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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Sep 05. 2021

별 볼일 있던 날

아내가 갑자기 별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디 가서 자고 오지는 말고 밤에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내는 요즘 '별 보러 가자' 노래를 자주 들었다. 원곡 가수인 적재 버전보다 박보검 리메이크 버전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우리는 원래 별 보는 걸 좋아했다. 여행 가서 한밤중에 알람 맞추어놓고 일어나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참 많이 했다. 한창 때는 백허그를 한 채로 별을 바라보았던가. 마음에 별이 가득 담던 시절이었다.


별 보기 좋은 곳 검색을 했더니 주로 강원도의 명소들 사이에서 경기도 양평 벗고개 터널이 떠올랐다. 차로 1시간 남짓 거리라서 다녀오기도 적당해 보였다. 그다음은 날씨. 구름 없고 달이 밝지 않아야 별이 잘 보일 텐데 날씨는 맑은 편, 그리고 달이 낮에 이미 떠서 저녁 11시쯤이면 진다고 했다. 아, 달이 밤새 떠있는 게 아니로구나. 오후에 보이는 하얀 달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일단 가족들 다 같이 벗고개 터널에 가기로 했다. 밤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밤 11시쯤 되어 출발했다. 가는 길  안에서 '별 보러 가자' 노래를 참 많이도 들었다. 박보검이 계속 자기랑 별 보러 가지 않겠냐고 꼬드겼다. 그래 그래 알았다고, 가고 있다고... 국도에서 빠져나와 구불구불 어둡고 좁은 시골길을 한참 달려야 했다. 벗고개 근처에 다다르니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 갑자기 어둠 속에 정차된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벗고개 한참 아래에서부터 갓길에 차들이 이미 엄청 줄지어 서있었다. 별 보기에 진심인 분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며 놀랐다.


일단 별 보러 온 동지들에 방해가 안 되도록 라이트를 끄고 조심스럽게 차를 댔다. 차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 가득 뿌려져 있었다.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올랐다. 순간 갑자기 별똥별 하나가 하늘에 긴 금을 긋더니 사라졌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우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별똥별을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도로에서 옆으로 난 샛길 풀숲 사이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풀벌레 소리는 또르륵 대며 귀를 간지럽히고, 하늘을 가득 채운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간이었다. 별똥별이 가끔 하늘에 금을 사라지면 다 같이 보기도 하고 혼자만 보기도 했다. 별똥별은 위에서 아래로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 곳곳에서 제각기 아래로 위로 오른쪽 왼쪽으로 길고 짧은 흔적을 만들며 사라졌다. 계속 누워있다가는 밤을 새지 싶어서 큰 별똥별 하나만 더 보고 이제 일어나자고 하고 곧 아쉬운 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벗고개의 밤하늘(폰카의 한계)

별을 바라보며 '천문학적'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우리가 별에 대해 얘기할 때 쓰는 단어. 별까지의 거리나 별의 크기, 움직이는 속도나 별의 나이 같은 것. 일상의 숫자로는 표현하기도 짐작하기도 어려운 아득한 것들을 부르는 말. 생각해보면 내가 세상에 태어난 확률이나 살면서 맺는 다양한 인연의 확률도 역시 천문학적이다. 인연은 마음에 담으면 별이 되고, 흘려보내면 별똥별이 된다.


밤하늘은 그래서 아름다운가 보다. 아득한 옛날 너와 내가 같이 먼지로 떨어져 나왔을 아득한 거리의 별들과 눈으로 만나는 시간. 지구별에서 별똥별이 스쳐가는 찰나의 천문학적 순간에 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 보이지는 않아도 별은 항상 하늘에 떠있었고, 느끼지는 못해인연은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시간. 별 볼일 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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