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laimer: 저는 대표나 인사 경영 담당자가 아닙니다. 회사가 직원을 이렇게 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중학교 때 왕따와 폭행을 당했다. 학교가 무서웠다. 매일 맞으러 가는 등굣길이 두려웠다. 왕따가 부끄러워서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고, 그 상황을 개선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일 년 동안 왕따가 되었다.
극도로 우울해졌고, 학교가 싫었고, 공부에는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우연히 부모님을 따라 약 두 달간 미국 시애틀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첫 수업 날, 수학 선생님이 내 옆에 오시더니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을 걸어주셨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상황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무릎을 굽힌다는 것은 그 당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유치원생도 아닌 중학생에게 말이다. 외국인이고 영어를 못하는 나도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미국 학교의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특히 미술 수업을 가장 좋아했다. 미술 선생님은 내가 창의적으로 작품을 만들도록 장려하셨다. 그리고 내 작품을 시립 미술관에 전시해주시는 등 미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장려해주셨다. 비록 영어를 못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학교 생활이었다. (햄버거도 매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아마 그 미술수업의 좋았던 경험이 내 꿈을 결정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극도로 다른 두 환경을 경험하면서 환경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사람도 어떤 환경에 놓이는가에 따라, 그리고 누군가 독특한 재능을 알아봐 주고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성적도 기분도 많이 차이가 났다.
그래서 매니저가 된 후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공정한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실력을 다 발휘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알아서 잘하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성과를 내는 건 다 개인의 몫인 것 같지만 회사의 역할이 훨씬 크다.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개인도 성과를 낼 수가 있다.
나는 평가 전에 회사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두 가지 환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기준'이다. 회사의 목표,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추구하는 인재상, 일하는 방식, 평가 방식, 직급 정책, 보상 정책 등 회사는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거나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기준을 세워 놓아야 한다.
회사의 외형적인 성장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내부에서 곪아 터지는 문제를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리 없다. 아무리 좋은 평가제도를 도입해도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것이다.
두 번째는 '의사소통'이다. 문제가 없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보다 중요한 건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회사의 중요한 문제가 공식 석상에서 언급되지 않고 술자리에서만 나온다면, 회사의 문제보다 사람들이 험담을 하는 환경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구성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해결하여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주어야 한다.
After you and your people go through the inhuman amount of work that it will take to build a successful company, it will be an epic tragedy if your company culture is such that even you don’t want to work there.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당신과 직원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 많은 일을 해내고 나서 보니 당신조차 일하기 싫은 기업문화가 형성돼 있다면 엄청난 비극일 것이다.
- Ben Horowitz, Co-Founder of a16z
새로운 평가나 보상 정책을 도입할 때는 바로 시행하기보다 평가 체계를 한 번 시행한 뒤 문제점을 개선하고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평가 체계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차별당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평가 시스템을 만든다면, 평가를 크게 자기 평가, 360도 평가, 회사 평가 세 가지로 나눌 것 같다. 그리고 자기 평가는 다시 크게 '업무, 성과, 성장, 문화, 기타' 이렇게 다섯 가지로 나눌 것 같다.
'업무'는 당사자와 매니저가 서로 그동안 어떤 일을 했었는지 나열한 '사실'의 목록이다. 업무 내용과 기간, 같이 일한 동료, 한두 문장으로 프로젝트 개요와 결과를 간단히 적는다.
'성과'는 본인이 어떤 성취를 이뤄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나 수치를 달성했는지 객관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 성과에 어떤 외부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도 적는다.
'성장'은 팀과 환경과 운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과와 별개로, 본인의 성장 속도와 미래 가능성을 보기 위함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면 당장은 성과는 없더라도 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잘하던 부분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못하던 부분도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객관적인 사례와 함께 적는다.
'문화'는 얼마나 회사의 문화에 기여했는지 보기 위함이다. 평가할 때 너무 개인의 성과와 성장에만 집중하면 이기적인 사람들로 넘쳐날지도 모른다. 회사에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남을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도 회사에서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회사의 많은 동료들이나 후에 입사할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 했다면 이 항목에 적는다.
'기타'는 위에 네 가지 항목에서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노력을 어필할 수 있는 공간이다. 회사의 평가 기준은 아니었지만 자발적으로 회사에 이익을 끼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진행했거나, 문제가 있던 회사 문화를 개선했다거나, 맡은 업무는 아니지만 회사 워크샵을 진행했거나 등 회사에 좋은 영향력을 끼친 것에 대해 적는다.
