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데이빗beta Oct 20. 2021

일의 의미를 찾아서


고객의 목소리


한 번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주요 고객사에서 일하는 고객에게 링크드인(LinkedIn)으로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것을 시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왜 CS(Customer Support) 팀이 아닌 나에게 직접 연락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전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보통 CS팀이나 더 적합한 사람에게 넘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요 고객사에서 우리 제품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내서 직접 도와줬다. 알고 보니 우리가 최근에 새로 출시한 기능이 딱 그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제품팀에게 전했다. "우리가 이번에 새로 출시한 기능이 00회사 00팀의 문제를 푸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상기하는 차원에서) 대단한 회사가 우리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과, 무엇보다 우리가 만든 기능이 실제로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정보를 듣고 힘을 얻었다.


사람들은 일의 의미를 여러 군데서 찾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은 내가 실제로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개발자는 검은 화면을 보며 코드만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세상 문제를 풀고 있다는데서 힘이 생긴다. 그런데 고객과 멀리 떨어져 있는 기술 직군일수록 이런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누군가는 숫자로 변환된 고객의 행동이 아니라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든 직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위의 예시에서는 내가 직접 제품팀에게 고객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CS팀, 교육팀, 세일즈팀, 리서치팀같이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도 고객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우리 함께


회사가 커질수록 개인의 목소리는 희석되기 마련이다. 특히 스타트업 초기 멤버의 경우,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중심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엔 자신의 목소리가 자주 받아들여졌었는데, 이제는 어디에 요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구글, 페이스북, 배달의민족 같은 많은 기업에서 주기적으로 CEO와의 대담 시간을 갖는다. 누구나 중간 관리자를 모두 건너뛰어 대표의 생각을 직접 듣고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의미가 있다. 회사가 커질수록 이런 식의 직접 의사소통은 중요하다. 직원이 건의 사항을 제안하는데 5명의 매니저를 거쳐야 한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말 것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자신이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개인이나 팀의 목소리가 회사의 탑 매니지먼트까지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일의 의미를 더 느낀다.


우리 팀의 경우 고객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품의 전략을 수립하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물론 팀 내에서 한 것이라 한계가 있을 것은 알았지만, 적은 인원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제품 전략의 기초를 다지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인원이 투입되면 배가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워크샵의 결과를 회사에 전달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전략이 만들어지고 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팀 동료들과 '함께' 회사의 미래를 그려봤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고 싶어 한다. 결과물의 중요도 여부를 떠나서 이런 워크샵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자신이 말한 내용이 다 반영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최종 전략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매니저는 팀 동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회사에서 부품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가진 자율성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특히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이런 노력은 더 중요한 것 같다.



감사와 칭찬


팀 동료가 좋은 결과물을 냈다면 칭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떻게 칭찬해야 할까? 여러 명 앞에서 한 사람을 망신 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듯이 여러 명 앞에서 한 명을 칭찬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닐 수 있다. 항상 팀을 생각해야 한다. 당사자는 당장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보단 나도 열심히 했는데 왜 인정받지 못하지 라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도 다른 사람의 이런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 부담스럽다.


이 문제를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아 엔지니어링 매니저에게 어떻게 칭찬하냐고 물었다. "개인에 대한 공개적인 칭찬은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그 매니저는 서로가 서로에게 공개적인 칭찬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그러려면 칭찬이 너무 진지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와 별개로 진지하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 1:1 미팅에서 따로 한다고 했다.


종합하면 칭찬은 '공개적으로는 진지하지 않게, 개인적으로는 진지하게.'였다. 나에게는 너무 명쾌한 답변이었다.


다만 한 가지 고민되었던 것이 내가 재밌는 사람이 아니라서 장난스럽게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공개적으로 칭찬하면 평가와 섞일 우려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 팀 동료에게 서로 칭찬하는 팀 분위기를 조성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한 부분이지만 진지한 감사는 1:1 미팅에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팀 동료에게 감사하는 이유는 그 동료가 지친 가운데 힘을 얻고,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소속감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칭찬하는게 아니라 큰 프로젝트가 끝났거나, 신규 기능이나 버전을 배포했을 때 같이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게 좋다. 때로는 너무 지친 사람이 있다면 말로만 고생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밥을 사거나 휴가를 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


팀 동료에게 일을 맡길 때 그 사람과 딱 맞는 일이 아니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능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상황이 그렇게 되진 않는다. 나는 스스로 정신 승리하며 팀 동료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기는걸 꺼렸고, 잡일은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나는 계약직으로 들어와서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다 했다.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는 세일즈까지 했다. 사실 커리어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일을 하면서 뭔가 배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원한다는 것 외에 해야 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세일즈를 하다 보니 큰 잠재 고객사 이곳저곳을 돌며 우리가 만든 제품을 보여주고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의외로 고객들의 질문은 상당히 예리하고 깊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대답을 잘할 수 있었다. 세일즈 담당자도 내가 없었으면 고객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돌며 세일즈 담당자의 주도 하에 정말 큰 계약들을 성사시켰다. 덕분에 B2B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B2B에서 세일즈가 왜 중요한지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맥도널드의 CEO였던 돈 톰슨은 방위산업체에서 기술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맥도널드로 직장을 옮겨 공학자로서 감자튀김을 완벽하게 튀기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후 인정받지 못하자 퇴사하려다가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품질관리팀에서 일하면서 맥도널드의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을 배웠다. 그 계기로 전략 기획 책임자가 되었고, 후에 CEO가 되었다. 그는 말단 직원에서 시작했고 많은 업무를 두루 경험했기에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훌륭한 CEO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우연찮게 새로 맡은 업무들이야말로 CEO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유익한 밑거름이었다."


기회를 항상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면 좋겠다. 어떨 때는 너무 머리 굴릴 것 없이 '그냥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 비록 어렵고 힘들어도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하면 기회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한다. 분야를 불문하고 이런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빛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본인에게 떳떳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태도가 좋은 결과물을 내는 시작점이다.


If you're given a small task that nobody else wants to do, put everything you can into it. Even the small stuff can be a big opportunity if you make it one.
아무도 원치 않는 작은 일을 맡았을 때, 거기에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라. 아주 작은 것도 큰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끝낸다면 말이다.
Tobias van Schneider, Co-Founder of Semplice



이전 06화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팀워크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눈 떠보니 스타트업 매니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