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목요일 저녁인데도 홍대 거리는 여기저기서 목청껏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의 젊은 열기로 가득했다. 친구들을 만나러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학생 시절 자주 지나가던 골목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화방의 입구로 들어가던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물건이 가득 들었는지 꽤나 묵직해 보이는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는 두툼한 스케치북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예전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괜스레 아련해졌다. 그 시절 그는 언제나 짐이 가득한 가방을 메고 지하철 역에서부터 학교 정문까지 달려가 수업 시작 조금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곤 했다. 그리고 과제들을 벽에 걸어두고 서로의 과제를 보며 크리틱(critique)을 두어 시간 동안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땐 정말 과제 때문에 죽다 살아났는데.. 지금은 과제 대신 프로젝트 때문에 죽어나는구나.’
그나마 학생 때에 비교해서 나아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크리틱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수님 한 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절에는, 자신의 작품이 나쁘게 평가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 두렵게 다가왔다. 자신이 어젯밤을 꼬박 새워서 완성해 온 그 작품이 누군가의 발언으로 인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게 두려웠나 보다. 신입생 때 선배가 해준 이야기들은 마치 영광스러운 훈장처럼 이렇게 무서운 교수님도 만나봤다 하는 허세 섞인 자랑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자신의 고통이 묻히는 게 아쉬운 나머지 그 고통을 이겨냈노라고 목청껏 이야기하는 것에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해서라도 밤샘 작업의 노고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미대생들이었다. 그들의 눈물겨운 동지애는 졸업 이후에도 간간히 떠올라 이렇게 누가 봐도 미대생으로 보이는 학생을 보면 잠시 멈춰서 격려를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기억에 남는 과제 중 하나는, 일주일 만에 100가지의 일러스트를 그려내야 하는 과제였다. 콘셉트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께서 주제 하나를 가지고 100개의 일러스트를 그려볼 수 있겠냐고 했을 때, 다들 100개 정도는 쉬울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막상 재료를 꺼내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보니 10개와 20개까지는 손쉽게 그렸지만 그 뒤로부터는 겹치지 않는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을 해야 했다. 이런 과제는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친구들을 불러 아이디어로 벽을 치듯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집단 지성을 사용하여 머리를 맞대어 마지막 한 톨의 아이디어까지 짜내려고 해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망의 발표날, 커다란 테이블 위에 각자의 과제를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펼쳐두고 교수님의 피드백만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먼저 이야기하신 것은, 그동안 하나, 둘, 셋까지만 셀 수 있었던 초안 작성에서 100가지로 뛰어가 본 경험을 통해 각자의 벽을 조금은 부수어 봤을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지 바운더리를 모른 채 생각의 틀 안에 갇혀 과제 주제에 맞는 답을 찾아내기 바빴던 학생들은, 숫자의 개념을 아예 뛰어넘는 과제를 받고 100이라는 숫자를 각자 다르게 해석해 돌아왔다. 누군가는 하나의 도구로 100가지의 그림을 그려내었고, 누군가는 제각기 다른 재료들로 100가지의 그림, 창작물, 조각물 등을 만들어 가져왔다. 스타일과 해석이 모두 자신의 생각 방식을 드러내는 과제였던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 마주하는 두려움도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 100가지의 두려움은 하나의 본질적인 두려움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반대로 하나의 두려움에서 파생된 100가지의 반응들이 일상 속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역시나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과제를 시작하면 스케치 단계에서 지우개로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해 소요시간이 항상 오래 걸리는 타입이었다. 실수를 하더라도 끝까지 달려가 완성을 해보는 경험보다는, 한 번의 시도에 종착점까지 다다르는 것을 이상적인 목표로 세웠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시작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결국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그의 일상 속에 숨어 부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관계에 있어도 서로 상처 주지 않는 완벽한 관계를 추구했고, 아침에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마음에 들 때까지 옷을 갈아입었으며, 오늘의 일과가 완벽했으면 하는 생각에 빈틈없는 스케줄표를 만들어 15분 단위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연약함은 인간이 막기에는 턱없지 부족했고, 그의 시도들은 결국 이상적인 목표 아래 무참히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시작한 것은 그가 친하게 지내던 동료의 소개로 찾아간 심리상담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다른 곳에서 들어보지 못한 편안함이 묻어 나왔고, 매일 밤 수면장애를 겪고 있던 그의 마음을 잠시나마 나른하게 만들어 주었다. 항상 프로젝트가 실패할까 봐 두렵다는 이야기를 연거푸 반복하던 그에게, 그녀가 나지막이 그에게 질문을 하며 눈을 마주쳤다.
“만약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진 그는 머릿속으로 실패한 상황을 고통스럽지만 조금씩 그려보려 애썼다. 만약 실패를 한다면, 팀원들은 그에게 원망 섞인 눈초리를 보낼 것이고, 상사는 그를 형편없고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비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 회사에서 가장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 언젠가는 그 분야에서 더 이상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그였다. 이렇게 많은 시나리오가 숨어있는지 모른 채로, 그는 실패라는 이름의 영화를 남몰래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에 대한 고민이 그날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그의 결정들 뒤에 숨어있는 두려움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서 중심원으로 가져와서 동일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그 상황이 가져오는 감정이 무엇인가? 그 상황 속의 진짜 팩트는 무엇인가?’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자신에게 너무나 크게 실망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상황 속의 팩트는, 그는 그래도 일을 계속할 것이며 그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프로젝트를 이어나가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팩트와 감정을 분리시키기 시작하자,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학생 시절은 끝이 났지만, 다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은 것처럼 그는 날마다 100개의 조각들을 찾아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 이어 그의 경험들을 기록하면서 그 여정들을 언젠가 뒤돌아보며 많이 걸어온 자신을 격려할 날을 기대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의심과 공포가 생기지만, 행동하면 자신감과 용기가 생깁니다. 두려움을 정복하는 방법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행동하는 겁니다." - 데일 카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