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인 듯 독학 아닌 부트캠프와 방구석에서 UX 디자인 배우기
이전에 미국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으로 대학원 유학, 부트캠프 수강, 독학으로 준비하는 방법을 소개했었다 (관련 브런치 글 링크). 그중 내가 선택한 디자인 부트캠프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부트캠프 추천 글은 아니다. 해외 취업을 위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라는 글도 아니다. 이 길은 아주 어렵고, 배울 것도 많고, 해외에서는 나름 소득도 좋은 직업이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어 경쟁도 아주 박터진다. 그러니 본인의 상황(취업 신분, 시간과 돈 등)과 적성을 잘 따지고 결정하자.
미국 취직을 원하는 경우,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신분이 있는 사람
캐나다나 유럽이면 모를까 미국은 취업으로 바로 넘어오기가 녹록지 않은 나라이다. 미국 취업을 바라는데 신분과 경력이 둘 다 없으면 학교를 가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이미 대학 나왔는데 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
부트캠프는 수강생이 빠르게 디자이너가 될 수 있게 실무와 포트폴리오 꾸리기 중심으로 짜여 있다. 다만, 이것이 학부 졸업장을 대신해주지는 않으므로, job requirement의 기본인 학부 졸업장은 미리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학벌을 거의 보진 않지만, 적어도 4년제 학사는 요구하는 편이다.)
업무 경력이 있는 사람
디자인 실무 외 업무적인 스킬(협업 스킬, 커뮤니케이션 스킬, 데이터 분석 스킬 등.. 짧게 말해 "일머리")은 부트캠프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부트캠프 출신을 그나마 좋게 봐주는 유일한 이유가, 이미 업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디자인을 배우고 넘어와 협업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팀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디자인 공부를 한 번도 안 해봐서,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과 인프라가 필요한 사람
사실 독학으로 하려면 할 수 있는데, 혼자 하려고 하면 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돈을 주고 커리큘럼을 사고, 멘토쉽을 사고, 네트워크를 사는 것도 방법이다.
데드라인이 있어야 진전이 있는 사람
난 운동도 돈을 어디에 써야 돈이 아까워서 겨우 하는 사람이다. 돈 주고 한 강의에서 데드라인 주면서 협박? 하면 공부하게 돼있다.
같이 준비할 동료를 만나고 싶은 사람
대부분 부트캠프가 cohort제도로 코스를 운영해서 (쉽게 말하면 '기수제') 동기들과 서로 도와주면서 스터디하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참고로, 아래 나의 부트캠프 활용사례에 내가 어떻게 UX 디자인 공부를 했는지 소개되어 있으니, 꼭 부트캠프가 아니어도 디자인 공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트캠프 종류도 참 다양하다. 좀 뭔가 나을 것 같은 느낌의 대학교 부설 코스는 최소 USD 12,000에서 16,000까지도 하고, 싼 거는 1,000 아래로도 있다.
나의 경우, UX 디자이너인 지인이 General Assembly (온라인 부트캠프 중 가장 크고 유명한 곳) 듣다가 별로라서 Designlab에서 부트캠프를 한번 더 들었는데 훨씬 좋았다고 추천해 줘서, 큰 고민 없이 디자인랩으로 골랐다. 그래도 아주 최소한의 조사는 해봤는데, 고려했던 점은
개인의 속도에 맞게 배울 수 있는지 여부
잡 개런티 (대게는 수료 후 6개월 이내 취직이 안되면 수강료를 100% 환불해 주는 개런티 제도)
멘토쉽
커리어 서비스
커리큘럼 별점과 후기
포트폴리오를 위한 프로젝트를 가르쳐주는지 여부
이걸 고려했을 때 가격이 합리적인 걸 고르려 했는데, 마침 또 디자인랩이 이걸 다 갖추면서 가격이 제일 쌌다ㅋㅋ 추가로, 라이브 강의, 오프라인 수업 등의 여부에 따라 가격이 더 비싼 경우도 봤는데, 나한텐 필요 없는 거라 패스.
다시 돌아가서 선택하게 된다면, 위에 기재된 것 외에 1) Group design crit과 같은 활동 여부, 2) 온라인 커뮤니티를 지원해 주는지, 3) 실무 기회나 팀프로젝트 기회를 주는지, 4) 멘토들은 제대로 몇 년 이상 경력이 있는 검증된 멘토들인지를 추가로 확인할 것이다.
