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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beta Oct 21. 2021

상대방의 공감을 얻으려면


듣는 태도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할 때면 어김없이 회장님에게 최종 보고를 하기 전에 여러 직급의 사람들에게 발표를 거쳐야만 했다. 당시엔 내가 회사마다 사정을 모르고 외부인이라 그런지 그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어차피 최종 결정은 항상 가장 높은 분(보통 회장님)이 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재밌었던건 보고 받는 분마다 의견이 달랐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듣고 어떤 분은 싫어했고, 어떤 분은 좋아했다. 상무님과 상의해서 가져간 결과를 전무님은 싫어했다. 그리고 회장님은 엄청 좋아하셨다.


처음엔 이런 일을 겪으면 단순히 불쾌했다가 여러 번 겪으니 직급 높은 분들도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나고 직급이 높은 분이라도 비전공 분야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본인의 사고 체계 안에서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회장님들은 시야가 넓어서인지 더 열려있는 경향이 있었다. 


회장님들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실제 전략으로 옮기는 것을 보며 같은 아이디어라도 누구에게 전달되는가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날개를 달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거절하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죽을 수도 있다.


One of the things that we've learned is the importance of listening because the very best ideas can very often come from the quietest voice. Ideas are extremely fragile.
최고의 아이디어는 가장 작은 목소리에서 나올 수 있다.
- Jonathan Ive, Former CDO at Apple


우리는 새로 라이트 모드와 다크 모드를 제공할 때 기본(default) 옵션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했었다. 우리 제품은 다크 모드만 제공하고 있었으므로 기존 사용자가 갑자기 라이트 모드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당황할 것이었다. 사용자의 습관을 강제로 바꾸는 것은 대부분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때 한 엔지니어가 '기존 사용자와 신규 사용자를 분리하여 각각 다른 기본 옵션을 제공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면 기존 사용자는 계속 편안하게 다크 모드를 사용할 수 있고 신규 사용자는 OS 설정에 맞출 수 있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나는 타직군 동료들이나 타부서 사람들에게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그럴 때 정말 희열을 느낀다. 직군이 다르다보니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신선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때가 많다.


남의 의견을 많이 듣다 보면 어떤 의견을 취하고 어떤 의견을 취하지 않아야 하는지, 의견을 받아들일 땐 어떻게 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조금씩 감이 생긴다. 그런 감이 생기면 더 많은 의견을 들어도 거부감이 없고 액기스만 남겨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능 능력이 길러진다.



말하는 태도


내가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들면 상대방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100% 맞는 말에도 상대방은 충분히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내 기분이 어떻든 합리적이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거부하는 편인데,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감정적으로 대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고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내가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 주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기 작업물에 굉장한 애착심을 갖는다. 만약 상대방의 그런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의도도 좋고 이성적으로는 상대방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대방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해서 듣고 내 의견을 거부할 수 있다. 내가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어도 말이다. 이성만 많이 발달한 사람은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


반대로 상대방 감정에 너무 감정을 신경 쓰느라 일을 진행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매니저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혹시 상처를 주진 않을까, 내 작업물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등 수많은 고민을 한다. 이렇게 고민을 너무 깊게 하다가 주요한 의사 결정 시기를 놓쳐버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도 자신 같이 감정을 배려해주길 기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일하는 곳에서 어느 정도의 논쟁은 필수다.


예전에 두 매니저가 나에게 동일한 부탁을 했는데, 접근 방식이 매우 달라서 흥미로웠다. A 매니저는 자세한 배경 설명 없이 "데이빗이 이 일을 맡아볼래요?"라고 물어봤고, B 매니저는 "현재 사정이 이래서 두 가지 옵션을 생각해봤는데 뭐가 더 나은 것 같아요?"라고 의견을 먼저 구했다. 그리고 이어서 첫 번째 옵션을 선택할 경우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죄송하지만 여력이 없어서 두 분의 부탁을 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 다 나의 거절을 수용할 만큼 열려 있어서 감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화가 끝난 후 내 마음속에 다른 감정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A 매니저의 제안은 내가 수락 아니면 거절을 해야 하는 대화 방식이었고, B 매니저는 우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같이 해결책을 찾으려는 대화 방식이었다. 그래서 B 매니저의 요청도 거절하긴 했지만, 대화하면서 플랜 B를 같이 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상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상대방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움직여야 한다.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설득력


신규 기능을 만들 때, 사람들 간에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향성이 팽팽하게 대립한 적이 있다.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수많은 시간을 토론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개발 프로토타입까지 만들고 테스트를 해봤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했다.


