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을 본 어떤 동료가 이제 힐링물이 필요하다고 얼른 희망편을 써달라고 하셔서(ㅋㅋ) 용기 내어 다시 브런치를 열었다. 뭐 그리 대단한 건 없지만 이전 글 마지막에서 썼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희망을 느끼게 한 것들을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이번 글은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썼고, 가볍게 봐주셔도 된다. :)
1. 팀워크
2. 성숙한 사회관계
3. 나는 특별한 걸 만들고 있다!
4. 일을 진행시켜 볼 기회들
5. 다음에 어딜 간들 뭘 못하랴
마치며
멤버도 적고 디자이너는 여전히 나 하나일 때, 기댈 곳은 옆에 있는 동료들밖에 없었다. 천천히 디자이너를 어렵게 채용했는데, 지금 나를 제외한 3명의 프로덕트 디자인 셀 동료들이 있어 셀 동료들도 많이 의지하고 있다.
우리 제품은 건설 데이터를 한 곳에서 모두 다루려다 보니 기능별 종속성이 매우 강한 편이다. 그래서 뭐 하나 건드리는 게 쉽지가 않다. 어쩌다 요청받은 기능을 추가하려고 하거나 바꾸려고 하면 이런저런 데이터와 너무 많이 엮여있다 보니 개발자 분들과 얘기하고 QA 하다 보면 사이드 이펙트나 엣지케이스가 99999개씩은 나오는 것 같다... 하나하나 대응하다 보면 나중엔 본래 기획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때도 많은...
제품뿐만 아니라 영업이든 홍보든 너무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할 때가 많은데, 어쨌든 답도 없고 막막한 이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많다. 그 안에서 함께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의지도 다질 수 있고. 물론 서로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를 땐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다는 감각이 곧 신뢰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성과를 확인할 수 없고 어려운 게 많은 환경은 오히려 팀이 폭파될 수도 있으니 조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 참고...)
예전에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6개월 정도 일한 적이 있는데, 회사도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분은 날 엄청나게 유치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렇게 비루하고 유치 찬란한 사람이었나?' 항상 내 밑바닥을 보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하니 끔찍한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처음에 적응이 힘들긴 했지만, 솔직하게 질문하되 감사와 미안함을 말하는 태도를 지닌 분들이 함께 있었던 덕분에 나도 이만큼 오래 다닐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은 셀원 분들의 의견을 리더급 회의에서 대변하는 역할을 나 나름대로 수행하며 겪은 우여곡절도 많지만 이건 다음 기회에 풀어보자...
진짜 힘들긴 하다. 안 힘들다는 거 아님... B2B도 어렵고, 건설도 어렵고, 드론도 어렵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기능 간 종속성도 강해서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레퍼런스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레퍼런스 삼을만한 회사들은 '데모를 신청하라'며 이메일 주소와 정보를 먼저 내놓으라고 해서 직접 서비스를 써보지 못하고 유튜브를 뒤져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나는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기곤 한다. DX라는 표현을 들어보셨는가?
DX: Digital Transformation(cross) 또는 Digital eXperience의 약자.
우리는 건설 분야의 관리자들, 현장직 노동자들이 모두 디지털 전환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건설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도록 건설 분야의 디지털 경험을 새로 만드는 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품을 잘 만드는 데 있어 장애물이 엄청 많다. 그래도 이런 최종 목표를 보다 보면 다시 열심히 해봐야지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어려운 환경은 내게 번아웃을 주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모색하고 시도할 동력도 함께 주었다.
프로덕트 세계라는 커뮤니티에서 나를 소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분야가 생소하다 보니 내가 디자인한다는 게, 현장 관리 설루션이라는 게 대체 뭔지(^_ㅠ) 궁금해했다. 보통 이커머스, 핀테크, 패션 등 분야를 들으면 대–충 어떤 일을 하겠구나 감이 잡히는 것에 비해 건설은 그렇진 않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걸 텐데 다들 호기심 섞인 질문을 던져와서 의외였다. 아무도 관심 없을 줄...ㅎ
이전 글에서 잠시 언급하긴 했지만, 나는 신입으로 이 회사에 들어와 초반 적응이 좀 힘들었다. 스타트업도 처음이었고, 건설도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회사 초기 멤버들은 아이디어 발산형이 대부분이라 실제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나는 어디까지 동의를 얻고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엄청 헤맸다.
