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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r 23. 2022

H는 묵음이야

지현씨 속삭였다. "H는 묵음이야." 아몬드에 갖가지 시즈닝을 입혀 만든 HBAF 광고였다. '바프'라고 부르라 하니 H를 잘 발음하지 않는 유럽 어느 나라 간식인가 했다. 갑자기 왜 '휘바~ 휘바~' 했던 북유럽 출신 껌이 떠올랐을까. 전지현씨가 외국 간식을 본토 발음으로 알려주는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면 HBAF는 한때 줄 서야  수 있었던 인기폭발 허니버터칩의 아류인 허니버터맛 아몬드(Honey Butter Almond Flavor)의 약자다. 국내 브랜드라서 딱히 H가 묵음일만한 역사적 이유는 없는데 단지 약자와 묵음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을 뿐이다. 졸지에 전지현에게 공개적으로 버림받은 H 입장에서는 상당히 서운한 일이겠다.

"H... 너는 묵음이야. ㅋ"

묵음은 글자로는 존재하나 발음할 때는 없는 듯 취급된다. 중학교 영어 시험에 '밑줄 친 문자 중 발음이 되지 않는 것은?'류의 문제로 나왔는데, 같은 K로 태어나도 ing 앞에 붙으면 왕이지만 nife 앞으로 가면 소리 없는 칼이 되는 것처럼, 있으면서도 없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운명을 가진 문자가 묵음이다.

누구인가? 어느 묵음이 소리를 내었어?

묵음의 가치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TV에서 코로나19 브리핑을 할 때마다 항상 서 열심히 수어로 설명하분들을 자주 본다. 모두 마스크를 고 말하니 청각 장애인에게 더 힘든 세상에서 오로지 손짓과 표정으로 자막이 전하지 못하는 염려와 공감을 전달한다. 세상은 알고 보면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착하게 살아가는 여러 묵음 같은 이들 덕에 무사히 돌아간다.  

작년 말 개봉한 하루키 원작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체홉의 연극 '바냐 아저씨'를 각기 다른 국적의 배우들이 서로 다른 언어대화하며 감정을 나누는 방식으로 공연에 올린다. 그중 한 명은 청각 장애 배우라서 소리 대사 없이 수어로 공연에 참가하는데, 그녀가 손짓과 몸짓, 표정으로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 긴 낮밤을 끝까지...' 하며 바냐 아저씨를 위로하는 수어 대사는 말로 하는 대사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중 연극 '바냐 아저씨' 공연

사람의 몸 중에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가 바로 혀가 아닐까? 일부러 내밀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지만 먹거나 말할 때나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인다. 미세한 움직임과 공기 차이로 다르게 뱉는 말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까지 가능한, 항상 발랄하게 움직이지만 가장 위험한 부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심해야한다. 무엇이든 쉽게 움직일수록 잘못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혀로 쉽게 꺼내는 말보다 숨기지 않는 표정과 몸짓으로 더 표현하면 좋겠다. 그게 진실에 더 가깝다.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이라면 말로 하기 보다 눈을 맞추고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나타내보자. 따뜻한 몸짓은 행복을 옮긴다. 그래서 Hug와 Happy의 H는 묵음으로 표현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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