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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29. 2019

어느 야구선수의 죽음

빌 버크너.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1루수 중 한 명이다. 1969년부터 1990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22 시즌을 뛰며 2,715안타를 쳤고 통산 타율 0.289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980년 내셔널리그 타격왕이기도 했던 그가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의 죽음이 뉴스가 되는 이유는 그의 업적 때문이 아니다. 그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던 1986년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범한 '알까기' 실책 한 번 때문이다. 5-5로 뉴욕 메츠와 맞서던 10회 말 수비, 2사 2루에서 그가 평범한 땅볼을 가랑이 사이로 빠뜨려 점수를 내주면서 보스턴은 그 경기를 패하고 만다.


시리즈 3승 3패로 동률이 된 후, 결국 7차전에서 보스턴이 패하면서 그는 시리즈 우승을 날려버린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이후 2004년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86년 만에 우승할 때까지 계속 그와 그의 가족들 모두 엄청난 비난과 마음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TV에는 그의 실책 장면이 잊을만하면 다시 리플레이되었고, 그가 놓친 그 공이 수십만 달러로 경매에 등장하기도 했다.

1986년 월드시리즈 6차전 실책 모습 /Japan Times

2008년 보스턴 팬웨이 파크의 개막전 시구자로 등장한 후 인터뷰에서 그는 “보스턴 팬들이 아니라 언론을 용서했다. 이제는 다 끝났고 다 잊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얘기했다.


야구는 한 경기마다 팀당 27명씩 54명, 적어도 51명의 선수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경기다. 타자들은 공을 제대로 못 쳐서 죽거나, 공보다 빨리 못 뛰어서 죽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우연과 필연들이 겹쳐서 한 경기의 결과를 만든다. 1986년 월드시리즈에서도 7번의 경기 동안 양 팀 합쳐 60점의 점수, 134개의 안타, 9개의 실책을 만드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빌 버크너의 실책은 그중 하나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는 그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08년 보스턴 팬웨이 파크 시구하는 모습 / CNN

야구에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일인데 꾸준히 생을 잘 살아온 사람에게 빌미로 삼아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의 실수에 그가 살아온 모든 다른 업적이 묻히는 경우를 보면 마음이 안타깝다.


버크너는 69세인 그리 많지 않은 나이로 죽기 전까지 치매로 오랜 기간 투병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머릿속에 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이 치매를 통해 그에게서 지워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가 저세상에서는 부디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서 편안하길 바란다. 

출처 : Deadline.com

Bill Buckner

194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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