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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끝,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by 포워드

#알랭드보통 #낭만적연애와그후의일상


#1

그는, 프로페셔널이다. 그는 직업적인 일상 속에서 그가 수행해야 한다고 의무적으로 되뇌이고 훈련받아온 대부분의 일들을 영혼없이 기계적으로, 하지만 매우 숙련되게, 하루종일, 며칠, 몇 주, 아니 몇 년이라도, 같은 표정과 목소리 톤으로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 치의 오차나 티끌만큼의 마음의 동요 없이도 대부분의 일들이 성공적인 결말을 맞이할 때까지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의 사회생활들로 이른바 '사회화'가 충분히 이루어진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좋은 분위기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알고 있다. 가끔 일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날이 선 감정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서 일을 마무리해내는 기술도 알고 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목적에 맞는 카드를 꺼내든다. 그는 마치 잘 훈련된 군인이나, 혹은 임기응변에 능한 뮤지컬 배우같다.



#2

하지만, 그는 사실 연약한 인간이다. 그는 최근 들어 매너리즘과 불평에 자주 사로잡히곤 한다. 사회 속에서 완벽함을 보여주기 위해 써 왔던 가면들에 사실 넌더리를 내고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로 기대하는 바가 적어졌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아무도 그의 내면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는 업무를 매우 잘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불안하다. 사실 그 역할은 그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은 부질 없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사니까.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하지만, 일년에 며칠 정도 격무를 마친 저녁에는, 텅 빈 영혼과 번아웃된 육체 때문인지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 공허함은 감각을 마비시킨다. 예민함은 신경증으로 드러난다. 이럴 때면 시간도 상대성이론이 적용되는지, 1분이 1시간 같고, 1주일이 1년 같기도 하다. 상대의 지나가는 별 것 아닌 말이 가슴을 찌르는 의미심장한 말로 들리고, 상대의 지나가는 가벼운 눈빛 하나가 내 마음을 온종일 흔들어 놓기도 한다.



#3

사실 일상의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다. 좋은 일들도 생기고, 뜻하지 않은 어려운 일도 생긴다. 예상치 못한 기회도 찾아오고, 가끔은 함정이 놓여있는 경우도 있다. 마음이 병든 그는 이제 그런 걸 볼 수가 없다. 어떤 누구보다 모든 일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과관계를 잘 꿰뚫어보며, 현상의 이면에 있는 추상적인 세계도 잘 연결시켜 보던 그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실명해 버린 느낌이다.


광학적 자극이 망막에서 변환된 전기신호는 여느 때와 같이 시신경을 타고 뇌의 후두엽까지 전달되지만, 더 이상 그에게 지적인 혹은 영적인 파장을 남기지는 못한다. 해석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안개가 끼어버린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그의 행동은 소극적이 되고, 세상에 고독한 순간들은 한꺼번에 그에게 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 같다. 그는 표정을 잃고, 가끔은 중독에도 빠져든다. 작은 암초는 배를 좌초시킬 수 있다. 선원들은 사이렌의 유혹만으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느다란 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4

다윈은 그랬다. 그는 "생존하는 종이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능이 뛰어난 종도 아니다. 그것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다"라고 말했다. 니체는 그랬다. 그는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나를 강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늘 그런 초사이언에 가까운 순결한 인간이 되기를 꿈꿨다. 영웅서사를 좋아했다. 나폴레옹부터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에 이르기까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리더들은 그의 롤 모델이었다. 모든 일은 처음 마음먹은 의도대로 흘러가야 했다. 지뢰가 깔려있는 전쟁터에서라도 폭발은 그의 비껴난 곳에서만 영화의 배경화면처럼만 일어나야 했다.


그의 망상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자. 시작할 때 품었던 의도를 조금도 변경하지 않고 끝까지 풀어나갈 수 있는 일들은 인생에 몇 가지나 될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종들은 살아남은 종보다 백만배는 더 많을 것이다. 별 것 아닌 이유들로 죽음을 마주한 개체들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다윈이나 니체의 말은 운 좋게 살아남은 개체들이 별다른 의미 없이 던져 놓은 후일담에 불과한 것이다. 여태 그걸 믿고 살았던 것인가?



#5

그의 삶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그의 영혼에 임팩트를 주는 사람들도, 매우 적긴 하지만, 아주 가끔 있었다. '임팩터'들의 유형은 매번 달랐다. 낭만적인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절의 그는 구원자 환상에 자주 빠지곤 했다. 문제로 둘러싸인 '문제적 임팩터'을 만나면 특히 그 병은 도지곤 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타인의 문제나 고통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꼬여가는 일들이 생겼다. 어떤 관계들은 어색해졌고, 어떤 관계들은 파탄났다.


