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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n 28. 2019

그 시절 나를 돌봐준 노래 10곡

노래의 위로

어린 시절 형들과 우리 노래를 즐겨 들었다. 산울림, 들국화, 시나위 같은 그룹과 조용필, 이문세, 김현식 등 솔로 가수 까지, 그 시절 라디오, 테이프나 LP 들었던 노래들은 책 보다 더한 마음의 양식이었다.


대학과 사회 초년 시기에는 언더 그라운드 가수노래를 많이 들었다. 송에선 잘 볼 수 없는 그들의 진솔한 가사와 목소리, 소박 연듣고 공감하며 힘을 얻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나이에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는 생각도 들지만, 제대로 사는 게 참 힘들구나 , 뭔가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날 때 내게 와서 위로하고 힘을 던 노래가 있었다. 성장기에 나의 곁에 있었던 친구 같은 옛 노래들을 다시 들으면서 가사와 함께 추억을 적어본다.


1. 푸른 애벌레의 꿈 - 시인과 촌장[숲] (1988)

"나는 빼앗긴 것이 많아서 모두 되찾기까지 수 없는 날 눈물로 기도해야겠지만. 나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지 수 없는 아쉬움 내 마음 아프겠지만. 나는 괴롭던 날이 많아서 이 어둠 속에서 내가 영원히 누릴 저 평화의 나라 꿈꾸며. 홀로 걸어가야 할 이 길에 비바람 불어도 언젠가 하늘 저 위에서 만날 당신의 위로가 있기에. 끝없이 펼쳐지는 저 높은 하늘, 저 하늘 위에 내 마음을 두고. 슬피 쓰러져 잠들던 이 어두운 숲 속에 불 밝히며 땀 흘리며. 그렇게 오랜 나날 기다려 왔던 푸른 날개가 돋으면 날개가. 이 어둠의 껍질을 벗고 이기고 나가 그렇게 목말라 애타게 그리워했던 새로운 하늘 새로운 태양 새로운 빛깔의 세계를 날아다닐 자유 자유 자유"


가수 하덕규가 모든 곡을 쓰고 노래한 시인과 촌장의 앨범 '숲'에 수록된 노래.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하는 머릿곡 '가시나무'가 유난히 알려지고 리메이크도 여러 번 되었지만, 나는 이 음반에서 이 노래를 더 좋아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애벌레로 한참을 외롭게 버티다가 푸른 날개가 돋아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의 모습. '두두둥 둥둥두둥' 하고 갑자기 터지는 드럼 소리와 함께 어둠의 껍질을 깨자유를 향해 나서는 푸른 나비를 상상했다. 노래 마무리에 반복되는 '자유'라는 가사가 주는 평화로움과 잔잔한 음악. 아마도 그때 내가 고3과 재수 시절을 보낼 때라서 더 깊이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2.  춘천 가는 기차 - 김현철 1집(1989)

"조금은 지쳐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 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8~9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중 상당수가 동아기획 소속이었다. 89년 연말이던가 김현식, 이정선, 한영애, 신촌 부르스, 푸른 하늘, 봄여름가을겨울 등 동아기획 소속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 모두 여기에'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열었다.  63 빌딩에서 열렸던 그 공연에서 아마 박학기가 펑크를 냈었던가. 앳된 청년 한 명이 대신 나와 수줍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자작곡인 박학기 앨범 수록곡 '여름을 지나는 바람'을 잔잔하게 불렀던 그 스무 살 김현철이었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노래에는 그때 그에게 느꼈던 풋풋함이 담겨있다. 사는 게 많이 팍팍하구나 느낄 때, 이 노래는 '푸푸우웅' 하는 기적 소리와 적당한 소음, 편안한 흔들림으로 나를 태우고 춘천으로 간다.


춘천으 향하는 기차에는 나뿐만이 아니고, 그 당시 오갔던 많은 청춘들의 추억이 점점이 담겨있을 것이다. 대성리, 강촌, 춘천... 어느 곳이든 도착해 술 한 잔에 적당히 취한 채 이 노래를 들으며 돌아오고 싶다.




