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는 이유
이 글은 2015년 9월 18일 제가 센트럴서울안과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입니다. 지금이 2025년이니 거의 10년 전에 쓴 글이네요. 그때도 세상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 역시 세상은 혼돈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역사 속의 모든 순간들은 카오스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겠지요.
10년이 지나고 당시 스무명 정도였던 센트럴서울안과는 이제 거의 팔십명에 이르는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곳으로 발전했습니다. 진료의 수준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병원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좋아지기만 한 것은 아닐겁니다.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부분으로 변해가는 부분도 있고, 조직의 발전에 비해 인간으로서 개인이 소외되는 부분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10년 전의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다시 꺼내어 모두에게 읽어 드리는 이유는, 다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의 10년이 지난 우리의 10년보다 더욱 찬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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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센트럴서울안과 구성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많은 분들이 저를 알고 계시겠지만, 저를 잘 모르는 분들도 있으셔서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센트럴서울안과의 녹내장 파트장을 맡고 있고, 병원 전체의 발전 방향 기획 총괄 업무를 맡고 있는 최재완 원장입니다. 오늘 저는 임시병원 이전을 성공적으로 마쳐가는 이 시점,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부담 없이 들어 주시면 좋겠고, 몇 가지 이야기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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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이야기의 시작은 영화 <엑소더스>의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엑소더스>는 구약성경의 <탈출기>를 바탕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을 버리고 이집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파라오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이끌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파라오의 부당한 지배에 대항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거친 광야로 떠나갑니다. 처음에는 모세의 리더쉽 아래에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민족들은 광야에서 이집트 군대의 공격을 받고 죽음에 위협에 직면하게 되자 내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고 따라온 모세에게 말합니다.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고 격렬하게 항의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백성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나를 따르라.”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로도 현대사에서의 유대인 박해 등 더 큰 난관을 겪었지만, 지금은 작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중의 하나인 이스라엘을 건설하였습니다.
저희 병원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저희 센트럴서울안과는 2011년 11월 백내장, 녹내장, 망막질환 등 ‘안과질환 전문 클리닉’으로 동부이촌동 한강쇼핑에서 개원한 이후 성공적인 안과의 모범적인 사례로 한국소비자만족지수 2회 연속 수상 등 여러 언론매체들의 스포트라이트와 고객들의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올해 초에는 <센트럴서울안과 비전 3.0>을 기반으로 병원의 성장을 대대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기 시작하였지만, 지난 6월 22일 KDB대우증권 화재 사고로 인하여 저희의 보금자리와 대부분의 물적 자산을 잃고 처음에는 큰 낙담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이제 저희는 임시병원 진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새로운 둥지를 만들어 다시 놀라운 전설을 만들기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병원의 시설이나 장비 등 물적 자산보다는 여러분들과 고객들로 이루어진 인적 자산이 훨씬 소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또 다른 어떤 꿈을 꾸고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매우 당혹스러운 사고를 맡아서도 각자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최선을 다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고 이후 임시 병원 개원 중 불안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저희 센트럴서울안과를 새로운 직장으로 선택해 주신 엄태경, 고민경, 그리고 10월 1일 새로 입사하실 임수정 선생님 3분께도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희 병원을 거쳐 가시면서 병원의 발전에 기여하셨던 퇴사자 선생님들도 한 분 한 분 떠올려 보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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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스라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왜 어떤 민족은 꿈꾸었던 땅으로 돌아가 꿈꾸었던 나라를 만드는데 어떤 민족들은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도,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도 한 치의 발전도 이루지 못하고 아웅다웅 살다가 패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은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 보려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라는 탁월한 리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만 내지 수십만에 이르렀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라는 지도자 한 명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역사에는 주로 모세에 대한 영웅담이 기록되어 있지만, 저는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민족들에는 모세에 못지 않은 수천명 이상의 리더들과 이들과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는 수없이 많은 구성원들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가끔 의견이 달라 언성을 높혔을지언정 함께 바라 보는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팔로워들은 더 훌륭한 리더가 되어 수천년 이상 이스라엘을 이끌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며칠 동안 계속 생각하다가, 문서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2011년 저희 병원의 첫 개원 때 있었던 구성원들은 이 문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병원의 존재 목적, 구성원들의 행복, 리더와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하여 작성해서 전체 구성원들 앞에서 제가 프리젠테이션을 하였고, 이후 병원 곳곳에 걸어 두었던 문서입니다. 제목은 ‘섬김과 조화’ 입니다.
