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점심시간은 아직 조금 남았지만, 자리가 불편해서 조금 일찍 점심을 먹으러 나오게 되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 부장님이 오전부터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순간적으로 자리를 뜨게 되는 것 같다. 당장 그 불편함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없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말에서 그들의 격한 감정이 느껴지면, 말을 멈추고 잠시 일시정지가 된 듯 쉬어가게 된다. 그 사람의 얼굴과 말투에서 드러나는 공격적인 태도가 불편하고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굳이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살며시 그 대화 주제를 피하게 된다. 그 주제를 떠나 그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그 속에는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마음이 숨어있다. 그저 순간을 피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다시 그 문제가 찾아오면 회피를 반복하고, 결국 직면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일을 하면서 수많은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어떤 사람은 고함을 지를 정도로 감정표현에 솔직한 반면, 누군가는 1년을 넘게 같이 일해도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 있다. 특정 성향이 옭고 다른 성향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와 유독 맞지 않다고 느끼는 성향은 목소리도 크고 덩치도 큰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그의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큰 편도 아니었다. 덩치도 덩치이지만 목소리의 발성부터 남다른 유형의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볼륨을 높여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순간적인 감정으로 언성을 높이면, 그 마음을 달래야 하기에 순간적으로 을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쩔 때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이유 없이 혼이 나는 건가 싶어 지금의 상황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로 정해진 그룹은 최대한 말을 부드럽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직원들을 통해 소통하려고 한 적도 있다.
그에게 숨겨진 회피 본능을 애써 고쳐보려고 했지만, 사람들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서 “당신이 잘못했잖아”라고 외치는 듯한 얼굴 표정과 말투를 듣고 있으면 어지러울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누군가가 그를 상처 줄까 봐, 직면을 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다니는 것인지 고민이 될 때도 있다.
그렇게 회피를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직면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좀 봐달라고 소리치는 것은 아닐까.
회피의 반대편에는 방치된 감정이 덩그러니 남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상대방이 외면하고 불러주지 않은 이름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방치되면 방치될수록 가시 돋친 말로 누군가를 붙잡으려 하기도 한다. 마치 송곳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로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상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날카로운 말로 상대방을 찔러보기도 한다. 그럴 때 상대방도 얼음처럼 딱딱하다면, 그 사람도 상처 입고, 찌르는 사람도 끝이 망가진 것처럼 상처 입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다가가는 사람이 물이라면, 찔림을 받더라도 아프지 않게 그 말을 받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얼음과 물은 화학성분이 같지만 사물과 만났을 때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얼음은 사물까지도 차갑게 만들어 버리는가 하면, 물은 순식간에 그 사물을 적셔서 물의 영향을 받게 한다.
그는 마음이 다쳐서 회피하려고 할 때마다, 얼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엔 아직 녹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상대방도 자신도 상처 받지 않도록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천천히 녹아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또 하나의 감정이 방치되지 않도록, 오늘은 조금 더 숨어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