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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 KIM Apr 24. 2019

간판장이

디자이너 그 씁쓸함에 대하여


쉽지 않은 주제다.

글을 쓰기 앞서, 절대로 간판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을 비하하거나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는 점부터 확실히 하고 운을 떼야겠다. 실제로 '쟁이'는 겁쟁이나 고집쟁이같이 나쁜 버릇, 독특한 습관, 성질 등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여서 그 사람의 속성을 표현할 때 쓰는 부정적인 단어지만 제목에 언급한 '장이'라는 말은 대장장이, 간판장이처럼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시각적 공해


내가 대학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할 때만 하더라도 그거 하면 나중에 간판쟁이 된다고 말씀하시던 옛 어르신들이 꽤 많았다. 간판업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썩 그리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씁쓸하게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던 기억들이 스친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전공했다는 학생 들치고 길거리에 서로 이기기를 앞다투는 간판들 욕을 안 해본 사람 아마 없을 것이다. 대학 수업 때 꽤 여러 번 들어본 말인데 그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가끔 거리를 거닐다 보면 다시금 상기되곤 한다.


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오히려 눈 아프다


말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눈에 거슬리는 공해. 

모든 간판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간판들이 무질서함 속에서 지나친 과욕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디자이너들, 그중에서도 시각디자이너들에게는 더 없는 고문이다. 가게 주인이든 건물주이든 간판제작자든 간에 그들의 투자와 비용으로 만들어진 간판이겠지만 제 위치에 걸리는 순간 그것들은 더 이상 그들만의 소유가 아니라 이 도시의 경관이자 공공디자인 요소가 된다. 그리고 전문적인 디자인 가이드나 프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과정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미숙하고 욕심 많은 간판들이 줄줄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모여 시각적인 언어로서 정보를 전달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상실함과 동시에 도심의 경관을 해치고 나아가 그 지역의 아이덴티티마저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너무 거창했나?)




무조건 예뻐야 하는게 아니다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게 만들어야 된다거나 무조건 전문 디자이너가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별 볼 일 없는 나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디자인이라는 영역 자체에 대한 의식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마냥 화려하거나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만을 위한 욕심보다는 시각적으로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매장과 가게가 갖고 있는 정체성이 잘 드러나도록 디자인의 본질 자체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듯하다. 이러한 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그래픽 디자인 문화가 걸어온 길에 앞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나 의식 수준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이 말이다.


디자인의 본질 자체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간판들이 만들어지기엔 진입장벽이 너무 낮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디자인 인력들이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모두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전문 인력들이 만들어놓은 가이드를 따를 수 있게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제도적인 문제도 함께 동반되어야 할 것이고 그런 질서들이 모여 큰 덩어리를 이루었을 때 소위 말하는 유럽의 디자인 선진국들의 도시 아이덴티티 같은 것들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일반인들도 디자인에 대해 보는 눈이 높아지고 상향 평준화되어 그런지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듯한 간판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레트로 감성이 부활하면서 이전의 촌스러웠던(?) 간판들을 더욱 마니아적으로 재해석하여 디자인 퀄리티를 높여서 표현하는 영한 디자이너들이 주목받는 역주행 현상도 꽤 일어났다. 게다가 지역상권 살리기 프로젝트같은 것들로 부산의 전포카페거리나 경주의 황리단길 같은 곳들은 예쁜 상점의 예쁜 간판들이 많이 늘어나 찾는 이들도 많아지고 지역활성화를 시키기도 했다. 심플한 것이 미학이라는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이제 누구나 뇌리에 박혀있을 만큼 보는 눈들이 높아졌고 중요성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자신의 상호명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돋보이려는 성숙하지 못한 마인드의 소유자들도 많아 보인다. 차라리 커다란 간판을 없애고 작은 현판을 걸어놓거나 건물 외관과 어우러지게끔 조그맣게 티도 안 나도록 상호명을 표시해놓은 케이스들이 오히려 더욱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간혹 건물 외관, 인테리어 떼깔나게 잘 만들어놓고 갑툭튀 한 생뚱맞은 간판들로 경관을 헤치는 꼴도 많이 봤으니까.




보이지 않는 숨은 학문적 노력


상호명을 정확히 알림과 동시에 상점의 자기다움과 개성을 실현하고 그에 어우러지는 목적성에 맞게끔 디자인되려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부터 그에 대한 가치를 알아줘야 하는데 그 중요성을 간과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공급에 비해 너무 많아진 수요 탓에 우리 디자이너들 스스로가 설 자리를 점점 더 잃어버린 탓일까. 컴퓨터 그래픽스가 도입되면서부터 간판 디자인 제작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욱 낮아졌을 것이다. 만약 간판 시공자가 디자인 작업을 다소 만만하게 본다면 인건비를 줄이는 차원에서 몇 글자 안되니까 직접 디자인을 해버리는 적절치 못한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트레이닝된 감각과 통찰력은 배제된 채 디자인 툴 조금 배워서 찍어내기 식으로 만들어졌다 라고 상상해본다면 아직도 우리의 간판 문화는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픽 툴 기능만 익혀 사인디자인을 한다라는 사고는 당장 눈앞에 보여지는 시공 기술만 인정하고 그에 동반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본질적 파악, 타이포그래피의 조형성, 컬러와 여백이 주는 레이아웃의 미학 등을 고찰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학문적 숨은 노력은 무시했다는 말과 같다. 간판쟁이 취급당하기 전에 간판장이(장인)로 인정해주는 걸 기대한다면 디자이너들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숨은 학문적 노력을 결과물로 증명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노력해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만이 시각적인 언어로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간판 문화(feat.찌라시)를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나무들이 모여져서 작은 숲을 이룰 때 비로소 큰 숲도 기대해 볼 수 있겠노라고 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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