디자인랩 추천 글은 아니다. 풍문에 의하면 요즘 부트캠프가 수강생이 반토막 나서, 디자인랩 포함 부트캠프들이 코스 퀄리티와 직원 수를 야금야금 줄여서 겨우 버티고 있단 소문이 있다. 그러니 이 글은 참고만 하여 본인이 잘 따져서 고르자.
참고로, 잡 개런티는 필요 없었다. 부트캠프가 호락호락 환불해 주는 것 같지 않더라.
이 방법은 기초부터 단단하고 나름 체계적?으로 배우는 방법이지만,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방법이다. 나의 경우, 중간에 여행을 많이 다녀서 3개월 넘게 공백이 있지만, 1년 4개월 정도 걸렸다.
부트캠프 전: 인트로 강의 듣기, 디자인 기초 원서 읽기, 피그마 강의 듣기
비주얼, UI 디자인 기초반부터 시작하면서 디자인 감각 늘리기
파트타임 코스를 풀타임처럼 듣기
1:1 멘토쉽 활용하기
Group crits 꾸준히 가기
부트캠프 동기들과 같이 공부하기
부트캠프에 의존하지 않기
UX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정하기 전에 (=퇴사하기 전에) UX 디자인 맛보기 강의를 들어봤다.
그 이후 공부를 위해 퇴사한 뒤, 한 달 반 정도는 쉬엄쉬엄 원서로 디자인 기본서 몇 권을 읽고 (원서 읽기와 추천 도서 관련 브런치 글 링크), 유데미에서 피그마 기초 강좌를 구매해 피그마도 살짝 익혀놨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신의 한 수였던 게, 1) 부트캠프에 큰돈 들이기 전에 맛보기 강좌로 이게 내 길이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2) 맛보기 강의와 디자인 기본서를 읽으면서 영어와 디자인 용어에 좀 더 친해질 수 있었고, 3) 부트캠프에서 피그마를 자세하게 알려주진 않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코스는 밟아야 하니, 미리 익혀둔 피그마 기초가 자신감 상승에 기여를 했다.
디자인랩의 경우, 디자인 경험이 없는 수강생들은 80시간짜리 비주얼 디자인 기초코스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이게 USD 499인데, 이걸 들으면 본코스 등록할 때 USD 500불을 까준다. 기초코스를 들으나 안 들으나 본코스 가격은 같은 샘이다. 당연히 나는 기초코스를 들었다.
80시간 4-8주 코스인데 (8번의 1:1 멘토쉽 포함), 주당 20시간어치 코스/과제를 쉬엄쉬엄 들었다. 생각보다 재밌어서 이 코스만 듣고 UI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헛된 꿈을 꾼다.
과제 제출을 하면 멘토가 피드백을 주는데, 과제를 그냥 올리지 않고, 어떻게 접근했는지, 어떤 궁금한 점이 있는지 등을 메모에 남겨 제출하면, 멘토가 좀 더 신경 써서 코멘트를 주기도 하고, 내 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연습도 돼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본코스가 7천 불이 넘으니, 더 큰돈 들이기 전에 나의 디자인 재능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고 (나름 심사과정? 이 있다. 근데 뭐 어지간하면 다 통과시켜 주는 것 같다.), 몸풀기하기 좋은 코스였다.
디자인랩의 경우 풀타임(주 40시간)과 파트타임(주 20시간) 두 가지가 있는데, 기초반 때 주 20시간이 좀 여유롭긴 했지만 이걸 두 배로 할 자신은 없어서 파트타임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기초반보다 훨씬 어려워서 주 20시간짜리 파트타임도 별로 여유롭지 않았다. 이건 내 공부 방식 때문일 수도 있는데, 나의 경우, 뭐 하나의 개념을 배울 때 얕게 읽고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넓고 깊게 이해해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이라서 초반에 특히 느린 편이다. 뭐 영어로 공부해야 해서 늦어진 것도 있었지만.
그리고 일단 부트캠프에서 타임라인을 좀 말도 안 되게 타이트하게 짜서... 풀타임 트랙에 맞춰 배우다 보면 빠르게 훑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주변에도 파트타임 코스로 등록해 풀타임으로 공부하는 애들이 많았다. (물론 풀타임으로 일도 하면서 풀타임 코스 밟는 괴물들도 있다.)