논의가 더 길어지기 전에 빠르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짜리 고객 리서치를 했다. (다른 일과 병행하지 않았다면 3일 정도 걸렸을 것 같다.) 당시엔 리서처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사용자 인터뷰를 했다. 다만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동료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6명만 인터뷰했다. 이전에 리서치를 많이 해봐서 4~5명 이상이면 공통된 패턴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보 사용자와 고급 사용자 두 부류로 나누고 각각 3명씩 인터뷰했다. 다행히 누구도 인터뷰를 취소하지 않았다. 모든 인터뷰는 녹화하고 요약해서 당일에 공유했다. 사용자가 전 세계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새벽이나 저녁에 하게 될 때도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사용자의 실제 목소리를 주제별로 담은 리포트를 만들었다. 리포트에는 여러 사용자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간단한 리서치를 통해 우리가 가진 가설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용자의 생각도 알 수 있었다.


사용자 한 명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것을 제외하면 초보와 고급 사용자 모두 우리가 대립하던 두 가지 방향성 중 한 가지를 선호했다. 물론 선호도 조사는 아니었고 why가 훨씬 중요했다. 우리는 두 말할 것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생각과 논리만으로 결정이 어려울 때 항상 사용자의 목소리는 강력한 결정 요소가 된다. 공통된 사용자의 의견은 소모적 논쟁을 줄여주고, 개인의 생각과 논리를 앞서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답을 제시해준다.


다만 가끔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고객의 목소리 같은 정성 데이터나 정량 데이터로도 결정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그럴 때 매니저는 직위를 사용한 결정을 할 수 있다. 누가 데이터나 논리로 아이폰을 만들자고 설득할 수 있었을까?



전달력


우리 제품 인터페이스에는 블루 컬러가 조금씩 모든 곳에 들어가 있었다. 무채색에 파란끼가 조금씩 섞여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블루 컬러 때문에 인터페이스가 전체적으로 어색하고 완성도가 약간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그 블루 컬러가 사용자가 우리 제품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제품의 특성상 우리 제품의 브랜드가 드러나기보다 사용자의 컨텐츠가 드러나는게 훨씬 더 중요했다. 코카콜라같이 제품이 드러나야 하는 경우와 사용자의 컨텐츠가 드러나야 하는 메모 앱을 만들 때는 전혀 다른 브랜딩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을 설득할 때는 블루 느낌을 제거하고 중성(neutral) 컬러로 가는 것이 우리 제품 안에서 '사용자의 컨텐츠를 더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제품뿐만 아니라 브랜드팀에서 원칙을 세울 때도 '사용자를 우선순위에 두고, 그들의 작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우리는 좋은 배경이 되자.'라고 제안했다. 우리가 아니라 ‘사용자가 빛나게 하자’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기도 했고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의미를 함께 전달하면 상대방이 수긍할 확률이 더 높다.


