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워드 Nov 17. 2023

<뷰티풀 마인드 Beautiful Mind>

진실과 환각의 경계선 - 조현병에 걸린 천재수학자 이야기

천재가 정신병 걸려 세상을 뒤집은 실화 (영화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FPnnSL7SfNc 



#1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뷰티풀 마인드>를 골랐다. 영화의 절반 이상이 지나가기 전까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 영화는, 어느 누구도 선정에 신경을 쓴 느낌이 없는 밋밋한 기내 영화 리스트 중 들어본 적 있는 제목이라 골랐을 뿐이다. 심지어, 나는 영화가 끝난 후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존 내쉬 역을 맡은 주연 배우가 맷 데이먼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운 천재의 이야기를 다른 <굿윌헌팅>과 헷갈렸던 듯 싶다. <뷰티풀 마인드>의 주연은 러셀 크로우다). 지루한 비행시간을 때우기 위해 보는 심심풀이용 영화 이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2 바르셀로나에 가족들과 함께 오게 된 것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의 조합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은 나의 마음이었던 듯 하다. 내 진료실 벽에 대형 세계지도가 붙어있다. ‘나의 꿈’ 장소들에 나는 마그넷들을 붙여 두곤 한다. 그 중 하나를 몇 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위치에 옮겨 놓은 것은, 올해의 세계안과학회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욕망은 가득했으나, 방법은 몰랐다. 다만, 쉬운 길이 아닐 것이라는 것, 하지만 반드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3 세계안과학회에서의 학술상 수상과 초청강의로 시작된 스페인 여행의 끝은 오늘이다. 카탈루냐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백화점 푸드코드다. 어정쩡한 비행기 출발시간 탓에, 일정은 없다. 가족들은 함께 했다. 우리들은 광장의 비둘기의 숫자를 세어 보거나, 토끼 인형놀이를 하며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혹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나른한 햇볕에 꾸벅거리며 몇 시간을 날려 보낸다. 평화롭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도 들지 않았던 시간, 이렇게 무료하면서도 행복하게 보낸 시간은 최근에는 드물었다. 오늘은 2018년 6월 22일이다.  



#3 이른 아침에 고객팀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싸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들렸다.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나를 보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뒷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매캐한 연기 속에서 유령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마스크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초여름 열기와 뒤섞인 화염과 매연의 흔적들로 처참했다. 3년 전 오늘인 2015년 6월 22일이었다.



#4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던 한 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병원을 폐원해야 했다. 스무명이 넘는 병원 구성원들이 갈 곳조차 없게 되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쇠약이 왔다. 유독물질 흡입 후유증으로 며칠간 호흡조차 곤란했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순간이 있다. 화재 현장에서 만난 ‘그 분’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지금까지도 나의 뇌에 인지되어 있는 이미지는 선명하다. ‘그 분’은 가끔 마주치던 상가 관리인 중 한 분이었다. 큰 사고가 있었던 직후인데도, 그는 평소보다 더욱 침착해 보였다. 그가 자욱한 연기와 악취가 가득한 병원 앞 복도에서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 왔다, “욥기를 읽으세요.” 그 날 저녁부터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욥기를 읽었다. 마음과 몸이 회복되는 시간이 지난 후, 그날 일에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5 존 내쉬의 환각들은 유령들과도 같았다. 그들은 영혼이 단련되지 않은 불쌍한 천재수학자의 눈에만 보였다. 아마도, 근원적 열등감과 현실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자기 과시적 욕망이 뒤섞여 만들어낸 것들이었겠지. 국가정보국 요원은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천재인 그를 찾아와 소련의 암호해독을 부탁했고, 절친한 대학 룸메이트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그를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늘 따라 다니는 나이를 먹지 않는 그의 조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존 내쉬의 허약한 자아가 원하는 달콤한 위안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파멸을 위해 째깍째깍 작동하는 시한폭탄 장치 같았다. 3년전 오늘 있었던 화재 사건을 겪은 직후 붕괴된 나의 자아 역시, 좌절과 분노, 불안과 원망으로 영혼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존 내쉬의 상황과  다를 것이 없어졌다.    



#6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저주스러운 밤이 끝난다. 새벽 길바닥에 너덜너덜하게 뒹굴고 있는 누군가의 자아가 있다. 살펴 보니 내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무언가 영혼에서 빠져나갔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드디어 밤은 끝나고 새벽이 왔다. 하지만, 반대로 삶은 심연에 갇힌 것 같다. 나의 허약한 자아들이, 수많은 머리를 가진 괴물들을 만들어가며 그것들이 나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 할 때, 아무런 무장도, 도움도, 지원군도 없이 내가 그것들과 싸워 이기기란 애시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7 ‘그 분’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 예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삶의 선물을 주신다. 영화 속의 주인공 존 내쉬에게는 변치 않는 신뢰와 사랑을 전해 준 아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가 조현병을 극복하고 훌륭한 수학자로 성공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셨다. 3년 전 당황스런 화재 사건으로 좌절하고 망연자실했던 나에게는, 욥기의 말씀을 전해 준 상가 관리인을 통해, 혹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병원 구성원들을 통해 용기를 잃지 않게 도와 주셨고, 놀라운 재건과 발전 과정을 통해 사랑을 증명해 주셨다.    



#9 물론, 삶은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어려움 또한 반복될 것이다. 아마, 어제나 오늘의 어려움보다 내일의 어려움들이 훨씬 더 큰 것들일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갈 수록 더 큰 파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가끔은 ‘그 분’께서 나를 외면하거나 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의 큰 계획을 모두 다 우리가 알 수는 없는 노릇. 우리들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짧은 시간만을 볼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지 않은가?  



#10 이 말을 끊임 없이 외치며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018.6.22.


천재가 정신병 걸려 세상을 뒤집은 실화 (영화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FPnnSL7SfN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