3. 출발 - 어떤 날 2집(1989)


"하루하루 내가 무얼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진 엇비슷한 의식주로 나는 만족하더군. 은근히 자라난 나의 손톱을 보니 난 뭔가 달라져가고. 여위어가는 너의 모습을 보니 너도 뭔가 음. 꿈을 꾸고 사랑하고 즐거웠던 수많은 날들이 항상 아득하게 기억에 남아 멍한 웃음을 짓게 하네. 그래 멀리 떠나자 외로움을 지워보자. 그래 멀리 떠나자. 그리움을 만나보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무언가 잡을 때,  문득 ', 손톱이 그새 빨리도 자랐네' 느낄 때가 있다. 머리나 손톱이 그냥 길어지듯 시간은 내가 인식하는 것과 상관없이 꾸준히 흐르고 그동안 나도 뭔가 조금은 달라졌다. 어떤 날 2집 머릿곡인 '출발'의 가사는 그런 느낌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베이시스트 조동익이 사이좋게 노래를 나누어 부르 듀오 '어떤 날'. 내가 시간에 무뎌진 채 하릴없이 흘러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느낄 때 노래를 듣곤 했다. 그러면 이병우가 만든 이 노래는 경쾌한 드럼 소리로 나를 불러내어, 지난날 꿈이 있던 그곳에 그리움을 만나러 출발하자고 재촉한다.




4. 다시 다가가 - 정혜선 1집(1992)


"다시 다가가. 그 어떤 두려움도, 괜한 걱정이랑 모두 떨쳐버려.  다시 다가가. 이제는 너의 진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다가가. 우우 느껴지지.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있지. 분명 우린 찾게 된다는 걸. 다시 다가가. 새로운 시작이야. 아직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있어. 다시 다가가. 변하지 않는 너의 그런 순수한 열정이라면 다가가. 우우 느껴지지.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있지. 분명 우린 찾게 된다는 걸. 다가가. 오직 그것만을 위해 다가가. 그런 순수한 열정이라면. 다가가."


그 시절 순진함은 주저함과 동의어, 적어도 유의어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갑자기 들이닥친 자유가 점점 버거워졌고, 사라진 목표 대신 찾아온 새로운 희망은 낯설었다. 대학 생활 내내 그리 잘 적응하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과 어울림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이런저런 관계에 많이 주저했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이 노래였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1회 금상을 수상하며 등장한, 당시는 흔치 않았던 여성 싱어송라이터 정혜선. 전곡을 혼자 만든 당찬 데뷔 앨범에서 그녀가 얘기했다. 다시 다가가. 그런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오직 그것만을 위해 다가가라고. 잡으라는 것도 노력하라는 것도 아닌 그냥 다가가라고. 내 귀에 톡톡거리 그녀가 얘기할 때, 그 목소리가 참 조곤조곤해서 힘을 내곤 했다.   




5.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김광석 3집(1992)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장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이제는 잊어야 한다. 너를 이제 떠나보내고 새로 시작하자.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누워도 자꾸 네 모습이 눈 앞에 떠올랐다가 이내 뿌옇게 흐려진다. 눈물이 갑자기 터져 나와 볼을 타고 바닥으로 흐른다.


'그래 지나고 보면 이 아픈 순간도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쌓이겠지' 다시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추억만큼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다. 별을 다가 너를 떠올리다가 하는 동안 검푸른 멍 같던 하늘이 점점 하얗게 밝아온다.


새벽에 네가 들어있던 마음은 어제보다 늘어나서 커졌. 후 하고 입김을 불고 너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가 천천히 지우며 너를 떠나보낸다. 잔잔한 기타 반주와 담담한 김광석의 목소리는 사랑에 힘들어하는 마음을 렇게 어루만진다.  




