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잠긴 바위처럼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깨달음의 봉우리들이 있다.
깃털처럼 파도 아래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각들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1911~2010)는 프랑스의 여성 예술가이다.
젊은 시절 한차례 전시회를 열기는 했지만 그리 주목받진 못했고, 결혼을 하고 세아이가 장성이 되고 남편이 심장마비로 죽은 뒤 60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Femme Maison"이라는 작품이 잡지의 표지로 게재되며, 집안일에 억압된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유럽의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여성 아티스트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의 작품은 직물을 수선하는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을 모티브로 하며 전개된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아픈 동안 집안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복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녀의 정신을 지배한다.
어린시절 트라우마의 상처는 평생을 걸쳐 마음에 남게된다.
주변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트라우마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 속 회환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폭력이나 무관심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부모의 간섭에 의해 자신감이 상실되고 그것이 온전히 생애 전반에 걸친 자기 불안의 요소로 남아있기도 하다.
성숙하지 않은 남녀 관계에서 온 상처는 성에 대한 극단적 노출이나 불안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회 생활에서 권위적 상사나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무력감이나 굴욕감이 또 한번 상처를 준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를 경험한다면 말할것도 없는 트라우마를 남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부르주아는 예술가가 의식의 단계를 건너뛰어
무의식의 깊은 지각에 직접 닿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평생 말과 글로써 자신을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불신했던 그녀는 조각을 만들거나
타자와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서만 무의식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몸을 봉해 이루어지는 이 과정에서 조각은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을 드러내고,
감당하기 어려운 충동을 해소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가 '승화'라 부른 선물이었는데, 이는 그녀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고통을 몰아내는 행위는 종종 그 고통을 다시 겪게 하는 대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전시 내용 중>
당신은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다.
그사이에 존재하는 가치는 신뢰와 사랑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개념도 아니다.
내가 재현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다.
갈망하고, 내어주고,
파괴하려는 감정.
루이즈 부르주아는 평생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작가가 남긴 방대한 기록에는 1952년부터 1967년까지 정신분석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던 시기에 작성된 글도 포함되어 있다. 꿈을 적은 메모, 직업 과정 노트, 날장에 써 내려간 단상들이 그것이다.
이 글들은 그의 내면과 작품 세계의 연결 고리를 보여주지만, 작품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역시 글을 단순히 시각화 한 것은 아니다.
이 글들은 오히려 작품과 나란히 존재하는 또 하나의 예술적 실천으로서,
때로는 작품을 대신하기도 했으며 예술 뿐 아니라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에도 기여했다.
작가는 개인의 상처를 작품으로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상처가 서서히 치료되자 기쁨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수선을 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실뭉치를 풀어내던 순간이 그녀에게는 기억을 되살리는 예술적 물성으로 회기된다.
심장을 뽑아내는 실타래, 실을 뽑아내는 거미를 상상하게 했다.
"Maman(엄마)"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금속 거미 조각 아래서 아이러니하게 어머니의 품을 상상한다.
여성과 남성, 억압과 자유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승화시킨 그녀의 작품이 마음에 남는다.
페미니즘이고 뭐고를 다 떠나서,
인간이기에 갖는 불안과 번민,
그를 극복하고 승화시킨 할머니 작가의 투지가
나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