360도 평가는 매니저의 평가와 목적팀 및 기능팀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4~8명의 평가로 이루어진다. 팀장의 경우는 팀원에게도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평가 대상은 C레벨을 포함한 회사 구성원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일단 팀장이 팀원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팀장에게 너무 큰 권력이 생겨서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솔직하게 평가를 주고받을 수 없다. 평가는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받아야 한다.
매트릭스 조직 구조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능팀보다 목적팀 (혹은 제품팀) 동료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비록 직군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목적팀 동료들끼리 서로에 대해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최소한 4명 이상의 피드백을 받아 객관성을 확보하고 공통된 피드백이 있는지 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대부분 다 긍정적인 말만 한다는 것이다. 동료 평가가 서로 성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인사과에서 보상을 하기 위한 근거 자료를 수집하는 형식적인 이벤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평가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고, 보상 시스템도 무너진다.
그럼 어떻게 솔직하게 말하게 할 것인가. 나도 정답은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봤다.
우리 회사가 꿈꾸는 이상적인 일 문화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대표나 팀장이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서로 솔직하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함을 밝힌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행동을 평가하는 것임을 주지 시킨다. 그리고 당신의 평가가 사람은 바꿀 수 없지만 행동은 바꿀 수 있다고 계속 강조한다. 당신뿐만 아니라 회사 구성원 모두가 더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잘 주는 방법에 대해 예시를 들어 자세히 설명한다.
솔직한 평가가 동료의 성과를 바꿀 수 있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상대방에게 먼저 솔직하게 전달해야 자신도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됨을 강조한다.
완전히 솔직한 평가를 해도 어떻게 불이익이 없을지, 그렇게 하는게 어떻게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 설명한다. 특히 팀장에 대한 평가는 절대 불이익이 없도록 안전한 시스템을 만든다.
당신이 받는 평가도 행동에 대한 것임을 인지시킨다. 행동은 계속 개선할 수 있으며, 좋지 못한 평가를 받더라도 회사의 이런저런 시스템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렇게 수집된 평가는 일단 모두 인사 경영팀에게 전달한다. 인사 경영팀은 당사자에게 전달하기 전에 검수를 거친 후 다음과 같은 경우 반려한다.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
한 두 문장으로 너무 짧아 성의가 없다.
건설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화풀이를 한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더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건강한 문화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 좋은 방법을 아는 분은 댓글 달아주시기 바란다.
언어로 주는 피드백도 물론 중요하지만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수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로 적은 피드백을 점수로 환산하는 것이다. 점수가 너무 정교하거나 너무 추상적이면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글에서 사용하는 다섯 가지 등급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Needs improvement (개선 필요)
Consistently meets expectations (기대 충족)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Strongly exceeds expectations (매우 기대 이상)
Superb (최고로 뛰어남)
회사만 개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개인도 회사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가는 완벽한 존재가 불완전한 존재를 평가하는게 아니다. 서로 부족한 존재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개인이 낸 성과는 잘했든 못 했든 회사의 문화와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상급자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서 일을 성공적으로 빨리 끝냈다면, 그것은 회사의 문화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많은 자율성 때문에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면 그것도 회사의 문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이렇게 상반되는 피드백을 줄 경우, 회사는 자율성을 더 잘게 나누거나 한계를 정하는 등 자율성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율성뿐만 아니라 투명성,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회의 문화, 직급 문화 등 개인의 업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또한 개인이 회사를 평가할 때는 회사의 어떤 부분이 달랐으면 본인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에 기반하여 작성한다. 내가 원한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역량, 팀, 프로세스, 전략, 시장 상황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회사가 자신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도 몰랐던 문제를 발견하거나, 여러 사람이 언급하는 공통된 회사의 장점이나 단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회사에 입사할 때는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만, 막상 입사 후로는 관심이 없어지기도 한다. 개선하려는 노력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가 먼저 나서서 평가를 받고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발전 없이 정체될 수 있고, 구성원도 정체될 수 있다.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다. 회사는 저성과를 낸 사람이 완전히 늪에 빠지기 전에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태도의 문제라면 개선하려고 도와주는게 아니라 경고를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저성과 대응 방법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가 있다.
