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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Sep 12. 2021

임종방에서 들을 노래

예능프로에 젊은 의사 두 이 손님으로 나왔다. 출연진이 초대 손님과 같이 옥탑방에 앉아 퀴즈를 풀며 대화하는 컨셉프로인데, 그날은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퀴즈의 주제가 되었다. 그날 마지막 퀴즈는 "일반 병실에는 없고 임종방에만 있는 '이것'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였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를 위한 곳. 따뜻한 색 벽지를 바르고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임종방. 더 이상 필요 없는 연명장치 대신 그곳에 있는 것은 스피커였다. 사람의 오감 중에서 가장 끝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서, 마음의 평안을 위해 평소 좋아했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함이라 했다.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143회 중

스피커가 있는 병실. 내 기억 속에는 그런 방이 또 하나 있다. 지금부터 스무 해 전 첫아이 출산 때, 그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가족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족들이 산모 곁에서 출산의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곳에 아내와 둘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CD플레이어가 있으니 산모가 잘 듣는 CD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사실 그리 오래 걸릴 줄 모르고 태교음악 CD만 좀 챙겨갔었는데, 저녁에 들어가서 밤새 진통하고 다음 날 오후에 출산하기까지 그 음악만 반복해서 계속 들었다. 하도 지겨워서 나중에는 그냥 꺼버렸던가... 어쨌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분만실 한 생명이 저무는 임종방 모두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방송에서 의사들이 그랬다. 임종방에서 의식이 없으시더라도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것이라서 계속 따뜻한 말을 전해드리라고. 다 듣고 계셔서 표현은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기뻐하실 거라고 했다. 순간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가 언젠가 임종방에 들어가는 상상하니 기분이 참 묘해졌다. 그때 옆에서 TV를 같이 보던 아내가 이야기했다. 자신이 임종방에 들어가게 되면 틀어줄 임종송을 미리 알려주겠노라고. BTS 열성팬인 아내는 임종송으로 BTS의 '고민보다 Go'를 준비해달라 했다. 아... 그 노래. "달려달려 YOLO YOLO 탕진잼 탕진잼" 을 노래하는... 어쨌든 소원이 그렇다니, 고민하지 않고 갈 길을 가겠다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143회 중

음악이 가진 추억의 소환과 다정한 위로의 힘은 크다. 어떤 노래를 오랜만에 들으면 그 노래를 한창 듣던 그 시절이 선하게 떠오르고, 좋은 노래는 듣고 또 들어도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준다. 그래서 가끔 집 정리를 하면서 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은 이것저것 골라 잘도 버리는데, 오래된 CD들은 왠지 책과는 차원이 다른 추억이 담긴 느낌이라 버릴 수가 없어 그대로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다.


며칠 후에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를 들었다. 아내가 말했다. 아. 이 노래도 임종송으로 같이 틀어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내가 이 노래 원곡은 전인권인데 연륜 있는 원곡자의 노래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적이 부른 걸로 틀어달라고 했다. 그래 알았다고 하고 보니 저번에 아내가 임종송으로 부탁했던 BTS 노래가 뭐였는지 갑자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BTS '불타오르네' 뮤직비디오 중

저번에 틀어달라던 그 BTS 노래는 뭐였지? 음...아. '불타오르네' 였던가? 내가 말했더니 뭔가 싸아한 느낌이 들었다. 아. 뭐지 이 분위기는? 생각하는 순간 아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무리 곧 불타오르게 될 몸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노래까지 먼저 그런 노랠 들려주고 싶나? 하더니 등으로 스매싱이 날아들었다. 아. 등짝이 후끈 불타올랐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고, 너에 대한 사랑은 마지막까지 불타오른다는 뜻이라고...

https://youtu.be/ALj5MKjy2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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