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 Mar 03. 2024

실력 있는 주니어와 함께 일하는 시니어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주니어의 성장을 보는 뿌듯함의 사이

우리 팀 평균 연령대는 20대 후반 ~ 30대 초반이다. 회사에도 나보다 어리거나 경력이 적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나에게 이들을 이끌만한 자세를 요구했다.(그에 대한 고민은 앞의 글에서 많이 풀어놨으니 패스하겠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나의 커리어에 함께 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이 가끔 보인다. 누가 봐도 퍼포먼스가 좋고, 실력이 뛰어나다. 어느 일을 맡겨도 척척 잘해내서 함께 일하는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낸다. (보통 이런 친구들이 협업하는 자세들도 좋더라)


이런 디자이너들을 볼 때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이 친구는 크게 되겠다!”라는 생각도 있지만 그 아래에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이제 내가 실무를 하게 되면 이 친구들보다 뒤쳐지겠구나. 기술력이 많이 딸리는구나 등등등. 어느 새 내 손기술(드로잉, 툴 작업 등등)보다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손기술이 더 앞지르고 있구나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지금 불안감을 끼고 일하고 있다.



뛰는 시니어 위에 나는 주니어가 있다면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셋팅은 어느정도 완료되었고, 이제 내부 테스트를 통해 고칠 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피그마(Figma) 툴로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팀에서 본격적으로 피그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우리 모두가 피그마를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 기능 중 하나인 오토 레이아웃(Auto layout) 기능은 이제 빠삭하다고 생각하고, 프로퍼티(property)도 구글링과 국내/외국계 디자이너들의 원기옥(국내 피그마 튜토리얼은 기초적인 것밖에 없어서 주로 외국 디자이너들의 꿀팁을 좀 배웠다…강제로 영어공부도 하고)을 모아 시스템을 구축해 갔다.


어느날은 마스터 컴포넌트에 리소스를 모으기 위해 주니어 중 비교적 피그마에 빠삭하고 피그마 익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디자이너 A에게 업무를 부탁하는 자리였다. 해당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 리소스가 어디에 필요하고 어떻게 셋팅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미팅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그 때 혹시 질문 있냐고 물어보는 내 말에 A는 바로 말을 꺼냈다.


“HYO님! 저 질문은 아닌데…지금 컴포넌트에서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A가 제안한 것은 내가 컴포넌트별 프로퍼티 기능을 셋팅할 때의 고민지점을 단번에 해결하게 만드는 해결책이었다. 나는 아주 찰나 버벅였지만 바로 정신차리고 A가 제안한 대로 컴포넌트 셋팅을 바꿔보겠다고 했다. 나는 컴포넌트 본격 테스트 전에 바로 A의 제안으로 컴포넌트를 수정했고, 덕분에 수많은 프로퍼티의 지옥에서 불필요한 몇 개의 프로퍼티를 삭제할 수 있었다. 컴포넌트 변경 공지를 하면서 해당 셋팅 관련해서 A의 공으로 돌리는것 또한 잊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세대가 교체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지만 나의 생각의 바다 아래에 깔려있는 불안함이 툭 튀어오름을 느꼈다. 나는 이 바닥에서 소위 날아다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는데, 내 위에 저 우주를 향해 날아다니는 주니어 디자이너가 있다니.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충격받은 에피소드는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대로 실무에서 점점 멀어질까? 내가 계속 실무를 고집하게 되면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미친듯이 상승하는 기술력에서 점점 뒤쳐지게 될까?


이런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 자신도 정말 싫었지만, 이런 나를 벗어나서 현재 상황을 인정하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했다. 얼마 후에 있던 팀 워크샵에서 나는 나의 부족함을 팀원들 앞에서 인정했다. 나는 (나이를 들먹이면서) 여러분에 비해서 계속 바뀌고 업데이트되는 신기능이나 플러그인을 바로바로 배우고 응용하는 것이 느리다고, 그래서 이런 기술적인 것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에게 온전히 맡기기로 마음먹었다고. 나는 여러분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방향을 잡아주고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아무리 경력이 많고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어도 경력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내가 부족한 부분에서 후배 또는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더 두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생기는 불안감은 솔직히 누구나 가질 것이다. 그치만 조직의 목표를 향해서는 내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더 뛰어난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




언제든지 밟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창 N회사 시청을 했던 유튜브 영상 중 나영석 PD의 채널 십오야에서 진행했던 소통의 신 중 방송 스텝들과 수다를 떠는 영상들이 있다. 편집본과 라이브 본 모두 여러번 봤는데, 보통은 여기서 각 방송 스텝들이 방송 제작중에 겪었던 에피소드들 얘기가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나영석 PD 또는 이미 메인PD나 리더 역할을 하는 스텝들이 아래 후배들을 이끄는 자세를 위주로 보게 된다. 이 영상들에서 다른 사람들은 후배 스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나영석 PD가 많이 성장한 후배들(신효정PD, 박희연PD 등)의 실력을 부러워하는 부분 등을 보면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이거나 대선배의 자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매번 대선배가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나PD의 [소통의 신]

나영석 PD는 자신이 못하는 분야를 다른 PD들이 너무너무 재밌게 만드는 것이 부러웠다고 한다. 물론 질투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은 부러운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박현용 PD 1편에서 후배들이 뛰어난 선배들을 봤을 때 “난 저렇게 못할 것 같다”며 좌절감이 들 때도 있다고 얘기했는데(위의 캡쳐본 참고) 이는 선배가 뛰어난 후배를 봤을 때에도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런 좌절감에서 극복하는지는 어떤 마음을 가졌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시니어는 주니어들에게 밟힐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현용 PD가 나영석 PD를 [밟고 간다]고 스을쩍 농담조로 한 마디를 던졌을 때 나영석 PD는 [언제든지 밟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렇다. 주니어들은 크게 성장할 친구들이고, 나의 역할을 언젠가는 주니어들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당당히 얘기할 것이다. 언제든지 주니어에게 밟힐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러니 A처럼 더 좋은 아이디어나 방법은 언제든지 얘기해달라고. 그 얘기가 성장의 발판이 될 거라고.


(영상 캡쳐본 출처 : 채널 십오야 유튜브 채널 - 박현용PD 편 https://youtu.be/uqieLb2NanY?si=2Vm6HskKoXQ_cp26 ​)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는 진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