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성에서 태도로 바뀌어 오기까지
회사에서 “조금 더 창의적으로 해보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치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요구받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이처럼 창의성은 여전히 ‘특별한 사람’의 능력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창의성은 초능력과 같은 것일까? 지금 현대인에게 창의성은 불필요한 능력일까?
창의성에 대한 내용을 파헤치다 보면 발견하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이 단어, ‘창의성(creativity)’은 생각보다 등장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기포드 강연에서 처음으로 이 개념을 철학적 맥락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1927년). 그 이전의 세계에서는 창의성이라는 인간의 능력은 개념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새로운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려주는 영감이거나 이미 존재하던 진리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호메로스의 시, 르네상스 예술, 중세의 음악조차 인간의 독창적 창조라기보다 신적 질서의 표현으로 이해되었다. 우리는 아주 최근에야 스스로를 창의적인 존재라고 부르기 시작한 셈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인이 작품을 쓸 때 뮤즈가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믿었다. 창작은 내부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도착’하는 것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이러한 개념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모든 창조는 신의 영역이었고 인간은 그 질서를 드러내는 도구에 가까웠다. 이 관점에서는 창의성은 인간의 속성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인간은 창조자가 아니라 매개자였고, 이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개인의 천재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창의성은 ‘선택받은 이들의 재능’으로 이해되었다. 유럽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남긴 작품을 보러 가는 것도 창의적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이라고 주로 생각하고 해석하곤 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조각들이 바로 우리가 여전히 갖고 있는 창의성에 대한 첫 번째 오해의 뿌리다. 창의성은 특별한 사람의 능력이라는 믿음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심리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고, 지능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졌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