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왜 거기 있니
몇 년 전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스피치 교실 강사 시절에 아이들을 만나면서 마음에 끈질기게 따라오던 무엇이 있었다. 그때 나와 함께 수업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도 곧장 집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은 감추고 싶은 비밀 이야기라도 있던 것인지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엔 언뜻언뜻 벗어날 수 없는 버거운 현실을 탓하는 듯 짜증이 담겨있었다. 볼수록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가진 것도 특별한 재능도 나에겐 없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의 표정 없는 시선이 종일 따라다닐 때마다 마음을 만져주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혔다. 방과 후 학교 수업이 점점 안정되어 간 삼 년째 되던 해 결국, 마음의 결단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벌었던 수입은 외국으로 배낭여행 가기 위해 차곡차곡 저금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나 자신과의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오롯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단 이유만으로 덜커덩 대학원 등록금으로 충당해버렸으니 뜻밖에 사고를 친 셈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한 상담을 공부하면서부터 소년원에 있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내게 있는 작은 것으로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단 걸 가만가만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그 당시 처음 만난 아이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아픔이 있어 불면증에 필요한 약을 내내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퇴원하기 얼마 전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다는 아이의 말에 나의 자부심은 내려올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와 일 년이 넘도록 만나왔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면서부터 새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말도 아낌없이 하던 차였다. 말하는 대로 그리고 보이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A급 상담을 하고 있다는 착각 같은 생각에 몰입되어갔다.
비록 무료 상담이긴 해도 소년원에서 이 정도의 결과라면 내가 나에게 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언제부턴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지라도 나는 마치 유능한 A급 상담사라도 되는 양 점점 자기애에 빠져들었다. 그런 시간, 그런 날들을 눈에 띄지 않게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소년원에 새로운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날, 하늘은 잔뜩 흐렸다. 아니나 다를까 면회실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창밖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마구잡이로 흩날리던 눈은 하얀 이불을 만들어 차가운 거리를 덮어주었다. 창밖으로 나간 시선이 풍경과 어우러져 다음 시간을 막 예약하려는데 닫힌 문이 열렸다. 내가 만날 아이가 궁금했다. 그런데 담당자로부터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귀를 쫑긋 세우고 못 들은 척 다시 집중해보았다. 분명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설마 그 아이? 아닐 거야. 완벽에 가까울 만큼 변화되었다고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퇴원했는데. 우연히 만난 동명이인이겠지.'
어쨌거나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나저나 만약 사실이라면 어쩐다지?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화를 낼 수도 없고, 다그쳐 물을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암암리에 은근슬쩍 자랑해오던 나의 A급 상담 실력이 들통나는 거 같아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얄팍한 핑곗거리를 찾아 도망가고 싶단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들락날락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사이 급격하게 떨어진 자존감은 결국, 보이지 않는 생채기를 냈다.
"선생님, 죄송해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요."
머리를 긁적이며 진짜 죄인인 거 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면서도 목소리는 반가운 듯했다.
"그랬구나. 그러잖아도 그동안 궁금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줄 수 있겠니?"
그 아이와 소년원에서 다시 만나지 말자는 약속은 이미 물거품 되었다. 나의 상담은 완벽한 실패였다. 아이도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좌절된 눈빛은 서로에게 죄인이 된 듯 바닥에 깔린 침묵 안에 머물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맥이 빠졌다. 충만하던 의욕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어떻게든 침묵을 털고 일어나 안아줘야 하는데 괜한 자존심이 나의 좁은 마음 안에서 속닥거렸다. 사실 아이가 퇴원 후에 지켜야 할 약속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마음은 이기적이었다. 그게 나였다. 조금 더 노력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기대를 앗아간 실망은 과연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기세 꺾인 자존심이 우울했다.
한동안 다른 아이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상담으로 마주할 시간이 두려웠다. 왠지 무능한 B급 상담사로 낙인찍을 거 같은 두려움 때문인지 몰랐다. 그 후 내면뿐만이 아닌 표면적으로 보인 어떤 결과까지도 믿지 못하는 불안은 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그해 겨울이었다.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오롯이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던 그때의 야심 찬 생각이 스멀스멀 다시 떠올랐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 멈추고 싶진 않았다. 아지랑이 피어난 봄은 매서운 칼바람만큼이나 의기소침한 나의 시간들에게 마중하듯 반갑게 다가와 주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수년 동안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돈은 벌지 못했다. 덕분(?)에 아직 배낭여행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모든 시간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