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속도 '무죄한'

by 김 몽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변을 좀 돌아봐!"


주연은 회사에서 일잘하기로 소문난 '일잘여'이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완벽하게 업무를 소화하는 덕에 주변 동료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샀다.

힘든 타지 생활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목표이자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어느날, 그녀의 상사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헤이, 주연! 너가 일 잘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아, 하지만 이번 해 진급은 안되겠어,,..

리더는 주변을 살펴야해!"


이것이 말 장난인지, 진심어린 충고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느 곳보다 성과와 실적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말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뉴욕의 반지하 그녀의 스튜디오 방에 불을 켜고 들어선다.

씽크대에 물이 샌지 한달이 되었건만 수리공은 아직도 오질 않는다.

꿉꿉한 곰팡이내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어느 누구보다도 씩씩했던 그녀는 오늘밤 왠지 슬슬한 마음이 든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본다.


"그래~ 딸~~ 잘 있지? 물샌건 고쳤어?"


"아니,,아직 안왔어.."


"답답해 죽겠네! 이번 휴가땐 한국 꼭 들어와라"


"엄마! 나 돈 좀 보태줘! 이사가고 싶어.."


여태껏 한번도 손벌린적이 없는 딸의 부탁에 엄마는 적지 않게 당황한다.

대학때도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학비를 보탠 그녀이기에..


"무슨 일 있어?..딸!"


"아니,, 그냥 좀 지긋지긋해서.."

"나 너무 앞만 보구 달리나봐,, "


"그건 네 아버지나 너나 다 똑같구나!.."

"그래도 넌 최선을 다해서 해왔어,, 하지만 딸아!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견뎌보렴..."






종욱은 레이싱 카에서 깃발이 올려지는 순간을 초초하게 기다린다...


종욱은 레이싱카 선수팀에 발탁되어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레이싱팀의 존립이 무산되었고, 종욱은 다른 팀으로의 이적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몇년의 허송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아버지가 퇴직을 하시는 바람에 경제상황도 예전같지 않게 되었고,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몇해가 더 지나자 종욱의 레이싱카 선수 경력은 별 쓸데가 없어졌고, 아버지가 소개한 일자리에도 큰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어쩌다 슈퍼카를 가진 슈퍼리치들의 부름이 있을때에 달려가 개인 교습을 하거나 서킷 체험 강습에 대한 의뢰가 몇번 있을 뿐이였다.


종욱의 낡은 차는 한적한 시골거리에서 타이어 자욱을 남길 뿐이었다.


종욱은 더 나이들기 전에 무언가 해야만 했다.

그의 예리한 손끝 감각도 점점 무뎌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있던 돈과 친구에게 돈을 빌려 마지막 도전을 준비해본다.

레이싱용 카를 빌리고 레이싱용 타이어와 엔진을 점검하는 엔지니어와 함께 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깃발이 올라가자 결선에 올라간 10대의 경주카들이 굉음과 함께 영암의 F1 경기장 서킷을 돈다.

예리했던 종욱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우승 후보자를 바싹 뒤쫒는다.

종욱은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상대 선수들은 팀 지원이 있는 레이싱카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종욱의 촉망받던 과거 이력으로 인해 상위권에 들 것이라고 방송 중계자는 설명한다.

이전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면 말이다...


9번째 서킷을 돈 종욱은 우승 후보자를 코너에서 따돌리고 선두로 나선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카가 종욱의 차 옆으로 무리하게 돌진한다.

레이서들의 신경전은 극에 달해 간다.


그 순간 두 카의 측면이 부딪히면서 마찰된 면에 불꽃이 일어났다.

종욱은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상대도 가속페달을 밟아 다시 한번 종욱의 레이싱카의 측면을 공략한다.

종욱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핸들을 틀어 그 카를 떼어내려 했다.

뒤쳐졌던 한 레이싱카가 선두를 노리고 돌진하다가,

종욱과 신경전을 펼치던 우승 예상자의 차 후면과 부딪힌다.

두 카가 요란한 타이어마찰음과 함께 회전을 하며 뒤에 따라오던 카는 벽으로, 우승예상자의 카는 종욱의 카 쪽으로 돌진한다.

타이어는 더욱 거세게 서킷에 자욱을 남기며 부서진 범퍼 조각을 공중에 날리고, 메케한 연기와 함께 두 카 모두 멈추게 된다.


뒤에 오던 다른 카들이 이들을 피해 마지막 엔딩 서킷을 돌며 전혀 예상치 못한 하위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종욱의 복귀를 무리하게 의식한 우승예상자 때문이었다.


하얀 연기와 함께 복귀의 꿈도 허공에 사라진다...






과속 운행 과태료 납부서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어린이보호구역 30,

도심 일상도로 50,

지방도로 80,

고속도로 100


레이싱 무제한..


자신의 역량을 테스트하기 위해 무제한으로 속도를 올리고 질주하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속도를 줄여야겠지..


오늘은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려나보다..


나의 낡은 차를 조금 손봐서

고속도로를 다시 달려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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