내가 만약 더 완성도 있고 아름다운 인터페이스를 만들기 위해 블루 컬러를 제거하자고 했으면 과연 통했을까?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착해서 들어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설득을 잘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그냥 믿고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내 설득력과 관계없이 매 번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내가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수용적인 사람이기에 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나의 커뮤니케이션 실력을 높이고 싶다면 사실에 의미를 담아서 전달하는 연습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카드사와 함께 전략 프로젝트를 했을 때, 여러 카드 사용자와 인터뷰를 하다 보니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한 가지 기회가 보였다. 그런데 그 기회는 사실 모든 고객이 마음속으로 원하지만 신용카드라는 컨셉과는 맞지 않아 애초에 고려되고 있지 않은 영역이었다. 우리가 기회로 본 영역을 정작 클라이언트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장을 그대로 옮기진 못하지만) '000를 팔지 말고 000를 팔자.'라는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핵심을 전달했다. 결국 이 기회요소가 제품 전략에 포함되었고 현재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한 자동차 회사와 전기차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내연기관차와 다른 전기차의 특성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도출해야 했다. 사용자가 자동차를 이용하는 세부 단계별로 나열하고, 각 단계에서 사용자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기록했다. 사용 단계와 사용자의 기분을 엇갈려서 분류해보니 네 가지 다른 패턴이 보였다. 그리고 각 패턴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하나씩 달아주었다. 발표할 때는 청중의 머릿속에 네 가지 단어가 기억에 남도록 했다.


클라이언트는 네 개 중에 세 개는 생각해봤던 것이지만 한 가지는 새롭다고 말했다. 덕분에 네 가지 중 그 영역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분들이 컨셉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게 네 가지만으로 정리한 것도 있지만, 쉬운 단어와 연결 지어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달하려는 바를 발표 자료에 빼곡히 채우지 말고 추리고 추려 '단 한 문장이나 단어' 혹은 '단 한 가지 개념'으로 정리하면 상대방이 비로소 알아들을 것이다. 물론 거기엔 사실뿐만이 아닌 그 사실이 가진 의미가 들어있어야 한다.



비유


말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말해야 한다. 일부러 사자성어나 어려운 말을 사용하면 상대방은 나의 지식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과는 대화가 안 통하는군.'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말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공감을 얻지 못하면 상대방의 행동 변화를 유발할 수 없다. 곧 내가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진정한 설득은 상대방의 머릿속에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는 비유를 드는 것이다. 내 생각엔 우리 제품은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우리 제품을 사랑하는 핵심 사용자들도 어렵다고 했다. 핵심 사용자조차 우리 제품이 어려우면 신규 사용자 확대는 불가능해 보였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레고 블록만 제공하고, 레고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는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여러 요소를 다양하게 조합해야만 비로소 그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김밥 예시를 꺼내 들었다. 사용자에게 더 이상 "김밥 재료 말고 김밥을 주자."라고 했다. 단무지, 햄, 시금치를 따로 주어 만들어 먹게 하지 말고 바로 먹을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물론 만들어먹으면 사는 것보다 맛있겠지만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고객들은 그들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우리 제품을 고용한 것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제품은 고객의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했다. 고객은 김밥 재료가 아니라 김밥이 필요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바로 어떤 뜻인지 이해했다. 신기했던건 반년 이상 지나 누군가 그 얘기를 다시 꺼냈다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는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기억된다.


어느 중요한 회의에서 단기 계획과 장기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나는 해당 안건의 경우 여러 이유로 단기 계획이 장기 계획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기와 장기라는 단어가 주는 대등한 느낌을 피하고, 단기 계획을 더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집을 짓는 것은 좋은데, 당장 비를 피할 곳도 없이 기초 공사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빨리 비를 가릴 것을 먼저 만들고 나서 집을 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바로 무슨 뜻인지 이해했고 그 뒤로는 비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내가 그냥 단기 계획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면 그 정도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적절한 비유 덕분에 대화의 중심이 단기 계획으로 옮겨갔다.


단기 계획, 장기 계획이란 말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없다. 당연히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휘발된다. 나는 다른 글에서 '리더가 내뱉은 한 마디는 곧 엄청난 파도가 되어 널리 퍼진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각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큰 파도가 끝까지 멀리 퍼지는 이미지가 그려질 것이고, 리더의 말이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나은 것처럼, 백 마디 말 보다 한 번의 비유로 상대방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시각화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며 죽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잡스는 2×2 표를 그리며 애플이 앞으로 어떤 제품에 집중할지 설명했다. 이 표를 보면 한눈에 네 가지 제품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구분되었다. 각각 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다른 카테고리와 겹치지 않도록 신경 썼을 것이다. 이런 표 없이 그냥 네 가지를 나열해서 말했다면 이렇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2×2 표는 너무 단순해서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많은 회사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때 효과(impact) × 노력(effort) 그래프 자주 활용한다. 여러 가지 목록 중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효과가 크면서 노력이 적게 드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 (좌측 상단) 효과도 적고 노력도 많이 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측 하단) 이런 그래프를 그리지 않고 말로만 설명하려면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만드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 것이다.