일단 열심히라도 해본다는 생각으로 해봤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성과가 눈에 보이는 곳은 아니지만, 동료들의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은 보였기에 다행이었다. 초기 스타트업이었던 만큼, 내가 만들어야 하는 프로세스도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진행시키려면 어떤 얘기를 먼저 해야 할지, 어떤 걸 시도해봐야 할지, 누구와 얘기해야 할지, 어디까지 해야 할지...'에 대한 경험치가 많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아티클도 뒤져보고, 다른 디자이너들이나 회사 외부인들에게 많이 물어보기도 하면서 정보도 많이 얻었다.
속된 말로 말하자면 그냥 처맞으면서 강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ㅎㅎ
새로운 방안을 생각하더라도 매번 마음 편히 제안하고, 실행해 볼 수 있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말을 꺼내는 순간 내 일이 되긴 하지만...ㅎㅎ 치열하게 생각하고, 제안하고, 실현시킬 수 있던 기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디자이너 채용도 마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건설도 이렇게 배우면서 했는데, 다음에 어떤 분야를 공부하게 되든 무엇을 못하곘냐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여기에서 그냥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운 것들이 있으니 다른 분야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걸 배우는 과정에 있어 무엇부터 알아봐야 할지, 어떤 걸 먼저 파악하면 좋을지 방식은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뭐 결국 위에 말한 거랑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서 힘들지 않기는 너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 :)... 공감해 줄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제품 배경이나 유저에 대한 특성을 설명할 때 척척 알아들어 줄 외부인도 별로 없다. 물론 그렇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도 쏟아지는 데이터를 비롯해 여러 가지 힘든 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이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끼리 솔직하게 사실은 힘들다고, 어렵다고 말하면서 그나마 즐겁고 슬기롭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진짜 힘든 거 알긴 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그럼 너무 혼자 힘들잖어요...^_ㅠ
각 산업별 특성이 너무 달라 버티컬 B2B에서 일하시는 분들끼리 모인다고 해도 100% 공감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하면서 디자인이든 채용시장이든 이런 담론도 수면 위로 얼른 떠올라야 하지 않을까? 특히 나처럼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때 이런 상황에 처한 분들은 이런저런 말들에 휩쓸리기 쉬운데, 참고할만한 선례를 담은 아티클이나 콘텐츠도 금방 찾을 수 있을 만큼 많지는 않으니.
요약하면 건설 B2B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들이 연차 상관없이 정말 많은 걸로 아는데, 그분들의 경험담과 고민과 극복 사례도 지금보다 훨씬 자주 보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전 글을 업로드하고 며칠 만에 정말 많은 분들이 피드백을 주셔서 놀라웠다. 솔직한 글을 써주어 고맙다, 공감된다 등등의 응원을 받아 감개무량했다. 게다가 Surfit 큐레이팅에 내 글이 올라가 신기했다. 2년 전쯤 썼던 Linear 프로덕트에 대한 글 이후로는 두 번째다. 너무 나 힘들다며 횡설수설 구구절절 신세한탄을 했나 싶었는데, 의외로 여러 사람이 공감한다며 응원을 보내주셔서 또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이 났다!
이전 글에서 내 경력을 증명할 수단이 많지 않다고 언급했었는데,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겨서라도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 조금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과거의 결정을 칭찬한다... 이전에 브런치에 썼던 글이나 이전 글을 보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께 커피챗을 하고 싶다는 제안도 몇 번 받았다. 어쨌든 외부인과 만나서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얘기하는 시간이 그냥 즐겁기도 하다(근데 저 외향형은 아닙니다...).
혹시 과거의 나처럼 디자인과 경력과 성장과 이것저것 고민하다 머리 터질 것 같은 분들께 조심스레 브런치나 미디엄 등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행해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물론 나도 알면서 많이 못하지만...
일단 나는 이 글을 이렇게 마쳐놓고, 또 다른 이야기가 정리되면 짧은 글로라도 풀어보러 올 예정이다.
오늘 하루도, 이번 주도, 다음 주도 모두들 화이팅!
사진: Unsplash의 Simon Abr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