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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캘리포니아를 꿈꾸다 vs. 캘리포니아에서 꿈꾸다

나의 인생영화 중경삼림과 라라랜드

영화 ‘중경삼림’은,  ‘라라랜드’를 만나기 전까지, 내 생애 최고의 영화였다. 인상적인 음악과 화면, 그리고 내 마음에 투둑 떨어지는 주인공들의 감정들. 뭐 하나 덜어낼 것 없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영화. 특히 그중 두 번째 이야기인 왕정문과 양조위의 이야기는 몇 번을 보았는지.


그런데,  ‘라라랜드’에 여러 번 휘둘리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20여 년 만에 인생 영화 순위를 바꿀 때가 된 것인가’. 고민 중에 문득 두 영화가 뭔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것이 이 두 인생 영화와 나 사이를 서로 통하게 하는 건지. 생각하다가 몇 가지 발견한 것이 있었다. 이전부터 글을 써야지 하다가 미루다가 이제야 나의 감상 글과 몇 개의 영화 장면으로 옮겨본다.


구두 】


두 영화의 마무리 장면은
카페를 찾는 여주인공들의
구두가 화면에 잡히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영화 중경삼림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은 홍콩. 아비(왕정문)는 바라던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비행을 마치고 전에 일했던 사촌오빠의 카페로 1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여행용 가방을 뒤로 끌고 또각또각 향하는 발걸음. 스튜어디스의 높지 않은 굽의 구두가 화면 가득 잡힌다.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의 배경은 LA. 미아(엠마 스톤)가 배우의 꿈을 이룬 후, 전에 점원으로 일했던 카페를 다시 찾는 5년 후 광경이 있다. 승용차 뒷문을 열고 내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또각또각 향하는 발걸음. 여배우의 높은 굽의 구두가 화면을 채운다.



【 CAFE 】


두 영화에서
아비와 미아가 일하는 카페는
그녀들이 꿈에 빠지는 곳이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영화 중경삼림
영화 중경삼림

아비가 일하는 카페는 샐러드, 핫도그, 피자, 생선 튀김 등을 파는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이다. 경찰 633(양조위)은 그 카페의 단골손님이고, 아비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California Dreamin’ 노래를 들으며 캘리포니아를 꿈꾼다. 경찰 633의 전 여자 친구 스튜어디스가 왔을 때 제복 입은 옆에 붙어 키를 살짝 재보기도 한다. 마치 나도 스튜어디스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처럼. 아비는 사촌오빠에게 은행을 다녀온다던가 뭘 사 온다던가 등 여러 핑계를 대며 카페를 빠져나와 경찰 633의 집으로 향한다.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미아가 일하는 카페는 할리우드 세트장 내부에 있어 영화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안 되는 곳이다. 어느 날 유명 여배우가 카페에 들렀을 때, 우아한 걸음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미아의 선망 어린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모른다. 미아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갖가지 배역의 오디션에 응시하러 카페에서 조퇴하며, 누군가의 눈에 띄어 카페에서 벗어나 얼마 멀지 않은 곳.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꿈을 꾼다.


【 California 】


두 영화에서 California는
꿈이고, 또 현실이다.


영화 중경삼림
영화 중경삼림

아비는 카페에서 사촌오빠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항상 California Dreamin’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음악에 맞추어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일한다. 돈을 빨리 모아서 그곳 California에 가서 노는 게 꿈이라고 얘기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경찰 633이 아비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저녁에 만나기로 정한 곳 역시 ‘California’라는 이름의 Bar였다. 아비에게 캘리포니아는 꿈이면서 현실이었다.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미아가 살고 있는 LA는 California의 중심 도시이다. 미아는 California에 있는 그곳, 할리우드에서 배우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황당하게 떨어지고, 자기가 직접 쓴 일인극도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다. 좌절한 미아는 바로 그곳을 떠나 집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California로 돌아온다. 미아에게도 California는 현실이자 꿈이었다.


【 개입 】


두 영화에서 주인공은
상대의 생각, 인생에 개입해서
바꾸고 돕고 싶다.


영화 중경삼림
영화 중경삼림

아비는 경찰 633의 전 여자 친구가 아비의 집 열쇠를 카페에 맡긴 이후, 그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 많은 것들을 바꿔놓는다. 비누, 수건, 양치컵, 슬리퍼, 식탁보, 금붕어, 통조림, 인형, CD에 셔츠 까지. 경찰 633에게 너무 익숙해서 낡은 것들을 자기 취향으로 새롭게 바꾸어놓으며, 사랑을 잃고 크게 상심하여 무감각해진 경찰 633의 마음을 서서히 자기 쪽으로 이끌어온다.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I Hate Jazz.둘의 첫 데이트 산책길에서 미아가 던진 솔직한 말. 이 말에 세바스챤은 단골 재즈바로 미아를 데려가서 재즈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지, 긴장감 충만하고 멋진지, 직접 들려주며 확신에 차서 설명한다. 이로 인해 미아는 점점 재즈와, 재즈를 좋아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미아가 공연 실패에 좌절하여 꿈을 포기하고 부모님 집으로 도망갔을 때, 그는 멀리 볼더시티 까지 찾아가서 그녀를 설득하여 다시 꿈을 찾아 할리우드로 돌아오도록 만든다.


【 기다림 】


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돌아온 여자를
기다리던 남자가 있다.
영화 중경삼림
영화 중경삼림

중경삼림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비가 찾은 카페. 카페에 불은 켜있는데 셔터가 내려져있다. 셔터를 올려보니 그곳에는 1년 전,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렸던 경찰 633이 있다. 이제 카페의 새 주인이 되어 그녀가 좋아했던 California Dreamin’을 틀어놓고 가게를 꾸미고 있다.  그녀는 그에게 다시 만날 새 비행기 티켓을 그려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 미아가 남편과 우연히 들른 카페 SEB’S. 그녀가 예전에 지어준 이름을 가진 그곳의 주인은 세바스챤이었다. 그는 다시 돌아온 옛 연인에게 그녀가 그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피아노곡을 연주한다. 두 명 중 누군가의 상상 속을 지나는 연주 시간이 흐르고, 둘은 눈빛을 마주치고 옅은 미소를 함께 나누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두 영화 모두에게 나는 처음 볼 때부터 반해버렸다. 영화 전체에 나와의 공감과 여운이 넘쳐 흘렀고, 여러 번 봐도. 어떤 부분은 익숙해서 좋았고, 또 어떤 부분은 새롭게 느껴져서 좋았다. 그동안 많이 보았고, 앞으로도 여러 번 더 보게 될, 시대와 지역 배경은 아주 다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서로 아주 비슷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인생 영화 두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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