이 멘토쉽이 사실 부트캠프가 필요한 제일 큰 이유이다. 뭐 공짜로 ADPList에서 30분 멘토 해 줄 경력자를 찾는 게 가능하긴 한데, 이걸 장기간 꾸준히, 자주 멘토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도 않고, 공짜로 누구한테 많은 걸 부탁하기도 참 뭐해서... 보상 차원에서 돈을 주고 멘토쉽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디자인랩 파트타임의 경우, 주 1회, 1시간의 1:1 멘토쉽이 주어진다. 근데 이게 꼭 주 1회 만날 필요는 없이 주어진 개수만큼 멘토를 만나면 되는 거라, 주어진 멘토쉽 횟수 안에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게 화상 멘토쉽 스케줄을 필요한 순간에 맞춰 썼다. 멘토 만나기 전에 미리미리 피드백받아야 하는 과제를 제출하고 (그럼 보통 멘토들이 수업 전에 과제를 좀 살펴보고 들어온다), 질문을 사전에 미리 준비해 갔다.
나의 경우 멘토 운이 좋아 20년 넘게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 경험을 쌓은 베테랑 멘토랑 매치가 되어서, 개인 프로젝트 할 때 어느 주제를 선택해도 전문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 회사에서 디자이너들끼리 정기적으로 (주 1-3회 정도) Design crit 또는 design feedback 시간을 갖는다. 피드백도 디자인 프로세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떻게 디자인 피드백을 주는지에 대해 기초반부터 가르쳐 주기도 한다.
디자인랩의 경우 주 1회 group crits에 참여해 6명 내외 다른 학생들과 경력 디자이너 진행자 1명이 한 시간 동안 서로 과제를 공유해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걸 통해 내 디자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근데 나의 경우, group crits이 필수가 아니기도 하고, 처음 보는 학생들의 과제를 짧은 시간 동안 이해해서 피드백을 줘야 한다는 게 좀 버거워서, 정말 급하게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가지 않았었다. 특히 부트캠프 초기엔 영어랑 디자인 언어 모두 딸려서 더 안 갔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걸 정기적으로 가지 않은 게 매우 후회스럽다. 같은 시간과 같은 진행자의 gruop crits에 꾸준히 가면 보통 같은 학생들을 만나게 될 테니, 서로 친해지기도 좋고, 피드백 주기도 수월해서 디자인 토론 연습하기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부트캠프 거의 막바지에 친구들을 좀 사귀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과 디스코드(한국으로 치면 네이버 카페 같은 느낌?)에서 매일 온라인으로 같이 스터디한 게 도움이 아주 많이 되었다.
같이 스터디 한 친구들과 매일 아침에 화상미팅으로 오늘 목표는 뭔지 (goal), 그동안 뭘 해냈는지 (win), 막히는 부분은 뭔지 (blocker), 피드백이 급하게 필요한지 (feedback)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게 참 동기부여도 되고, 다들 어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지 봐주니까 급하게 피드백 필요할 때 물어보기도 편하고, 서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정보도 주고받아서 큰 도움이 되었다.
방구석에서 혼자 공부할 땐, 주변에 UX가 뭔지 아는 사람도 잘 없어서 외로웠는데, 이렇게 같이 부트캠프 수강하는 친구들이랑 큰 공통분모가 생겨서, 금방 베프가 되었다ㅋㅋ 그리고 UX를 하는 사람들은 호기심도 많아서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오지랖 넓게 관여도 해주고, 누가 좋은 거 발견하면 서로 공유하고 배우는 환경이 쉽게 조성되었다. 솔직히 부트캠프의 가장 큰 재산은 동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마지막으로, 부트캠프에 의존하지 않고, 부트캠프가 하는 마케팅을 믿지 말 것이 나의 마지막 활용 팁이다. 물론 부트캠프 광고를 다 믿는 순진한 사람들은 많이 없겠지만, 부트캠프 수료증과 함께 곧장 수억 대 연봉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는 환상이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은 오롯이 나의 역량에 달렸다는 것.
그리고 많은 부트캠프들이 디자인 스킬 외 실무 (의사소통, 개발자 외 다양한 부서와 협업하는 방법, 프로젝트 관리 툴이나 데이터 분석 툴 활용법 등)를 가르쳐 주지도 않고, 이력서에 들어가는 경력도 부트캠프가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본인의 몫.
그래서 주변에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어디서 경험을 쌓는지 (봉사, 무급 인턴 등) 공유하면서 발품 파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방구석에서 디자인 공부하는 분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