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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beta Oct 24. 2021

위기의 순간에 서서


충돌


최근에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 영화 타이타닉을 떠오르게 했다. 그 일도 문제지만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문제가 더 증폭되었다.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나가니 우울하기도 했다가 화도 났다.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영향받아야 했었던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도 싫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예민해져서 회사 다니면서 가장 많이 실수한 것 같다. 팀 동료들에게도 미안했다. 이런 정신으로 매니저를 하고 있는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편으론 나라도 버텨야 동료들이 그나마 의지할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나의 상태를 보고 또 화가 났다. 한 기업 리뷰 사이트에서 우리 회사 평점은 한 달만에 급격히 떨어졌다.


나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나도 나가야 할까 아니면 자리를 지켜야 할까. 내 가치관에 따르면 퇴사하는 것이 맞았지만, 내 책임감은 나를 그 자리에 있으라고 말했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일 년은 해보자는 나와의 약속도 지키고 싶었다.


혼란스러웠다.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동료들이 너무 많이 나갈까 봐 걱정했다. 당연히 우리 팀 동료들도 이런 상황에서 계속 있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터놓았다. 그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됐다. 상황을 보니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도 포기하고 싶었고, 솔직히 퇴사도 여러 번 고민했다.



용기



영화 타이타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배가 빙산에 부딪혀 좌초되는 상황이 되자 모든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며 살 길을 찾고 있었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 정말 신기하게도 한 사람, 윌리엄 하틀리는 갑판 위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승선 전부터 지인들에게 자기가 탄 배가 만약 침몰하면 연주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곡, ‘Nearer, my God, to Thee’였다. 악단 동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무엇인가 결심한 듯 윌리엄과 합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연주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절망적이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다른 승객들이 우왕좌왕하고, 당황하고, 소리 지르고, 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에 윌리엄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실존 인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다른 승객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침몰 10분 전까지 연주를 했다고 전해진다.


윌리엄은 왜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어떻게 저 상황에서 연주를 했을까.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배에서 뛰어내렸을까 아니면 윌리엄처럼 담담하게 연주를 했을까.


사실 회사 상황만 생각하면 윌리엄처럼 결단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내 직관은 나를 퇴사로 몰아갔지만 이상하게 어딘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일단 팀 동료들에게 언제까지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이것도 나에게는 꽤 큰 용기였다. 만약에 상황이 더 심각해져서 내가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진 않을까 두려웠다.



빙산


이 사건 전에도 회사에 문제는 많았다. 우리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세상에 문제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다른 문제는 여느 스타트업처럼 개선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사건은 다른 문제와는 전혀 달랐다. 회사와 직원 간 신뢰가 완전히 깨져서 회복되기 어렵거나 회복되더라도 매우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너진 신뢰는 오직 신뢰를 다시 쌓음으로써만 회복 가능하다.


내 생각엔 잘잘못을 떠나 문제 자체보다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수습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만약 회사가 큰 문제를 방치하거나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심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했다.


가장 상식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걸어봤다. 매 미팅 때마다 부디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되지 않길 바랬다.


빙산에 부딪힌 충격은 너무도 컸다. 알고 보면 거대했던 빙산은 수면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알고 피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부딪히고 나서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회사가 모든 문제를 같은 강도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 어떤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당장'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24시간 밤을 새워서라도 대책을 바로 마련해야 한다. 경영 부채는 회사의 어떤 부채보다 크다.


타이타닉 사건으로 인해 SOLAS라는 해상 인명 구조를 위한 국제 규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타이타닉처럼 많은 사람이 죽고서야 이런 규약이 생겼다는게 안타깝긴 하지만, 이 규약 덕분에 후대의 수많은 사람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노선


힘든 상황에서 이 악물고 버티는게 답이 아니라는 건 박사 과정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최선을 다 해도 결국 그만두게 될 수 있고, 버티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후유증도 커진다.


그렇다고 힘드니까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도 답은 아니었다. 앞으로 인생에서 더 힘들 일도 많을 텐데 그때마다 그만둔다? 그러면 무엇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얼마나 힘들어야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


기준이 없다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마 정 붙이고 다닐 회사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박사 과정 당시에 무작정 극복해보려고 했고 끝까지 버텼는데, 생각해보니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고 어디서 포기해야 하는지 마지노선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엔 최선을 다해 보되, 최종 마지노선을 정했다. (마지노선이 무엇이었는지는 나중에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선택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했다. 누구는 뛰어내리고, 누구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누구는 선장을 비난하며, 누구는 다른 사람의 구명조끼를 빼앗고, 누구는 담담하게 연주를 했다.


이 모든 각자의 선택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상황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도 퇴사하는 사람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었다.


나도 수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최종 선택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워 밤잠을 설쳤다.


나는 내가 정한 마지노선에 따라 최종 결단을 내렸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문제는 늦게나마 해결되고 있었고, 마지노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악의 결정을 하진 않게 되었다. 일단 남아서 조직을 안정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직하는게 훨씬 이득이긴 했다. 남는다고 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미미하고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단지 무슨 일이 있어도 일 년은 매니저를 해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나의 다음 인생 계획을 실천하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새로 입사한 분들이 들어오자마자 사람들 퇴사하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하지 않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남기로 결정한 사람도 더 이상 동료가 언제 나갈까 불안해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회사도 안정화되어 다음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랬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일 년 후에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떨까. 나에게 떳떳했다고,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당장 나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행동을 하고 있을까.


나는 한 달 정도 일상이 무너진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변 동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주었다.


리더의 진짜 숨겨진 모습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평소엔 다 좋은 사람 같다. 위기의 순간에서 매니저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


내가 남아있기로 결정한 후로 팀 동료들은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어 고맙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책임감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타이타닉처럼 가라앉을 것인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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