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누구를 위한 노력인가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어깨가 축 늘어진 인턴은 이번 주 에만 벌써 세 번째 따로 불려 가는 중이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실수가 연거푸 발생하는 바람에 모두 부장님의 눈치를 살피던 찰나, 인턴에게 불화살이 날아간 모양이다. 다들 안타깝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타자 소리만 릴레이 하듯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바람을 쐴 겸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기지개를 켜면서 크게 심호흡을 하기로 했다. 20대의 첫 인턴을 보내던 그의 첫 직장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의 첫 직장 상사는 유독 기준이 높은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고 수정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좌절하는 그의 모습을 못 본 건지 보고 넘어간 건지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곤 했다. 수많은 수정으로 인해 파일명이 너덜너덜하게 바뀔 때쯤 최종이 컨펌되었고,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첫 해를 보낸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를 다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 길에 끝에서 정말 웃을 수 있는지,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질문들이 쏟아지던 그 시절, 지오디의 ‘길’을 들으면서 공감을 하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첫 해를 보내면서 그가 본질적으로 묻게 된 것은, 결국 그 모든 시간과 악바리 까지 거슬러 올라가던 그의 노력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누구의 만족을 위한 것이며, 누가 오케이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클라이언트인가, 사수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질문들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노력이 쌓여가는 것임은 틀림이 없었다. 그의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분기를 넘어 일 년을 채우기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계속해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것처럼 앞이 막막할 때, 그저 앞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끝만 바라보고 한 발자국에 최선을 다하지만, 만족이 없다는 생각에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완만한 경사에 이른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3년 차가 되어가던 해였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꽤나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젠 주위의 동료들, 클라이언트의 상황, 대표의 마음까지도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모두가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간접적으로 답을 해보려 했다.


대표는 누구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까? 신입은 누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나 자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는가?


마음 깊이 들여다보니 결국 그가 바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었고, 그것은 때로는 특정 인물이 되기도, 특정 상황이 되기도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의 인정, 그리고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오는 신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인정을 누구나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나, 그래서 내가 인정하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경쟁 때문에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절댓값으로 인정받기 위해 수천 명, 수만 명이 오늘도 같은 트랙을 뛰고 있다면, 1등이 아닌 사람들은 자괴감에 빠져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그럴 때, 돌아보게 되는 것은 결국 어제의 나이다. 어제의 나와 경쟁하면서, 오늘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는지, 성장곡선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성취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해서 그는 달리고 또 달려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어제의 땀방울을 쏟아냈던 자리에서 한 뼘 앞으로 나와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 찰나, 자신을 대견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어제의 그에게 한마디 격려를 건네보았다.


“잘했어, 정말! 네가 자랑스러워!”


누구를 위한 노력인지 모르고 비워둔 그 자리에, 내일의 내가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오늘도 조금 더 힘을 내어 어제의 나를 격려하고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또다시 그렇게 힘을 내어 달려본다. 당당한 모습으로 내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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