기차표나 비행기표 온라인 예매를 어려워하셔서 내가 대신 예매해주고 있다.
정보화 속도에 어찌어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나, 그리고 속도 차이가 너무 커서 적응을 힘들어하는 부모님. 새로운 프로그램과 정보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것을 배워나갈 때의 짜릿함은 항상 기쁘지만, 뒤돌아봤을 때 크게 변한 사회 속에서 막막해하는 부모님을 마주하면 내가 지금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는 대다수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내가 만든 서비스가 세대 간의 정보 격차를 만들고 있는 걸까?
*여담이지만 엄마, 나도 모바일 뱅킹은 어려워. 매번 공동인증서 갱신하는 것도, 서류 촬영한 거 오류 났다고 고객센터에서 연락 오는 것도 나한테는 너무 힘들더라 ㅠㅠ
*그리고 지점에서 방문해서 대환대출 신청한 부모님이 나보다 더 빠르게 대출 갈아타기를 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