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세월이라는 시계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오후에 합정에서 미팅이 잡혀 오랜만에 한강을 넘어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당산에서 합정에서 넘어갈 때 보이는 한강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학교 다닐 때에는 자주 다니던 합정-홍대-신촌 지대를 이제는 가끔씩 오는데도 올 때마다 낯익은 풍경에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유난히 학생들이 많이 지내는 동네라 그런지 젊은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나, 늦게까지 하는 카페를 찾고 있을 때 종종 다시 오고 있지만, 이제는 마음의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자신의 동네라고 부르기에는 멀게만 느껴진다. 항상 다니던 카페거리, 떡볶이집,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들러서 자취용품을 한 다발씩 챙겨가던 다이소도 추억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내가 어릴 때에는 …”이라고 칭하는 나이의 범위가 점점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젠 20대 초반도 더 넘어서 20대 후반도 어린 시절 범주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려서 그렇게 밤샘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주말이 가는 게 아쉬워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러운 건강 고민이 들어서는 때가 되었다. 대학생 때에는 10대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가 어떻게 아침 8시부터 교복을 입고 한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대학생 때의 1교시가 나름 너그러운 시간으로 비칠 만큼 아침의 시간이 어릴 적의 추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시 그 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정장 차림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가득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의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7년 동안 얼마나 자취 실력이 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이젠 라이프 스타일이 반복되어 집에 들어가 하는 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필요한 생활품이나 식자재 등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편리함이 들어서면서부터 그 전엔 어떻게 생활했을까 하는 생각에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가 되면서도 얼마나 더 달라질지에 대한 아쉬움이 벌써부터 올라오는 모양이다. 자신이 중년이 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 거울에서 가끔씩 빼꼼히 보이는 눈주름을 발견할 때마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합정역에서 내려 미팅까지 잠시 남은 시간 동안 서점을 구경하기로 했다. 들어가서 신간 도서 쪽을 보고 있는데,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젊은 남자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 도서를 한 권 손에 꼭 쥐고는 근처에 있는 책들을 보면서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빠도 이제 어른 책 골라. 아빠도 책 읽어야지.”


그는 아빠에게 책을 추천하는 아이가 귀여워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번 추석 때는 찾아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부모님을 떠올렸다. 도시에서의 생활이 바빠질수록, 지방이나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연락을 자주 못 드리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연초에 찾아가서도 밀린 업무를 하느라 책상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 그였다. 그러고 나서 차를 타고 출발하면서 백미러로 부모님께 인사하는데 문득 차 안에 앉은 그의 시간과 부모님의 시간이 과연 같은 시간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모두에게 주어진 365일, 그리고 24시간. 하지만 누군가는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그 시간에 스무 가지가 넘는 일과 생각들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몇 년간 같은 패턴으로 일어나서 집안을 돌보며 자식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일찍 잠에 들기도 한다. 바쁘다고 해서 시간이 느리게 가고, 느긋하다고 해서 시간이 많은 것도 결코 아니었다. 자신이 나이를 먹는 것과 동일한 속도로 부모님도 오늘 또 하루라는 시간을 쌓아가고 계신 것이다.


시계를 보면 분침이 바쁘게 움직일 때 시침 역시나 그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대학생은 오늘도 밤을 새우며 과제를 하고 있고, 직장인들은 야근의 피로감을 달래며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모두가 소중한 하루를 보내고,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 간 시간이 되었다.


세월이라는 이름 앞에, 시계처럼 흘러가는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아쉬움과 미안함에, 오늘의 시간을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마무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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