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무슨 배짱으로 아직도 내 주변을 서성이는가
버들 마편초 사이로 제집처럼 들락거린 하얀 나비의 몸짓에 나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이어 창문을 열자 따듯한 햇볕이 가난한 나의 몸을 감쌌다.
오래도록 잔상에 남은 포근함이 좋아 한여름에도 종종 담아오곤 했다.
알 수 없는 짜증으로 불쾌지수가 상승할 때마다 햇볕이 그리워지는 이유를 그땐 몰랐다.
따스한 햇볕이 나의 몸을 감싸기 전에는 그늘만 찾아다녔기에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몸 안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함이 문제였다.
갑상선의 혹을 제거했는데도, 어느 순간 가면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그 후 외면하듯 흘러간 시간은 몸 안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혹을 야금야금 심어놓았다.
복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 혹 많은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을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기왕에 한집에 사는 거 더는 불편하지 않게 잘 타이르며 살아야 하지 싶었다.
그런대로 살만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은 감당할 힘까지도 동반하는 듯했으니.
혹, 어쩌다 한계를 뛰어넘은 심각한 문제와 맞닥뜨릴 때면 물만 먹어도 잘 자란 콩나물처럼 눈 깜짝할 새 커져 있었다.
혹, 그럴 리 없겠지만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 가난한 나의 입장을 배려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다.
예고도 없이 발견된 세 번째 혹, 떠난 줄 알았는데 무슨 배짱으로 아직도 내 주변을 서성이는가.
때때로 설마 했던 묵직한 통증이 손끝에 전해오자 날카로운 신경이 바짝 일어섰다.
다시 도진 고질병은 무한 긍정의 사고를 밀어낸 후 뻔뻔스럽게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
나는 며칠째 불면증에 시달렸다.
혹, 어쩌다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나의 삶의 중심에서 강자가 되어 버리진 않을까.
모르겠다.
내일의 걱정을 살 시간이 있다면, 밤이 오기 전 정원의 꽃길을 맨발로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