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비둘기 우정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날씨가 화창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집 근처인 광명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가을 하늘이 청명하고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는 날씨였다. 기차를 타러 움직이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의 눈에 거대한 철조각들이 서로 지탱해주면서 하늘을 덮은 듯한 모습의 역사 천장이 대단해 보였다.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서 곧 들어오는 열차 안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차 레일 위에서 갑자기 푸드덕 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쳐다보니 비둘기 두 마리가 아무렇지 않게 레일을 넘나들며 나뭇가지 같은 다리로 총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렸을 적 새우깡을 날리면서까지 쫓아다녔던 비둘기에 대한 애정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이젠 약간의 날갯짓조차 거부하게 되는 걸 보니 어른이 된 모양이다. 옆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년 부부가 비둘기를 쳐다보면서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와 그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광명역은 정말 비둘기들의 파라다이스라니깐. 여기만큼 놀기 좋은 곳이 없나 봐.”


“그래도 친구가 있어 덜 외롭겠네. 혼자였으면 여기 안 왔겠지.”


광명역의 넓은 역사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곧이어 들어온 열차에 탑승해서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약 한 시간쯤 지났을까. 김천구미역에 도착해 하늘 위로 솟아 있는 오피스텔 빌딩들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오늘은 그의 고향 친구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서울에서도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많던 사이였지만 지난달, 오랜만에 마주 앉아 청첩장을 받는 순간,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 한동안 “와 정말? 축하해”라는 말만 반복했던 그였다.


식장은 멀리서 찾아온 하객들로 어수선하면서도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축의를 하고 신랑의 어깨를 툭툭 치며 축하한다고 짧고 굵은 인사를 한 뒤에 씩 웃어주고는 자리를 찾아 식장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저 멀리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향 동생들의 얼굴이 보여서 눈인사를 하고 앉았다.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허울 없이 지내던 친구가 이제 가정을 이룬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자신과는 다른 페이지로 넘어간다는 것 같아 복합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각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끔 연락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젠 공통분모가 아닌 큰 주제가 하나 생기는 것 같았다.


전화기를 붙들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만나서 불편하지 않은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침묵이 껄끄럽지 않고, 서로 잘 보여야 한다고 부담 주지 않는 사이가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괜히 분위기를 띄우거나 힘겨운 하루를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에게는 암묵적인 격려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알아온 사이었기에 조건적인 관계가 아닌 어떤 모습이라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삼십 대가 되어 각자의 생활에 바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가끔 걸려온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려다가도 그저 편안함에 젖어서 어린 시절 추억을 한두 개 꺼내보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사진첩 같은 역할을 해주던 친구가 결혼해서 멀리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왠지 모를 상실감과 아쉬움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행진과 사진 촬영을 마친 뒤에 피로연장으로 걸어가 고향 동생들과 함께 근황을 전하다 보니 한복으로 갈아입은 신랑 신부가 나타났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 친구를 보니 상실의 아픔은 잠시 덮어두고 진심으로 행복을 기원해주고 싶어 졌다.


비둘기는 길들여지는 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먹이를 주는 사람과 특정 기간을 보낸 뒤에는 그 사람을 인식해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소 본능이 있어 멀리 날아갔다가도 다시 떠났던 그 장소로 돌아오기도 한다. 비둘기가 누군가의 관심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그도 어쩌면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안식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젠 새로운 관계로 출발하는 그 친구를 온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진솔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우정이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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