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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용규 Mar 04. 2020

흑백사진

흑과 백이 아닌 빛과 어둠의 경계



필름 카메라를 접하게 된 이후로는 시간만 나면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선물 받았던 카메라 가방 안에는 필름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Kodak T-Max 100이었다. 100이라는 숫자만 보고 필름의 감도만(ASA) 100으로 맞추었다. 어떻게든 셔터를 누를 때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호흡을 멈췄다. 마치 군대에서 사격할 때 호흡조절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민하지도, 아끼지도 않고 무작정 찍었던 첫 롤과는 다르게 한 장 한 장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잔잔히 흐르는 물결에 맺히는 빛의 색도 담아보고 그 빛이 반사되는 그림자들도 담아보았다.


찍는다는 건, 단순히 아름다운 대상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며 경쾌한 셔터음을 듣기 위해 누르는 것만이 아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 무엇을 다른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뷰파인더를 통해서 바라볼 때 귓가에 들리는 소리, 몸으로 전해지는 발끝의 진동이나 바람의 감촉, 시공간이 뿜어내는 독특한 향, 타인들의 낯선 경계심과 나의 어색함 등을 지속해서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찍혔을까 하는 큰 기대감과 사진관에 맡기고 나서의 짧은 기다림이 있다. 이런 식으로 오감, 육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것들이 필름 카메라에 들어있다. 이렇다 보니 사진을 찍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으로 안정이 된다.


이번에 사진을 찍으며 36컷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고 오히려 많다고 느꼈다. 한롤을 다 찍는 데는 며칠이 걸렸고 소중하게 담아본 후에 집 근처의 사진관으로 필름을 맡기러 갔다. 그런데 사진관 사장님께서 이 필름은 맡길 수 없다고 하셨다.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찍었던 게 흑백 필름이고 이 사진관에서는 흑백 필름은 현상을 안 하기 때문이었다. 사장님께서는 흑백사진을 맡기려면 충무로나 을지로에 가야 한다고 하셨다. 며칠 동안 찍었던 게 흑백 필름 인지도 모르고 찍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연스럽게 알겠다고 하면서 사진관을 나왔다. 그제야 카메라 가방에 버리지 않은 필름 케이스를 보니 B&W라고 써져있는 것을 보고 Black & White의 약자인 것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이게 흑백이던 컬러던 나는 이걸 사진관에 맡겨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으니 흑백 필름이 가능한 사진관을 검색했다. 그러다가 예전에 우연히 가보았던 을지로에 망우삼림이라는 사진관을 발견했다. 전화해보니 가능하다고 하여 을지로로 달려가서 다음날에 기대했던 사진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컬러필름과는 다르게 흑백 필름은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사진을 스캔 파일로 받아본 나는 감탄을 하며 흑백사진이 주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명암의 대비도 인상적이었지만 흑백사진은 말 그대로 흑과 백 이렇게 딱 이분법적인 것들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흑색, 조금 덜 어두운 흑색, 완전한 백색, 조금 덜 밝은 백색. 그리고 회색. 과장을 한다면 마치 수묵화 같은 느낌도 나타냈다. 회색이 많았다. 그랬다. 이도 저도 아닌 회색들이 흑과 백을 오가니 흑백 사진은 빛과 어둠을 더욱더 극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우리 집 애완견도 더욱더 선명하게 표현해 주었고 흔들렸지만 저녁 골목길의 우리 엄마 뒷모습도 담백하게 담아내 주었다. 모르긴 몰라도 색이 들어갔다면 보잘것없을법한 사진이 돋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나서 흑백으로 보정하면 되기 때문에 흑백 필름으로 찍는다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디지털과 핸드폰이 있는 상황에서 편리함을 뒤로한 채 필름 카메라를 찍는 것과 색으로 뒤덮인 세상을 흑백으로 담는다는 것이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각 담고 있는 특별한 가치와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흑백사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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