제도화
우리 팀 같은 경우 주간 미팅을 통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누구나 어렵거나 막히는 부분을 들고 와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퀄리티가 상당히 올라간다. 저성과를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모임은 아니지만 이렇게 서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만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연차가 낮을수록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는 후행적인 다른 방법들과 달리 '제도화'는 저성과를 어느 정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코칭
코칭은 당사자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고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약점을 보완하게 도와주고 장점을 더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코칭이라고 생각한다.
코칭할 때 주의할 것은 그 사람이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성격은 고치려고 하면 안 된다. 공을 차서 골대에 넣는 법을 가르쳐주면 되지 그 사람이 공을 찰 때 너무 신중하게 생각해서 기회를 놓치는 성격까지 고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나중에 프리킥의 황제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모든 단점은 장점이 될 씨앗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 따라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 권위자로부터 상처를 받았거나, 그냥 성격상 피드백을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성장이 더디더라도 참고 기다려주는게 낫다. 그 사람의 역할과 영향력을 줄이고 일단은 피드백을 받아들일 만큼만 주면 된다.
역할 재조정
성과가 낮은 사람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일을 맡은 건 아닌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자신의 역량보다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를 맡거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일을 맡는다.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계속 놓이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럴 때는 그 사람에게 새로운 일을 주면 된다. 조금 더 간단하거나 그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일을 준다.
멀티태스킹이 너무 잦아서 하나에만 몰두할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런 경우는 다른 매니저나 관련자들과 논의하여 한 두 개의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스콥을 조금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동료들과 일을 분담해도 된다.
팀 이동
너무 빠르게 일하는게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성장하는 속도가 팀의 요구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버거울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성장 속도와 페이스를 맞출 수 있는 안정화된 서비스를 맡으면 도움이 된다.
만약에 진취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인데 기존 제품을 개선만 하고 있거나, 조금씩 사용성을 개선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하는 신규 프로젝트에 할당되었다면 힘들어할 수 있다. 이런 경우도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알맞은 팀을 이동시켜줄 수 있다.
팀 동료의 팀 이동을 고려할 때는 이동할 팀에서 같이 일할 사람들까지 파악해보는게 좋다. 예전엔 나도 여기까지 생각해야 하는지 몰랐다. 한 팀 동료가 자신이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기에 다른 팀으로 보내줬는데 결국 힘들어하다가 퇴사했다. 내가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 동료의 팀 이동을 말릴 것 같다. 팀 이동을 고려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이동할 팀의 매니저와 팀 사람들과 궁합이 맞을지도 알아보는게 좋다.
회사는 보상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까? 내가 아는 한 실력과 연봉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실력에 비해 연봉을 많이 받고, 어떤 사람은 실력에 비해 적게 받는다. 그래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 건 서로의 연봉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봉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많이 받는지 적게 받는지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가 기본적으로 취하는 두 가지 입장은, '올해 (혹은 기존 직장) 연봉 기준으로 내년 연봉을 정한다.'와 '나가지 않을 만큼 준다.'이다. 이 둘은 사실 가장 안전한 방법이긴 하다. 당사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봉이 오르긴 하기 때문에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에이전시에서 최저 임금에 가까운 연봉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 만약 뛰어나게 성장했다고 해보자. 그래서 드물지만 20%라는 큰 상승폭으로 연봉이 올랐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액수는 크게 오르지 않는다. 일 년을 또 열심히 일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해보자. 이직한 회사에서도 기존 연봉에 대비해서 20%를 올려주었다. 2년 연속 20% 인상이라니! 하지만 이전 연봉이 낮기에 최종 연봉의 절대적인 액수는 크지 않다. 실력은 뛰어난데 아직도 대기업에서 시작한 사람의 초봉보다 훨씬 낮다.
어쨌든 그 사람은 기존보다는 많이 받았으니 서로 나쁠 건 없지 않냐고 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생각에 보상은 회사 가치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기존 직장 연봉에 비례하여 상승하기 때문에 실력과 연봉의 간극이 생긴다.
회사가 그 정도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회사에 두 가지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째는 퇴사율이 높아진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 자신의 능력을 대우해줄 곳으로 가기 원한다. 둘째는 받은 만큼만 일하는 사람이 생긴다. 어차피 연봉이 많이 오르지 않으니 적당히 일한다. 이런 사람이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많아지면 정작 열심히 일하고 싶은 사람이 답답해서 퇴사한다.
