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완벽주의 알레르기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2화

한 시간 뒤에는 인쇄소에 넘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우스를 클릭하는 오른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듀얼 모니터 왼쪽 화면에는 형광색 그리드로 가득한 인디자인 작업화면이 열려 있었고, 오른쪽 화면에는 오타가 없는지 확인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한글 문서가 열려 있었다. 빨간색 물결이 그려진 곳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다가 혼자 덩그러니 튀어나온 받침 하나라도 발견하는 순간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쇄 맡기기 전에 찾아서 다행임을 강조하곤 했다.


그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글씨를 볼 때 유독 오타를 잘 찾는 그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이 디자인한 작업물에서는 간간히 오타가 발견되곤 했다. 인쇄에 맡길 최종본을 수차례 새로 저장하고 덮어쓰기를 다섯 번쯤 반복했을 때, 이제는 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메일 창을 열어 파일을 첨부하고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야, 그는 배고픔을 느끼게 되었다.


전자레인지에 냉동 도시락 하나를 던져놓은 다음, 4분 30초의 시간 동안 그는 어제 주문한 매거진을 펼쳐 들고 목차를 눈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글씨가 들어오기 이전에 그가 확인하는 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번호들, 그리고 페이지 목록이었다. 텍스트를 읽을 때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종이 위의 흑과 백을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나누어 읽게 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사회초년생 때 실수로 영어 스펠링을 잘못 입력한 사실을, 다이어리를 2만 부나 찍어낸 후에 발견하는 바람에 실장님에게 일주일 내내 혼이 났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강박적으로 온라인 영어 사전을 켜고 단어를 입력한 뒤에 옮겨 적는 과정을 반복했다. 남이 보낸 카드나 패키지에 적힌 영어 단어를 보고도 혹시 제작한 디자이너가 실수한 것은 아닌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실수까지도 안쓰러울 만큼 그는 오타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곤 했다.


자기 지향적 완벽주의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 가끔은 너무 자기를 몰아내세우는 것 같다는 친구들의 반응이 기억이 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도 유독 자신에게 깐깐하고 가혹하게 야단을 치는 것 아니냐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친구의 말을 듣던 그는, 디자이너에게 완벽주의는 필수적인 자세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받아치곤 했다. 하지만 사무실을 넘어서도 이어지는 습관성 오타 확인증이 그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편안하게 식당에서 메뉴를 골라 밥을 먹고 싶을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진 걸까? 대학 때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밤샘 작업 후에 잠깐 눈을 붙인 뒤, 급하게 나오느라 칠칠치 못하게 준비물을 기숙사 방에 놓고 나오는 바람에 룸메이트에게 전화해서 부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바뀌어 버린 건지, 요즘은 MBTI에서 드러난 그의 TJ성향이 유독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의 완성도를 향한 집중력과 놀랄 만큼 디테일한 섬세함이 칭찬을 받는 현대사회에서, “다시”를 외치는 그의 피드백은 팀원들의 험담 주제가 되기 일쑤였다.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안 되냐는 눈빛을 애써 못 본 체하고, 완벽한 칼라를 찾는 그 순간까지 샘플을 계속해서 보려고 하는 마음을 팀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완벽한 자신이 될 수 없음을 알지만,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완성되지 않은 기획안, 연습하지 않고 즉석에서 하게 된 스피치는 거의 악몽에 가까운 경험 이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즉흥적인 여행은 자주 가는데, 일할 때는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아예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어설프게 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것이 혹평을 듣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푯대가 너무 높은 걸까. 기대감이 너무 큰 걸까. 아니면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큰 것일까.


3년 전 그의 완벽주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순간, 생각지 못한 번아웃(Burn-out) 증후군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 쓰러지듯이 침대에 주저앉은 경험을 하고 나서,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아 휴가를 몰아 쓰고 덴마크 코펜하겐행 비행기를 끊어 도망치듯 공항으로 달려갔다. 코펜하겐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이 도착해서 검색창을 열어 눈에 들어오는 블로그 글을 펼쳐보니, 티볼리 정원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그 놀이공원에서 그저 벤치에 앉아 두어 시간을 뚫어져라 하늘만 보던 그에게, 지나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는데, 아이들이 꽃밭에 앉아서 눈을 가린 친구를 톡톡 건드리고 누구 손이었는지 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익살스러운 눈빛으로 친구들의 손을 훑어보던 아이가, 쭉 뻗은 손가락으로 한 아이를 가리켰고, 아니라는 제스처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새로운 기회를 잡아 다른 아이를 가리키는 아이의 표정이 이전보다 더 밝아 보이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실수를 하고 나서, 그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일까.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기회가 있기에 더 신나서 놀이에 임하는 것일까. 그렇게 수차례 물어보고 답을 듣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이들의 놀이는 활기를 잃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그 아이가 틀릴까 봐 긴장하고 있던 어깨를 내리고 편하게 숨을 쉬며 안도감을 얻은 것 같았다. 왜 처음 시도에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에 맞추는 것이 더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삶에서 시도했던 모든 것들 중에, 첫 번째 시도에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좌절하고 후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왜 기다려주지 못하고, 더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어느 한 교수가 여러 두뇌 게임으로 설명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수리적으로도, 판단하는 것에 있어 0.1초 만에 오답을 내리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으로 보아 한 사람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무리 중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가끔 변명 아닌 변명처럼 대화에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완벽하지 못해서 완벽함을 동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기준을 높이고 엄격한 평가를 거치며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숨겨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기능적 습관 강화의 끝에는 좌절과 실패감이 자욱한 안개 같은 순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비합리적인 신념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면, 되풀이되는 실패감의 쳇바퀴에 자신을 가두게 될지도 모른다.


벤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앞으로 남은 이틀 동안 어디서 어떤 시도를 해볼지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먼저 눈앞에서 수차례 지나가던 느릿느릿한 오래된 우든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몇 년 만에 방문한 놀이공원인지 과거를 돌아보며, 빠르지 않아도 재미있을 수 있음을 즐겨보면서, 그렇게 알레르기에서 벗어나 건강한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은 과거의 행동 패턴과 관계 없이
우리는 선택에 따라 현재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완벽주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식 있는 결정에 따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창조적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능력에
큰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 엘리자베스 그레이스 손더스 From [집중의 힘]


#심리학 #디자이너의마음들 #소설 #디자이너가만난심리학


이전화 : 나비와 톱니바퀴, 그리고 장기기억

keyword
이전 01화01 나비와 톱니바퀴, 그리고 장기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