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친구야
우체부 아저씨가 마당에서 막 나갔다. 마루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할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나에게 온 편지라고 전해주셨다. 나는 할머니께 건네받은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보았다. <민우야, 안녕. 나 우진이야. 다름이 아니라 너를 뉴질랜드로 초청하려고 해. 00월 00일. 공항에서 기다릴게. 보고 싶으니까 꼭 와. 참 돌아갈 비행기표는 걱정하지 마>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우진이가 보내온 초청장이었다. 뉴질랜드라니, 나는 설레기도 하면서 고민되었다.
우진이랑 나는 비슷한 게 많았다. 축구도 좋아하고 자전거도 잘 타고 공부도 잘했다. 참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다. 우진이는 친구를 차별하지 않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할머니랑 둘이 사는데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우진이가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쉽게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진이가 전학을 간다고 했다. 알고 봤더니 단순한 전학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떠난 이민이었다. 단짝이 없으니까, 나의 학교생활이 별로 재미없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민우야, 누구한테서 온 편지였니?”
“몰라도 돼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할머니는 더는 묻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생기자 어렸을 때부터 나를 할머니한테 버리고 간 부모님이 살짝 미웠다. 그나저나 할머니가 도우미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데 나는 차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나라 비행기표를 사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솔직히 너무나 가고 싶었는데 속상한 마음이 잘 달래 지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마을 길을 달렸다. 지방 소도시답게 한적한 들판이 펼쳐지는 데도 답답한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나는 몇 바퀴를 더 돌다가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배웠던 영어와 관련된 책을 모두 꺼내 펼쳐 보았다. 거의 눈으로만 공부했던 영어책을 더듬더듬 소리 내어 읽었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영어는 그런대로 할 만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붙어 갈수록 현실은 깜깜했고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우리 형편에 어떻게 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겠어. 나는 거칠게 책을 덮었다. 잠이나 자야겠다고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쉬는 시간인데도 나는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다.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다가와서 물었다.
“비가 오는 궂은날에도 축구공을 가지고 놀던 민우야,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도 밖에 안 나가고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은 귀찮은 듯한 말투로 대답하며 일어난 척했다. 그러다 다시 엎어졌다. 선생님이 또 물었다.
“근데 요즘 수업 시간에 집중도 잘 안 하는 거 같던데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해주렴.”
“됐어요. 그냥 말하기 싫어요.”
선생님의 목소리도 관심도 다 싫었다. 순간적으로 어른들은 자식보다 자신의 감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똑같을 거 같아 선생님께 무뚝뚝하게 말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생님께 좀 죄송했다.
시무룩한 날이 이어졌다. 전래 놀이 시간에 깡통 차기를 했다. 평소와 다르게 재미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인 깡통을 나도 모르게 힘껏 찼다. 약간 통쾌한 거 같아 스트레스가 풀릴 때까지 차고 또 찼다. 마당까지 들어온 깡통을 대문 밖으로 날려 버리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오른발로 뻥 찼는데 대문 모서리에 맞았다. 민우 왔니? 그때 할머니가 막 들어오셨다. 맙소사,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깜짝 놀란 나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괜히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잘못이 없었다. 그날 늦은 오후 할머니가 선생님과 통화를 하길래 짜증이 났다. 나는 통화가 끝나기 전에 얼른 집 밖으로 나갔다. 마을 입구에 있는 팔각정에 앉아 호주머니에 넣어 둔 초청장을 살며시 꺼내 보았다. 꼬깃꼬깃해진 초청장을 보니 속상했다. 그러곤 혼잣말했다. ‘우진아, 미안해. 어떻게든 가고 싶었는데 도저히 안 될 거 같아. 할머니께 말을 꺼내지 못했거든. 진짜 미안해. 그리고 나 같은 애한테 연락해 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너 잊지 않을게. 다음 기회에 꼭 만나자.’ 나는 초청장을 버리진 못하고 다시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우 여기 혼자 있었구나.”
“네 선생님 근데 저희 동네에 왜 오셨어요?”
나는 얼떨떨한 말투로 인사를 했다. 이 시간에 선생님이 방문하실 이유가 없을 텐데 무척이나 긴장되고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먼 산을 보는 척하며 선생님의 눈을 피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다가와서 나에게 물었다.
“민우야 오늘은 너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구나. 너의 표정에 어떤 고민이 들어있는지 정말로 궁금했거든.”