새로운 병원을 만들면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한 번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1. 의료서비스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섬기는 일이다.
- 우리 존재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환자들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있다.
- 환자들은 우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 ‘내가 많이 알고, 바르게 행동해야 환자들을 치유할 수 있다’
2. 구성원이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하다.
- 구성원은 리더의 지시를 존중하고,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한다.
-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관대함은 미래의 자기 자신을 위한 배려이다.
- 잘하는 사람은 칭찬하고, 못하는 사람은 배울 수 있도록 격려한다.
-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서로 협력한다.
- ‘내가 하지 않는 일은 누군가가 나 대신 하고 있다’
3. 리더의 자격
- 리더 (원장, 실장, 팀장)은 구성원을 섬기고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 구성원의 행복은 나의 권위의 근원이다.
- 구성원들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이고 존중한다.
- ‘나는 존경할 만한 리더인가?’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 통찰력과 공명정대함을 키우려 노력한다. 내가 보는 진실은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팀원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4. 구성원의 자격
- 구성원은 리더의 지시를 존중한다.
- 더 나은 해결책이 있으면 리더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 실무에 익숙해야 한다.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 도움이 필요한 경우 리더와 상의한다.
-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 ‘나는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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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직은 복종과 질서만이 요구되는 조직이 아닙니다. 사실, 스무 명이 넘는 조직에서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항상 똑같은 사람들이 리더이고 그 리더들로부터 내려오는 상향적인 지시들로만 움직이는 조직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의 지시가 없이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조직보다는, 오히려, 끊임 없는 올라 오는 아이디어와 토론, 시행착오와 실패, 재시도를 통한 성공이 요구되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어떤 원칙들과 함께 바라보는 꿈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끔은 서로 생각이 달라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 다른 이해 관계 때문에 갈등을 하게 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린 ‘섬김과 조화’ 문서는 늘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뉴스만 보고 있으면 요즈음은 청년들에게는 정말 우울한 세상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웬만한 스펙이 없이는 취직도 어렵고, 승진도 어렵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를 따고,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고, 검안사가 되어도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적은 시대라고 합니다. 청년들은 좌절하고, 상처입고, 분노를 가장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폭발시키곤 하는 슬픈 뉴스들을 매일 봅니다. 그리고, 이런 소식들로 무기력해진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허비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희 조직과 저희 구성원들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함께 이집트를 떠나 꿈을 찾아 고난의 길을 택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함께 어려운 시기를 견뎌 내었고 이제 새로운 둥지를 지어 꿈을 이루려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조직을 떠난 몇몇 선생님들이 계셨음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약속했었던 것처럼 조직을 축소하거나 급여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시기를 꿋꿋히 견뎌 내고, 이제 새롭게 지어진 둥지를 찾아 떠나려고 합니다.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들은 조직 뿐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을 개인의 삶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계속 발전시킨다면 현재의 대한민국 청년세대의 좌절도 우리로부터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도 여러분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저희 구성원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 봅니다.
황종욱 원장님, 김균형 원장님, 김현정 총괄실장님, 김진경 간호팀장님, 이희영 검안팀장님, 김민정 고객팀장님, 그리고 간호팀 정선화, 이샤론, 임선인, 엄태경, 10월 1일부터 새로 입사하시는 임수정 선생님, 검안팀 안연주, 이샘, 백승윤, 오새희, 이민주 선생님, 고객팀 이상아, 박유미, 하선영, 고민경 선생님, 그리고 저까지 새로운 병원의 출발에 함께 하는 멤버는 모두 스물 한 분.
그리고, 지금은 병원을 떠난 이현숙, 이재남, 최연희, 유기홍, 차해진, 이상은, 신지예, 김윤경, 김혜진, 한지혜, 한승미 선생님까지 열 한 분.
저희 구성원 모두에게, 그리고 저희가 돌보는 환자분들 모두에게 행복과 평화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9월 18일
센트럴서울안과 최재완 공동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