시각화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설득력: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효율성: 복잡한 정보를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유연함: 글과 달리 상황에 맞는 다양한 도식 활용이 가능하다. (플로우 차트, 도표, 그래프 등)


한 회의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내 생각엔) 똑같은 말을 하면서 예시 이미지를 가져왔을 때 갑자기 모두 동의하는 것이었다. '내 말이 그거였는데!'


아마 직장인이라면 이런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이해를 못한게 아니라 내가 더 노력했어야 한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나는 회의하다가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논의 내용을 시각화하여 그리면서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죠?'라고 물어보며 확인한다.


상대방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을 알지만 그렇게까지 하기가 귀찮거나, 시간이 없거나, lean하지 않다는 생각으로로 공유 자료를 대충 만들면 논의가 오히려 더 길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차라리 내가 몇 분 더 들여서 시각화하면 모두의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모두의 시간으로 보면 그게 더 이득이다.


우리 뇌의 시냅스는 3D로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1D(말과 글)로만 의사소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무 말로만 해결하려고 하거나 피피티에 글만 빼곡히 채우진 않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2D(시각화)는 많은 정보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의 머릿속에 더 확실하게 저장된다.



회의


호주의 한 대기업과 프로젝트할 때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각 부서 매니저를 14명 모아서 TF를 만들었다. 모두 다 똑똑한 사람이었고 TF 리더도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모두 만족할만한 결론을 내기 매우 어려웠다.


국내 대기업과 프로젝트할 때도 클라이언트 측에 꼭 필요한 사람만 참여시켜달라고 부탁했지만, 킥오프 미팅을 가보니 약 20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직감했다.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도 피자   법칙을 내놓았듯이 회의에 참가하는 인원수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망하는 회의는 이렇게 진행된다. 일단 회의에 들어가면 8명 이상이 앉아있다. 제일 높은 사람이 긴 테이블 끝에 앉아있다. 적막이 흐르고 모두 발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발표자가 운을 뗀다. 피피티는 복잡하고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을 바꿀 것 같은 멋진 단어들이 등장한다. 아무도 적지 않는다. 30분간 발표를 들었지만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테이블 끝에 앉은 분이 발표를 끊고 한 마디 하니 모두 아무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발표 후 아무도 질문이 없다. 높은 분이 왜 질문이 항상 없는지 의아해하며 한 사람을 지목하여 질문을 한다. 대답을 듣고 바로 다른 사람에게 지시를 내린다. 해산한다.


매니저는 많은 회의에 초대되거나 많은 회의를 주선한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일과시간이 점점 회의로 꽉 찬다. 매니저의 활동 무대는 점점 혼자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회의 시간이 된다. 매니저의 이미지는 회의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의할 때 이전보다 조금 더 신경 쓰면 좋다. 아래는 내가 대부분의 회의에서 지키려고 하는 목록이다.


회의 전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이상적인 결론(desired outcome)이나 대안(options)을 미리 생각한다. 제일 답답한 미팅이 담당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미팅을 잡아서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다. 본인의 의견 없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어보면 사람들도 처음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막막하다. 그리고 당사자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합하지도 못한다. 생각 없이 상대방 의견을 물어보는 건 공감대 형성이 아니라 우유부단한 것이다. 이런 미팅에 들어가면 ‘이 미팅은 답 없이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참여자 및 시간

참여자 수는 8명 이하로 한다. (최대 10명을 넘기지 않는다.) 의사 결정에 필요한 사람과 의사 결정에 영향을 받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초대한다. 필요할 경우 해당 분야에 가장 지식이 있는 사람을 초대한다. (친분을 미리 쌓아놓으면 좋다.) 두 시간 이상이 예상되면 미팅을 쪼갠다.


