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못지않게 음식 사진 역시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촉매이다.
저 와인을 마셨던 건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오후 7시 47분이고, 장소는 제주도 여행의 숙소였던 포도호텔 1층 레스토랑이었다. 2박 3일 포도호텔 숙박 기간 내내 식사는 모두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는데, 신혼부부였던 우리 커플을 친절하게 응대해준 웨이터분이 따라주는 미국 와인의 레전드 로버트 몬다비씨의 이름을 내건 WOODBRIDGE 화이트 와인과 함께 그날의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화이트 와인을 추천해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 것 같다. 돌돔과 참돔회가 나왔고, 해삼과 내장을 사용한 소스도 함께 나왔데 정말 별미였다. 회 옆에 놓인 레몬은 간장에 뿌려서 먹었다. 제주도의 돔은 정말 맛있었다.
한우 안심 버섯 먹돌 구이가 등장했다. 쩔쩔 끓는 돌 위에 살결이 부드러운 한우를 취향대로 익혀먹는 것이었다. 한우는 1++ 등급이었고, 사진의 마늘칩 뒤로 버섯이 있는데, 뭐 주인공은 한우니까...
훌륭한 고기에는 그 어떤 소스도 필요 없지만, 소금은 예외일 수 있다. 게다가 모링가 소금, 알고 보니 3년 묵은 신안 천일염이었다.
다음으로 나온 참치&장어 김밥. 옆에는 초생강. 배부른 상태에서도 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각각의 코스 요리의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또 이렇게나 잘 어울릴 수 있다니... 분에 넘치는 호강을 했던 저녁 식사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조식으로 정갈한 아침 한식 한상을 받았고, 와이프는 한우 등심 1++ 에그베네딕트. 이탈리아 유학 생활을 한 아내는 이런 양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나도 먹어본 에그베네틱트 중에 가장 맛있었다. 사실 몇 번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단연 1등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WEDGWOOD 잔과 함께 등장. 차의 나라 잉글랜드 감성...
한우 등심 카르파치오로 시작하는 석식. 데코 자체는 촌스러웠지만,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딱새우도 함께 서비스됐는데 왕새우와 꽃게살 그 사이의 질감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전복과 왕새우, 가리비 관자구이가 등장했는데, 메뉴명은 해물 BBQ 였다. 관자가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복 삼합이 눈앞에 나타났다. 제주도 답게 수육은 흑돼지였고, 새우와 전복을 함께 먹는 삼합이었다. 이 삼대장을 깻잎 장아찌에 감싸 먹었는데,,, 좋았다. 개인적으로 육류와 해산물을 동시에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생각날 정도는 아니지만, 각각의 재료는 훌륭하게 요리되어 나왔고 맛있었다.
역시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제주 옥돔구이는 제주 옥돔을 저온으로 구워 살이 굉장히 부드러웠고 담백했다. 생선 비린내가 전혀 없었고, 배부른 상태였음에도 보시다시피... 박살냈다.
우리 부부는 레스토랑이나 관광지에서 불편함과 부족한 용기 때문에 열심히 사진을 찍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포도호텔에서 만큼은 일단 카메라를 들이댔다. 개인적인 영역 내에서. 음식을 피사체로 둔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작년에 제주도를 갔을 때, 이 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포도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하려 했으나, 좀 더 서둘렀어야 했다. 아쉬운 대로 대기를 올려놨지만 결국 실패. 또 방문해 2020년 9월의 기억을 색인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