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끔 마주하는 그의 습관이 생겼다. 자꾸만 자신이 담당이 아닌데도 덩달아 부담을 얻어서 속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비뚤어진 글씨를 보는 게 힘든 것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 스타일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도 이해한다 해도 요즘은 남의 스트레스가 왜 자신 안에 쌓이고 있는 건지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었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방식을 보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얼른 일을 마치는데 의의를 두는 타입이 있다. 그래서 각자의 과정이나 페이스가 달라 맡겨진 일을 하는 데 있어 기대치나 만족도가 다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확인하여 치밀할 정도로 꼼꼼하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실로 들어가면 사실 다른 프로젝트나 다음 일거리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에 먼저 일을 끝내는 게 편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마찰이 생길 때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결국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고스란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친구가 그런 상사가 있다면서 털어놓는 이야기에 괜히 감정이입이 되고 있던 저녁이었다. 그저 덤덤하게 만나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술 한잔씩 털어내면서 상사를 탓하던 그 친구보다 더 열이 올라온 그가 홧김에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팀장이면 팀장답게 책임을 져야지! 그런 식으로 할 거면 팀장을 하질 말던가!”
자신이 말한 그 외침 속에 그동안 묵혀온 것들이 다 같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묵직한 돌처럼 남아있던 스트레스의 근원에서는 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적인 성격 탓이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책임감이 강한 그는, 다른 상황에서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무책임하다는 딱지를 붙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예의를 차려 그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만 그는 속으로 오늘과 같이 수없이 많은 외침을 내지르고 있었다.
팀장이면 팀장다워야 할 것 아닌가.
어른이면 어른다워야 할 것 아닌가.
부모라면 부모다워야 할 것 아닌가.
...
끝도 없이 내려가는 그 책임 전가의 끝은 결국 그의 부모를 향해 있었다. 그가 어릴 적 맞벌이 부모님 아래에서 독립적으로 컸던 만큼, 부모님이 누나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더 자상한 부모를 보면 부러웠기도 했지만, 무책임한 부모를 보면 화가 나곤 했다.
그의 외침은 결국 메아리처럼 돌고 돌아 그의 삶을 옭아매는 그물이 되었다. 그는 멋진 팀장이 되고 싶었다.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부모가 된다면 자녀들에게 인정받는 아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완벽주의 때문인지 그는 일할 때마다 숨 막히는 기분으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끝까지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그는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인정을 받아야만 웃을 수 있었다. 결국은 그의 부족함은 그의 발걸음을 점점 더 무겁게만 했다. 하나를 결정할 때에도 실수할 까 봐 두려웠고,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순간들은 그에게도 힘든 시간이 되었다.
그 모든 욕심과 강박적인 생각들이 책임감이라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 또 하루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힘겨웠고, 괴로웠다.
친구는 술값은 자신이 계산한다며 하소연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툭 내뱉듯이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래도 팀장도 사람이니까 봐줘야지. 자기도 얼마나 힘들겠냐, 기러기라던데.”
“....”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면서 몰아치는 불화살들을 피해 쳇바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책임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책임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책임을 지고 가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었다. 그가 사람을 일처럼 여기고 과제로 여기는 동안에는 성과만 높이려고 하는 끝없는 마라톤을 홀로 달리는 것만 같았다. 자신도 그렇게 달려야 하는 줄로만 알았고, 다른 사람이 달리지 않을 때 비난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잠시 멈추고 시원한 생수를 건네며 둘 다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너무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한 사람은 시원한 물을 건넬 수 있는 손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 같이 한 박자 쉬고 다시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