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습관성 관계 끊기 : 도마뱀 꼬리 자르기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발리에서 친구들과 늦은 여름휴가를 즐기던 어느 밤, 해변에서 돌아온 그는 숙소에서 기어 다니는 도마뱀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생전 파충류를 이리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놀라는 동시에 호기심에 젖어 가까이 다가가고 있던 발걸음을 눈치챈 것일까. 도마뱀이 특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벽을 재빠르기 올라 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사람은 보통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움츠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들의 위험 감지 자세는 어떠한가? 울음소리를 내거나 몸으로 강하게 제압하려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독 특이한 반응 중 하나는 도마뱀이 위급상황을 감지하고 나서 순간적으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것이다.


꼬리가 잘려나간 도마뱀은 사진으로만 본 적이 있었다. 인도네시아로 출장 갔던 친구가 신기하다며 보내준 사진은 작은 몸뚱이로 창문틀에 숨어있는 도마뱀의 전신이었다. 가까이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잔뜩 겁에 질려하는 상태였을 것이다. 더 큰 동물에게서 도망치려 했거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위험을 느낀 모양이다. 어느 정도의 위험도를 감지해야 꼬리를 잘라야 한다는 판단이 생기는 것일까?


그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썩 건강한 관계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섞여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와의 작은 말다툼에서 시작해 탁구 시합에서 기를 쓰고 이긴 후부터 서로 서먹해질 기미가 보이자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태도로 친구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받았던 우정 어린 따스함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들은 겨울방학 이후로 단 한 번의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와의 소소한 장난이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잘려나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기는 어려웠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거라고 자부했던 자신감이 무색할 만큼, 고등학교 친구들은 저 멀리 잊혀만 갔다.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그의 습관성 관계 끊기는 대학 가서 연애를 시작하고 더 심해진 듯했다.


처음 시작은 언제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폰과 새벽까지 이어진 전화통화였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나고 나면, 그의 마음이 순식간에 식어져 버린 것 같이 차가워졌고, 며칠간 연락이 뜸하다 싶더니 갑자기 연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여자 친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의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는 말로만 둘러대던 그였다. 왜 그렇게 끝내야만 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관계를 잘라내는 것으로 연애를 마무리하는 편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다른 디자인팀이나 영상팀과 함께 협업을 하다가 친해지게 된 실장이나 감독들이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뒤풀이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연락처를 지우는 것이 당연했고, 업무용 연락처는 팀원들에게 넘겨주어 직접 연락하는 경우를 피하는 쪽으로 했다. 그래서 그의 스마트폰 팀원 몇 명을 제외하곤 가까운 지인들의 이름이 그리 많이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가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서 다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잘려나간 관계를 돌이키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고, 외면당하는 기분이 극도로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먼저 누군가를 외면하고 피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도마뱀의 꼬리가 재생되기까지 약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꼬리에만 집중된 생활을 하는 것처럼, 그의 관계가 잘려나간 뒤에는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할 때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 저녁 약속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쇳덩어리처럼 무거웠고 그의 어깨는 축 쳐져있었다.


잘려나간 관계를 넘어설 만큼 다음번엔 더 깊고 진정한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잘라가야만 하는 걸까. 누군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건네줄 수는 없을까, 뒤섞인 고민들이 줄지어 그의 머리를 괴롭혀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관계에 있어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가장 진실된 관계를 이상적으로 꿈꾸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동반되는 어려움을 버틸 수 없기에 자꾸만 중간에서 길을 멈춰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대상 앞에서 무참히 꼬리를 잘라내어 상대방을 당황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되풀이되는 관계의 고민들을 끌어안고, 다음에 만나게 될 인연과는 조금 더 버텨보기로, 아슬아슬한 줄타기 너머의 안정적인 발판을 밟아보기로 다짐을 굳게 해 보는 그였다.


오늘도 잘라낸 자리에 새로운 꼬리가 생길 거라는 기대 이전에, 지금의 꼬리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으로 조금만 더 버텨보는 것은 어떨까. 지나 보면 순간적인 감정을 붙잡지 못해 놓쳐버린 아쉬운 관계들이 많아진다는 것 또한 기억해보자.


이번엔 잘라내지 않기로 결정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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