그 대상이 그가 낭만주의적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문제였다. 공감을 넘어 감정이입을 시도했고, 결국은 선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가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들이 사실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라는 것을 과도한 감정선에 이끌려 잊어버린 채 어줍잖은 해결 시도들을 해 보려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이면, 상대방은 자율성을 침범당했다 느끼고, 그에게 성벽을 치곤 했다.



#6

이즈음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행동은 얼핏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의도 역시 순수하게 이타적이지도 않다. 수없이 많은 심리학 분석 보고서가 가르키듯, 그는 이차적 보상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다. 어린 시절 충분히 만족되지 않았던 정서적 욕구들을 성인이 된 이후 타인을 구원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타인을 구원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이 관여한다. 낭만주의에서는 순결한 의도와 고귀한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나머지 삶의 인생서사는 첫 도입부에 비해서 중요도가 훨씬 떨어질 뿐이다. 결론은 단지,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지어져야 한다. 다른 결론은 비극이다. 다른 곁가지로 결론이 흘러가지 않도록 사람들은 고귀하고 성실하고 정결하게 살아가야만 한다.



#7

사실, 낭만주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낭만주의는 첫 단추를 꿰는 행위이며, 성냥이 처음으로 지직거리며 붙붙는 순간이며, 달리기의 첫발을 내닫는 순간이며, 새로운 생명이 처음으로 모태에서 잉태되는 순간이다. 다만, 그 뿐이다. 낭만주의는 콩깍지라는 고전적인 표현도 있으며, 도파민과 엔돌핀과 옥시토신의 호르몬 칵테일이 중추신경계에 일으키는 신경학적 부스터로 해석될 수도 있다.


낭만주의의 단점 중 하나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여다 보는 것은 각자의 전두엽에 끼워놓은 낭만주의 필터를 통해서 보는 가상의 세계일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극단적 낭만주의자들은 상호작용 없이 추상적인 개념만을 쌓아가면서 그걸 현실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사상누각이다. 그래서야, 폭풍우 치는 광야에서, 모든 것이 말라가는 사막에서 버텨낼 수는 없다. 현실이라는 단단한 바닥에 발을 붙이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가는 법도, 제대로 사랑하는 법도 없다.



#8

삶 속에서는 늘, 관계의 단절이 온다. 단절로 잘린 부분에서는 피가 눈물과 함께 흐른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아름다운 시간이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통상적인 슬픔을 넘어 지나친 애도기간을 가지거나, 혹은 자책하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낭만주의의 부산물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여러 경로의 학습과정을 통해 알고 있다. 단절로 잘린 상처는 새 살이 돋아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설혹, 현실세계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더라도 말이다.


현실주의자들은 한 차원에서의 관계는 종결되었지만, 다른 차원에서의 관계는 다시 시작되었다고 믿을 것이다. 그들이 사로잡혀 있을 수 밖에 없었던 투닥거리고 우아하지 못했던 현상학적 세계가 더 이상 그럴 필요없는 보다 고차원적인 영적인 세계로 이동했다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에겐 관계의 단절이라는 것도 은혜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한 세계의 파괴를 통해 다른 세계를 창조하거나,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의 이동을 이룰 수 있는 서사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9

그는 처음 떠올렸던 다윈과 니체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빈정대는 투로 이야기를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그도 유약한 인간의 한 개체일 뿐으로 그도 역시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 '죽지 않고 살아남을 개체'가 되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어쩌면 여기로 가는 길에 현실주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필터를 끼우지 않고 보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필터를 끼우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고 그런 세상에서 함께 하는 현실주의 여행자들과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나은 삶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0

책 중에서...


"우리는 의식에서 거의 지워져버린 위기들이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대본에 따라 행동할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져 폐물이 된 논리에 따르고,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밝히지 못할 의미를 좇는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고, 정확히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으며, 앞에 있는 사람이 마땅이 받아야 할 대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곁에 두기에 약간 고달픈 사람이 될 수도 있든 것이다." (감정전이, p.112-113 중 발췌)


"그가 이 일이 더 발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일면 그녀를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불행하게 할지 알 정도로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 자신과 사랑의 여정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친절은 신속히 그 길을 빠져나오는 것임을 그는 안다." (양립할 수 없는 욕망들, p.237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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