회의 시작

회의 목적(why)을 상기시킨다. 회의 목표(what)를 공유한다. 모두가 주제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간단히 설명한다. 안건 중에 명확하지 않은게 있는지 확인한다. 안건 중 중요한 것과 빨리 끝낼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


회의 중

녹화든 필기든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남긴다. 오랜 시간 대화가 확산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수렴시킨다. (예: 5명 이상의 의견이 제시되기 전에 의견을 종합하고 정리한다.) 만약 내가 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문제가 어려울 때

문제가 어렵거나 시간이 없다면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한다. (논의 주제가 A와 B가 있다는 가정 하에) 1) A와 B의 논의 스콥을 줄인다. (예: 해결책은 제외하고 A와 B의 문제만 파악한다.) 2) B는 제외하고 A 문제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룬다.


침묵으로 에너지 모으기

내 말을 정말 강조하고 싶다면 긴 시간 침묵한다.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을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거나, 긴 시간이 지나고 의견을 말한다. (단,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은 효과가 없다.)


10초 기다리기

중요한 질문이나 회의 종료 전 마지막 질문을 하고 나서는 10초 정도 기다린다. 어색한 침묵을 견뎌낸다. 사람들은 정보를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질문의 목적은 의견을 듣기 위한 것임을 항상 기억한다.


회의 종료 전

모아진 의견을 다시 한번 언급한다. 할 일 목록을 정한다. 각 할 일마다 담당자를 정한다. 마감일을 정한다.


회의 종료 직후

모든 단계 중 가장 중요한데, 짧게 '요약'된 회의록을 공유한다. 참가자와 관련자를 모두 태깅하여 어떤 결론이 났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달한다.



협업은 마음을 얻는 것


회사에 종종 말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일할 때면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가끔 답답할 때 말을 세게 할 때가 있다. 그건 내 기분을 푸는 것이지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만약 아무리 짜증 나고 화가 나도 잠시 머리를 식히고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보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의사 결정이지 내 자존심을 지키거나 상대방을 이기려는게 아니다.


미국의 사랑 연구소(Love Lab)에서는 부부의 대화 방식을 단 하루만 관찰하고도 향후 6년간 이혼할 커플을 83%나 맞췄다고 한다. 대화하는 방식은 서로의 관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말이 거친 사람과 일할 때는 그 사람의 표현에 신경 쓰는게 아니라 가능하면 내면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친분을 쌓고 나면 거친 표현도 친근함의 표현이거나, 안 좋은 습관이거나, 단지 관계가 서툰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쓸데없이 감정 소모하지 않고 협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 감정도 솔직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력감을 느낀다.', '무시당한 느낌이다.', '상처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움이 필요하다.' 등 내 현재 상태를 공유하면 상대방이 알아들을 것이다. 이건 내 약한 모습을 보이는게 아니라, 상대방과 더 잘 협업하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다.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도 회사와 매니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약함을 내비쳤을 때 불이익을 당하는 환경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포장하려고 할 것이고, 협업이 위축될 것이다. 매니저는 모두가 심리적 안정감 위에서 협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요약


듣는 태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말하는 태도

맞는 말이 아니라 감정을 배려한 말을 해야 한다.

이성과 논리로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설득력

실제 고객의 목소리는 강력한 설득 포인트이다.

의사 결정은 '데이터 > 논리 > 직위' 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유

적절한 비유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주는 것과 같다.

적절한 비유는 논의의 무게 중심을 옮길 수 있다.


전달력

핵심 한 문장, 혹은 한 가지 개념은 상대방의 뇌리에 꽂힌다.

때로는 사실보다 의미를 담은 스토리텔링이 더 강력할 수 있다.


시각화

도표, 차트 등 시각화는 복잡한 정보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시각화하면 어려운 정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회의

회의 참가자 수는 8명 이하여야 한다.

매니저의 주 활동 무대는 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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