6. 서른을 바라보며 - 여행스케치 4집(1994)


"지쳐버린 나의 하루가 포근한 밤에 잠이 들면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 되살아 나는데. 가끔씩 내게 편질 쓰던 친구들마저 소식 없어 넓고 험한 이 세상 위에 혼자라 느낄 때. 어디선가 들리는 낯익은 음악소린 이미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 오랫동안 간직한 소중한 일기처럼 내겐 꿈을 주네. 매일 똑같은 생활 속에 숨 막힐 것 만 같은 나는 어제와 다른 오늘이길 간절히 원하네. 어느덧 내 나이도 서른이 되어가고 이루어 놓은 건 하나도 없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사랑일 뿐이야.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가난했던 날들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후회하지 않아.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가난했던 날들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후회하지 않으리."


'서른'은 젊음에게 하나의 고비처럼 다가온다. 이십 대를 훌쩍 떠나보내고 뭔가 확실한 것이 있어야 할 것도 같은데, 뭐 제대로 해놓은 것 하나 없다. 서른을 맞이하는 이에게 서른이 되는 것은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근데 한참 지나고 보면 안다. 서른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유턴하고 다른 길을 찾아도 부담 없는 나이인 것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청춘과 사랑과 이별하는 애잔한 정서를 노래한다면, 여행스케치의 노래에는 사랑하며 살아온 날을 후회 없이 돌아보는 희망의 정서가 담겨다. 여행스케치의 이 노래는 초반부 독백의 쓸쓸함을 후반부 합창의 화음으로 훌훌 날려 버리고 희망으로 마무리한다.


그 시절 대학로의 LIVE 소극장에서 만났던 여행스케치. 노래 후반부에 드럼과 함께 '아~름답게'로 시작하는 그들의 합창을 들으며 물이 글썽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가 여행스케치 멤버들이나 나나 서른을 같이 바라보는 시절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7. 당당하게 - 안치환 4집(1995)


"무대 위에 불빛은 꺼지고 조용한 이 노래만 남아있소. 오늘의 내 삶을 뒤돌아보니 아쉬움과 기쁨이 함께 하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소. 인간에 대한 사랑의 길로. 무엇이 바뀌고 변하였소. 그 누가 대답해주오. 그 누가 대답해주오.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오늘은 비록 흐린 날에 취했어도 내 마음은 언제나 그대들과 하나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고 싶소. 희망이란 내일 찾아 우리 모두 당당하게."


꿀릴 것 없이 당당하게. 안치환은 한결같은 꾸준한 가수다. 집회 현장에서 아직도 공연을 이어가고, 꾸준히 신곡도 발표하고 있다. 4년 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암을 극복하고 노래하는 나이 50의 청년 같은 그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는 진솔한 그의 노래가 참 좋았다.


95년 12월,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공연을 보러 간 날이었다. 안치환 공연인데 김광석이 대신 나왔었다. 안치환이 부친상이라서 자기가 대신 노래하러 나왔다고 했다. 그들은 이후의 방향은 달랐지만 예전에 '노찾사'에 같이 있었던 사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바로 그다음 달에 김광석이 그렇게 떠나버릴 줄은.


안치환 3집[고백] 앨범의 '소금인형'이나 '우리가 어느 별에서'처럼 시에 곡을 붙인 서정적 노래들과 달리, 4집에서 '수풀을 헤치고' 록으로 돌아온 안치환. 당당하게 살자며 강렬한 목소리로 믿음과 꿈과 자유를 외친다. 나는 여전히 당당한 그가 반갑고, 희망을 찾으며 기쁘게 노래하는 그가 너무 부러워서 목청껏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8. 노래만 불렀지 - 김장훈 3집(1996)


"난 길을 떠났지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어 마치 어느 영화 속에 나오는 슬픈 사람처럼. 난 돌아보질 않았지 그저 앞만 보고 가면 내 앞엔 아주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아서. 멀리로 아주 멀리로 떠나온 것 같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를 난 서성댔지. 이제는 돌아가려 해도 다시 갈 수 없는 건 어느덧 나의 그 방황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야. 영원한 사랑을 찾아 헤매어도 봤지만 언제나 마음속의 병 때문에 모두 떠나가고 다시 혼자되어 난 노래만 불렀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울면서 불렀어. 눈물에 가려진 세상 보며 난 노랠 불렀지. 언제나 좋은 날을 꿈꾸면서 노랠 불렀지. 이제는 다르게 살아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었지. 언제나 생각뿐이었어. 슬픈 날에도 하늘 보며 난 노래만 불렀지. 언제나 혼자되어 하늘 보며 노래만 불렀어. 다시 혼자돼도 노래만 부르지. 눈물로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난 노래만 부르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김장훈 3집은 사람들이 3집인지 잘 모른다. 앞의 두 개 음반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고, 김장훈도 3집이라고 쓰기 부끄러웠는지 앨범 사진에 인삼하고 집 모양을 도장 같이 살짝 새겨 넣어 '삼 집'임을 소심하게 알렸기 때문이다.


