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미안함의 레이어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팀으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나온 분노를 닮은 어느 PM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한결같이 화를 내는가 하면, 어느 팀원은 항상 슬픔이처럼 끝이 아래로 처진 눈썹을 하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힘없이 일하다가 집에 가곤 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이 가는 사람은 지난달에 새로 들어온 인턴 팀원이었다. 항상 제일 많이 움직이고 발 빠르게 뛰어다니는 것 같은데,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죄송합니다”였으며 본인의 역할과는 상관없이 상황이 좋지 않아 분위기가 싸늘할 때에도, 미안함 가득한 마음을 담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미안함을 스스로에게 옷입힐 필요는 없을 텐데,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로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패턴이 있었다. 먼저 사람들의 반응에 빠르게 대처하려고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지나간 일에도 후폭풍이 진하게 남아 있는 편이었다는 것이었다. 후폭풍에 대해 민감한 편인 사람은, 혼이 나거나 위축이 되고 나면 다시 평소의 텐션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호탕한 성격의 담임선생님께서 한 친구를 칭찬하던 말이 아직도 진하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말썽꾸러기이지만 성격이 시원시원했던 그 친구에 대해, 한 번 잘못해서 혼이 나거나 회초리를 맞은 경우인데도 뒤돌아서면 금방 헤헤 웃을 수 있는 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시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참 좋다고 하셨다.


미안함의 감정이 있고, 분명히 반성을 하는 경우에도, 그 상황이 아직 생생한 경우에는 상대방을 다시 가까이 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럴 때에는 조금씩 회피하면서 직접적인 대화를 피하거나, 물리적 거리나 시간을 가지고 난 후에 좀 괜찮아지면 다시 대화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미안한 감정의 층이 쌓이다 보면 어느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엉켜서 그 층들이 다 벗겨질 때까지 한동안 마음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 층이 쌓이려고 할 때, 정말 필요한 감정인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는, 그게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에게 인상적인 멘트를 남긴 친구가 있었다. 잠시 지낼 곳이 없어서 신세를 지고 살던 시절, 항상 얹혀사는 것에 미안해하던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매번 미안하다고 하면 나도 괜히 미안하니까, 다음부터는 고마워 라고 해주면 어때?”


새로운 생각의 전환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안해’ 라는 말을 수시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의 말대로 몇 번의 미안함을 고마움으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마음도, 내 마음도 편해지게 되었다.


포토샵을 열어 여러 가지 레이어들을 쌓아 올리다 보면,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특정 레이어를 잠깐 숨기거나 보이게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클릭을 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 세밀한 부분까지도 볼 수 있어서 작업을 하다가 수시로 레이어 하나씩을 껐다 켜기도 한다. 그러면 그 전까지의 작업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보이는 동시에,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미안함의 경우에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함을 쌓아 올리다가, 잠시 그 습관적 미안함을 숨겨보고, 들춰보면, 그 사이에 내가 무엇을 감추고 싶고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지 알게 된다. 내가 더 좋은 사람으로 비췄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내가 잘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 더 나아가 내가 이 관계에 쏟고 있는 마음이 보인다.


순간적인 미안함이 다시 차오를 때마다 미안함이 아닌 고마움, 존중, 배려 등의 다른 감정으로 잠시 색깔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그의 친구에게 미안함이 고마움이 되어 우정을 더욱 돈독히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수고하고 있는 그 인턴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미안해하는 그 사람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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