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Mar 07. 2020

자꾸만 거슬리는 일

"후루루루루룹". 오늘도 또 시작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할수록 반복되는 소리는 귀에 더 거슬렸다. 소리를 피하려 이어폰을 꽂았다가 답답하여 금방 다시 빼버렸다. "후루루루루룹". 그냥 여러 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자. 커피머신의 치이이이익 소리나 탁탁탁탁 커피 찌꺼기 털어내는 소리와 마찬가지 아닌가. “후루루루루룹”.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모든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가 귀를 계속 자극했다.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보내는 이른 아침 시간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그저 멍 때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의 뒤에 그 시간에 계속 앉기 시작한 이의 소리가 유난히 또렷이 들렸다. 귀에 거슬리는 후루룩 소리가 소중한 시간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거슬린다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귓전에서 앵앵거리는 모깃소리나 쓰레기 삐져나온 휴지통 같은 것, 흰색 옷에 작은 얼룩이나 보고서 오탈자 같은 것, 영화 기생충 속 기택의 반지하 냄새에 박 사장이 코를 움켜잡는 행동 같은 것.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계속 거슬린다. 거슬리는 것을 대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없애거나 피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보통 가능하면 없애버리려 하는 경우가 많다. 불을 켜고 모기를 끝까지 찾아 없애거나 휴지통을 비워버리는 것처럼, 기생충의 결말처럼.


그가 커피숍에서 후루룩 소리를 낸다 해서 다른 자리로 보내거나, 당신 소리가 거슬리니 조금 조용히 마셔주겠냐고 할 권한이나 논리는 없다. 거슬리는 일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취향이다. 어떤 이에게는 버릇없는 젊은이가, 잘난 체하는 연예인이, 서투른 종업원이, 끼어드는 운전자가 거슬린다. 장인에게는 도자기의 미세한 흠집이 거슬리고, 히틀러에게는 유대인이 거슬렸다. 무엇에 대해 얼마나 거슬리게 느끼고, 거슬리는 것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많은 부분을 말해준다.

거슬리는 것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다. 누군가와 사랑이 싹트는 것도 그의 행동이나 말투가 마음에 거슬려 시작되며, 결국 사랑은 서로 거슬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어떤 이는 TV에서 본 제3 세계 어린이의 모습이 거슬려 봉사를 시작하며, 새벽잠을 깨우는 자명종이나 사이렌 소리는 어둠과 고요 속에서 사람들 귀에 거슬려 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거슬린다면 그것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먼저 그게 왜 거슬리는지 잘 살펴보는 것이 좋다. 없애든지 피하든지 받아들이든지 결정은 그다음에 할 일이다. 피해야 할 일을 없애려 하다가 일을 키우거나, 받아들여야 할 일을 피해버려 기회를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아야겠다.  

다음 날 아침에 다른 곳으로 앉는 자리를 옮겼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테이블이 높아서 책 읽거나 글쓰기에 더 편했고 풍경을 바라보기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후루룩 소리를 듣지 않아 좋았다. 문득 세상에 거슬리는 일이 너무 없어도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주위에 거슬리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나의 감각 세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평소에 무엇인가 너무 많이 없애버린 것은 아닌지 한번 점검해볼 필요는 있겠다.  


이전 19화 H는 묵음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