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비와 톱니바퀴, 그리고 장기기억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1화

흰 나비가 종이장처럼 얇디 얇은 날개를 팔랑이며 둔탁함이 묻어나는 쇠사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잠시 숨을 돌리려는 찰나, 녹슨 쇠붙이들이 부딪히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딱딱하다 못해 짓눌릴 것만 같은 무게가 가냘픈 나비의 날개와 대비되며 거침없이 움직여 사이사이의 발톱들을 드러내었다. 톱니바퀴의 사이에서 그 날개가 짓밟힐 것 같아 긴장이 조여오는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언제부터 울음이 섞인 고함이 되어버린 건지, 그의 악몽은 항상 같은 타이밍에서 깨진 유리잔 처럼 파편들만 남긴 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나비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잠시, 그 무게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하여 손사레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어린시절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잡아 있는 악몽이 되풀이 될 때마다, 그는 잠을 자지 않고 깨어서 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나비가 더이상 짓눌리지 않고 저멀리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남몰래 품어 보았다.


‘왜 사람은 원하는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만 기억하는 것일까?’


그의 불만 섞인 생각을 시작으로 하루종일 그의 책상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는 “나비” 그리고 “톱니바퀴”였다. 그의 귀추적 사고력은 톱니바퀴를 자유를 억압하는 악역만큼이나 부정적인 아이템으로 만들었고, 창문 밖에 날아든 나비에게 자기연민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게 했다.


의아한 것은 어린 시절 수많은 기억들 속에 유일하게 특정 꿈이나 사건들만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기도 하였으며 꿈인지 사실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부산의 어느 패스트푸드 점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다섯 살 꼬마아이를 어느 노인 할아버지가 손목을 끌고 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본인인지 다른 아이였는지 해당 기억이 어렴풋이 흐려질만큼 그는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확신이 강해지곤 했다.


사람에게 망각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수없이 많은 고통과 아픔들이 고스란히 기억되어 가혹한 성인시절을 보냈으리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망각은 축복이라며 잠에 들 수 있을 때까지만 생생하던 순간들은 내일이 되면 잊혀지곤 하기 마련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비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어린시절을 눈물로 적셨던 그 꿈이 생각날 때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나비가 자유에 대한 동경을 자극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기기억은 흔히 오랜 시간 남아있는 기억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억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엄마가 말해준 옆집 아줌마 이야기가 돌고 돌아 우리 엄마의 이야기로 끝내 남게 된 적이 있는가 하면, 내 친구의 이야기라고 시작된 루머는 본인을 숨기려하는 에피소드로 둔갑한 나머지 누가 한 일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숨바꼭질로 끝나기도 했다.



우리를 스쳐가던 사건이 장기기억으로 남으려면 고정화 시키는 과정을 동반한다. 마치 코르크보드에 압정으로 추억 사진들을 고정하듯이 특정 기억을 머리 속에 길이길이 보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진들은 보관한지도 모르게 남아 머리속을 돌아다니다가 점화를 거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마치 깍두기를 먹다가 어릴적 엄마와 손잡고 가서 먹었던 설렁탕집 이름이 서울깍두기 였음을 기억하듯 말이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저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춰섰다. 그에게 여행이 주는 안정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불안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문득 화단 꽃밭에 앉은 하얀 나비를 보며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젠 좀 자유로워진거겠지, 예전보다는.’



나비에 담겨진 그만의 의미를 찾아, 나비라는 단어로 쓰여진 노래 가사들을 연속해서 듣다 잠든 적이 있었다. 잊고 있던 가사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한 뼘 성장한 자유로움에 격려를 보내며 그렇게 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나는 나비] - 윤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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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 완벽주의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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