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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Sep 15. 2019

그 많던 상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상아는 코끼리 코 양 옆으로 길게 튀어나온 엄니를 말한다. 수컷 상아는 3m 넘게 자라기도 한다. 기다란 코와 함께 코끼리의 상징이지만 최근 상아 없는 코끼리가 점점 많이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스리랑카 숫코끼리의 90%가 상아가 없으며, 아프리카 국립공원에 있는 코끼리 중 많은 개체가 상아가 없거나 크기가 작아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일부 과학자는 코끼리가 상아 없이 태어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코끼리는 여전히 긴 상아로 땅을 파서 물을 찾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기며 적의 공격을 막거나 암컷을 놓고 다른 수컷과 겨룬다. 거대한 덩치와 날카로운 상아 덕에 사자조차 코끼리에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그런데도 코끼리가 진화를 통해 상아를 없애는 이유는 상아의 쓰임새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밀렵 때문이다.

상아는 영어로 ivory라고 한다. 아이보리색의 어원이 되었다. 고급스러운 색과 적당히 단단한 성질 때문에 기원전부터 상아는 고급 공예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값 비싼 상아를 얻으려는 코끼리 사냥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1989년부터 상아 거래가 전면 금지되었으나 밀렵과 밀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상아 없는 코끼리가 주로 살아남아 짝짓기를 했고 점차 코끼리는 상아 없는 동물이 되어왔다. 살아남기 위한 슬픈 진화의 모습이다.  

예전에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서 멋진 상아를 뽐내며 초원을 누비던 코끼리 같았다. 상아를 가지고 있다 해서 다른 동물 위에 군림하지는 않았다. 다만 상아는 스스로 가진 개성이었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상아가 있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쫓기다 보니, 상아를 가진 동료가 사라지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다 보니, 우리는 타고난 상아를 점점 숨기거나 없애버렸다. 

이제는 땅을 파서 물을 구하기도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맛있는 속살을 먹기도 어렵게 되었다. 용맹스럽게 다른 동물의 침입에 맞서기도 두려워졌다. 큰 덩치에 기대어 삶을 꾸려나갈 뿐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상아 없는 조직의 유전자로 인해 점점 주변은 상아 없는 코끼리 무리로 채워졌다.  

멋진 상아를 뽐내며 초원을 위엄 있게 누비던 동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상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상아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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