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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l 16. 2022

흔함을 쓰담

장마전선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반짝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좋은 주말 아침, 집에서 멀지 않아 그냥 '저기 산이 보이네.' 낮은 산에 올랐다. 하늘과 나무와 풀과 바람 그리고 그늘 따라 걷는 길,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은 꽤 흘렸지만, 사방이 탁 트인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세상 흔한 것들이 모여 돌보고 . 항상 곁에 있어 존재를  느끼 못하 것들. 이를테면 나무와 풀과 바람, 흙과 물과 공기, 바위 은 것. 흔한 것이 흔한 이유는 오히려 필요해서 흔해지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흔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주 잊고 산다. 우리는 우리가 무시하는 흔한 것들  무사하게  수 있다는 사실을.


흔함과 귀함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며, 귀하다는 말은 희소함을 헤아리는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흔하면서 동시에 귀한 것들 덕분에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흔하지 않은 것만을 귀한 것이라고 여기며 가지려고 애쓰 막상 가지면 또 다른 것을 욕망한다. 그러나 흔하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 그게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반면 세상 흔한 것들 조금만 덜 흔해지더라도 바로 티가 난다.

"젊은 날엔 젊음을 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이상은_ '언젠가는'중). 


당연히 여기고 항상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들. 지는 꽃이나 시드는 풀처럼, 떠나고 스러지고 나면 그제서흔했고 또 찬란했던 것 깨닫고 그리워한다.


기대가 이루어지는 일보다 그러지 못한 경우가 흔하고, 마음이 기뻐 붕 떠오르는 일 보다 무거워 축 가라앉는 일이 흔하다. 살다 보면 기억보다 잊힘이, 만남보다 이별이, 설렘보다 걱정이 더 흔하다. 그처럼 흔한 일이나 흔한 감정 역시 흔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슬프거나 짜증나거나 하는 일들도 결국 우리가 삶에 단단히 발붙이고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감정이다.

산에 오르며 흘리는 흔한 땀은 흔하게 부는 바람이 식혀주는 것처럼, 흔한 것들은 서로를 돕는다. 흙은 나무를 돕고, 나무는 새와 벌레를 돕는다. 흔한 감정도 마찬가지로 이별은 슬픔이 돕고, 슬픔은 잊힘이 돕는다.


흔한 것들이 마음에 들이닥칠 때 그것에  가끔 글을 썼다. 글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대상을 쓰다듬는 일 같다. 내가 흔한 존재로서 살아있동안, 주위의 귀하며 흔한 것들을 잘 살피고 돕고 쓰다듬어 글로 잘 옮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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