그의 1집부터 3집까지의 시간에 그의 공연에 몇 번 함께 하면서 그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었다. 판소리에서 득음을 바라는  냅다 질러대는 듯했던 그의 샤우팅3집에서 비로소 풍부한 감성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그중에 기획사에서 넣은 타이틀곡을 제치고 단연 빛나는 노래는 이 '노래만 불렀지'이다.


울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일까. 방황하며 이게 길이 아닌가 싶은 순간에도 그냥 소리 질러 노래하는 그를 생각해본다. 3집 나오기 전 덕수궁 옆 마당세실 공연에서 김장훈이 그랬다. "제가 좀 이제 변해보려고요. 변했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때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후 그는 예능인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기부천사나 독도지킴이 등으로 우리 곁을 진실되게 지키며 소극장에서 꾸준히 노래하고 있다.


3집의 노래 중 '가난한 날이 노래가 되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 제목처럼 예전 그의 힘들고 방황하고 가난했던 시절이 노래가 되어 주위 힘든 사람들을 감싸고 위로하는 듯하다.




9. Just... Ok! - 체리필터 1집(2002)


"어젠 태어났음이 슬퍼졌었지. 텅 빈 마음에 드리운 많은 욕심에 너를 꿈꾸면서 기억하는 건 나의 욕심이겠지. 이젠 잡히지 않는 잔인한 날들은 놓을게. I'm just OK. 시린 아픔들과 여린 믿음들과 화해할 수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미워하지 않도록 I'm OK.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제발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마. 설레던 너의 웃음에 감사하도록. 그리고 제발 다시 나의 눈물이 보이지 않길. 이젠 잡히지 않는 잔인한 날들은 놓을게. I'm just OK. 시린 아픔들과 여린 믿음들과 화해할 수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미워하지 않도록 I'm OK.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I'm just OK, I'm just OK.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I'm OK."


체리필터의 첫 공연이 열렸던 정동극장 맨 앞자리에서 스탠딩으로 펄펄 뛰며 이들의 공연을 함께 했었다. 주로 열정적인 락 공연 무대였지만 그 사이에 리드보컬 조유진이 이 노래를 조용하게 시작했다. I'm Just OK. 난 괜찮아. 화해할 수 있을까. 나 자신과 나의 아픔과 믿음과 욕심과. 짙은 반짝이 화장을 한 그녀였지만, 조용히 내지르는 목소리는 혼자 마음을 정리하는 듯한 가사와도 잘 어울렸다.


시린 아픔과 여린 믿음과 화해할 수 있는 나를 바라는 가사인데, 결국 화해는 이해와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OK가 아닌 Just OK라는 표현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독특한 자기 성찰이 묻어있는 1집에서 이미 그들은 낭만으로 달리는 고양이에서, 하늘을 나는 오리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 삶은 여행 - 이상은 13집 'The Third Place' (2007)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 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여행 다니며,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사진 찍고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던 그녀가 일본에 머물면서 만들었다는 노래. 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겅중겅중 춤을 추며 데뷔한 이후, 철학적이거나 실험적인 다양한 노래를 부르던 그녀가 38살에 발표한 노래 '삶은 여행'.


삶을 이 세상에 여행 온 것으로 생각해보면, 같이 여행을 떠나 같은 곳에 가도 누구는 여행 내내 사소한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기대와 실망을 거듭하고, 또 다른 누구는 풍경과 작은 친절에 감사하마음의 자유를 는 것을 본다. 노래 전체가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답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이제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을 가슴에 안겠다는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 닿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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