많은 회사의 이런 보상 정책 때문에 희한하게 연봉이 가장 많이 오르는 경우는 이직할 때이다. 실력 있는 사람이라면 돈을 미리 더 주고 붙잡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사람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직에 대한 생각이 줄어든다. 만약 떠난다고 할 때 연봉을 올려준다고 하면 '왜 이제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간다고 말했을 때는 이미 다른 곳과 연봉 협상을 마쳤고 마음의 정리를 한 상태일 것이다. 그때 붙잡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러면 또 채용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직원이 자신이 연봉을 더 받아야 하는 이유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거기에 노력을 들이느니 이직을 하는게 낫다고 판단한다. 그러다가 만약 잘하는 사람이 이직하면 회사도 손해다. 정당하게 보상했으면 이직하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사람일 텐데 말이다.
실력 있는 사람은 아마 여기저기에서 연락을 많이 받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잘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합당하게 대우하는게 중요하다. 회사는 어떻게 하면 구성원이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경제적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울지 않게 미리 챙겨줘야 한다.
보상 원칙이 없으면 훌륭한 사람을 붙잡아둘 수 없다.
내가 CEO가 아니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손익분기점을 넘지 않았다면 일단 회사를 살리는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보상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문화가 망가져도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성장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회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더 중요한 건 회사가 보상에 대해 가진 생각을 직원과 투명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보상은 아래와 같이 구성된다. 물론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내가 회사를 만든다면 고려해볼 것 같은 항목들이다.
보상 = 연봉 (역량) + 스톡옵션 (특수 요인) + 성과급 (목표 초과 달성 - 외부 성공 요인) + 기타 수당 (초과 근무 등) + 초과 이익 분배
스톡옵션, 보너스, 기타 수당은 분야나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르므로 여기서는 모두가 받는 연봉에 대해서만 얘기해보고 싶다. 내 생각에 연봉은 현재 회사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개인 역량에 대한 보수라고 생각한다. 내외부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꾸준히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그래서 적절한 연봉을 주기 위해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역량을 올바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역량을 어떻게 파악할까? 전 회사에서 팀장이었으면 실력이 뛰어난 걸까? 전 회사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면 실력이 뛰어난 걸까? 10년 차면 역량이 뛰어난 걸까? 1년 차면 무조건 적게 받아야 할까? 누구나 일하는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전 직장에서 잘했던 사람이 꼭 우리 회사에서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우리 회사만의 직군별 역량 체계를 만들어 놓고, 각 레벨마다 정확히 기대하는 수준을 정의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급이 촘촘하게 있는 조직이든 직급이 없는 수평적인 조직이든 레벨은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이 사람이 어떤 레벨에 속하는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GitLab이 공개한 직군별 경력 사다리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레벨 1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에겐 어떤 역량을 기대하고 레벨 5 (시니어)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에겐 어떤 역량을 기대하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와 개인이 서로 기대치를 가지고 일할 수 있고, 연봉도 적절하게 줄 수 있다. 레벨은 당사자도 알도록 하고, 다음 단계로 가려면 무엇을 하는지도 명확히 해야 다음 연도 협상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실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면 레벨을 몇 단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역전 현상도 일어나야 다른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
레벨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평가 시스템에 의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가 시스템이 매우 잘 작동해야 하고, 특히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기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직원은 공감할 수 없는 형식적인 평가에 이해할 수 없는 연봉을 제시받는다. 과연 그런 회사에 열정을 더 바치고 싶을까?
나는 처우를 제시하고 당사자에게 0~5점 척도로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다. 예를 들어, 0점은 '화날 정도로 적다.', 1점은 '성과에 비해 많이 적다.', 3점은 '적절하다.', 5점은 '매우 만족한다.'로 나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상대방의 응답에 따라 추가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회사도 더 공정한 평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면 회사 운영 칸반 보드를 만들고, 파악된 문제를 다 나열하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업데이트할 것 같다. 어떤 문제는 ‘원인 파악 중’ 일 수도 있고, 어떤 문제는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 중’ 일 수도 있다. 구성원에게도 공유하여 회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면, 안심이 될 것이고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계속 문제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투표한 문제를 우선순위를 높여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가와 보상은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경험도 없는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적게 될 줄은 몰랐다. 설령 내가 위에 적은 방법이 모두 잘못되었을지라도 내가 의도했던 바는 딱 한 가지다.
평가와 보상은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가 어떻게 (공평이 아니라) 공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직원에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돈 보다 중요한 건 그런 신뢰를 줄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