“네? 근데 저는 진짜 할 이야기 없어요. 그냥 우리 집에도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에요.”
“그랬구나. 갑자기 큰돈을 써야 할 일이 생긴 거니?”
나는 머뭇거리다 할 수 없이 선생님께 말했다.
“네. 실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단짝 친구가 저를 초청했는데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대답 못 했거든요. 할머니가 힘들게 번 돈으로 살아가는데 차마 할머니께 말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포기를 해야 하는데 포기를 하려니까 그냥 화가 나고 짜증이 났어요.”
“그랬구나. 우리 민우가 진짜 고민이었겠구나. 말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네가 정말로 가고 싶다면 방법을 찾아보자.”
“네 선생님. 그런데요 어차피 방법은 없을 거예요. 우리 집은 생각보다 더 가난하거든요.”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선생님께 막 얘기를 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냥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러웠다.
꽁꽁 숨겨두었던 가난한 우리 집 형편을 들킨 거 같아 학교에 가기 싫었다. 지각할까, 아니 차라리 결석해 버릴까? 그래도 할머니께 걱정은 끼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두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시작종이 울리기 직전 교실에 도착했다. 문득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이 나에게는 거짓말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반강제적으로 포기를 했다. 이제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슬펐다. 나의 슬픔을 알아챈 선생님이 조용히 불렀다.
“민우야, 이따 선생님 만나고 가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근데 왜요?”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여기 이거 받아.”
선생님이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주셨다.
“이게 뭐예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때부터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민우야 잘 들어. 이건 뉴질랜드 가는 비행기표야. 네가 그토록 만나고 싶은 단짝 친구랑 유익한 시간 보내고 오렴. 실은 선생님도 단짝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도 전학을 갔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잘되지 않았어. 알고 봤더니 아팠었대. 친구를 찾아갔는데 엄청나게 반가워하더라. 진작에 좀 자주 만나서 놀아줄걸. 후회되었어. 누구든지 보고 싶을 때 그리고 상대방이 원할 때 시간을 낼 줄 알아야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 같아. 민우가 진지하게 고민한 태도를 보면서 도와주고 싶었단다. 선생님의 단짝 친구는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거든. 아예 하늘나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거 같았다.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포기했었거든요. 앞으로 제가 공부 더 열심히 해서 다음에 돈 벌면 첫 번째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꼭 갚을게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 민우 표정이 살아났구나. 그래 넌 그렇게 웃는 얼굴이 참 매력적이란다.”
선생님은 따듯한 목소리로 나를 칭찬했다. 할머니께 이제야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자 지금 당장 하늘에 닿을 것처럼 마음이 붕 떴다.
어, 할머니가 벌써 오셨나. 나는 할머니 신발만 보고 안방을 향해 인사를 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사랑하는 손주 민우가 왔다고요. 귀를 쫑긋 세우며 반기는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는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덜컹 겁이 나서 방문을 확 열었다. 할머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은 듯 말이 없었다. 할머니, 빨리 일어나요 제발. 이불을 걷고 할머니를 흔들었다. 할머니 정신 차려봐요. 나는 다급하게 119에 신고를 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병이 뭔지를 몰랐다. 다행히 할머니는 깨어나셨다. 앞으로 건강 관리를 잘하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다. 최근에 내가 할머니께 툴툴거려서 할머니가 더 아프신 거 같아 죄송했다. 그냥 뉴질랜드 가지 말아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그래도 곧 출국인데 갈 것인지 비행기표를 선생님께 다시 돌려 드릴지 빨리 결정을 해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용기를 내 할머니께 말했다.
"할머니 저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한테 다녀오려고요. 비행기표는 선생님이 끊어주셨어요."
"근데 선생님께 괜한 신세를 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걱정 마세요, 할머니. 제가 다음에 꼭 갚을 거예요. 참 할머니 제가 돌아올 때까지 아프면 안 돼요."
"알았다. 할머니 걱정 말고 친구랑 많은 이야기 나누고 오렴. 민우야 잠깐만 방으로 들어와 봐."
할머니는 나를 방으로 데려가서 용돈을 주셨다. 나는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씩씩한 척하며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보였다. 저렇게 작은 비행기를 내가 탈 수 있을까. 설마 떨어지진 않겠지. 생각만 해도 긴장되고 가슴이 떨렸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우진이가 나를 불렀다.
"어서 와 민우야, 여기야 여기."
우진이는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